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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국제 연대

여성운동, 인권・시민사회운동, 국제연대 활동의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 동두천 성병관리소 - 보존하고, 기리고, 행동하기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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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성병관리소, 잊혀진 기억 너머, 삭제될 기록을 넘어
―보존하고 기리고 행동하기―


지난 5월 23일,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두레방-역사문제연구소에서 준비한 <동두청 성병관리소, 빼뻘 마을 답사-“기지촌, 지워지는 역사를 페미니즘적으로 균열내고 기억하며 개입하기”>에 다녀오게 되었다. 그 시기에 마침 여성주의상담팀에서는 그레이스 M. 조의 《유령연구》를 읽으며 스터디를 하던 중이었다. 이전에 활동하던 단체에서 동두천 성병관리소에 방문한 적이 있기도 했다. 여러모로 이 모든 것이 운명으로 느껴져서 회원 소모임인 ‘시속 2km’ 모임원 및 활동가 동료들과 함께 경기 북부로 향했다. 


(사진: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전경) 

동두천 성병관리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문제들을 함께 살펴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크게는 군사주의, 역사적으로 쪼개어 보자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이념 전쟁, 한국전쟁과 이후 남북분단 및 미군의 주둔, 조금 더 과거로 가서는 일제 식민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열거한 이런 문제들은 각자가 가지는 존재감이 너무 무겁고 뚜렷해서, 이 모두를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각각의 문제들은 반성폭력 여성인권운동의 관점에서 ‘국가가 어떻게 “안보”를 위해 여성의 몸을 동원하고 동시에 “관리”했는가’하는 맥락으로서 궤를 함께 한다. 압축적으로 이러한 궤를 나열하고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성병관리소다.

1948년 이승만 정권은 ‘공창제 폐지령’을 통해 성매매를 전면적으로 금지했고, 이후 1961년 박정희 정권은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하며 인신매매 금지와 관련한 국제 협약에도 가입하였다. 이미 오랜 기간 한국은 성매매가 금지된 국가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인신매매 금지와 관련한 국제 협약에 가입한 바로 그 해에 104군데 지역을 ‘특정윤락지역’으로 지정한다. 이는 여러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듯 미군을 염두에 두고 지정한 성매매 가능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의 이념적인 갈등 속에서 미국-미군이라는 강한 조력자를 남한에 매개하게 해야만 했다. 미군의 주둔은 단순히 남한의 “안보” 뿐 아니라 군사-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자 방책으로써도 필수적이었다. 강력한 조력자를 가시화하는 것은 시민들로 하여금 강력한 주적을 상정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한미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가는 ‘특정윤락지역’을 지정하고 관리했다.

그러던 1969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 지역의 미군을 감축할 계획을 발표한다. 미군의 감축은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군의 감축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기지촌 정화 운동’을 실시한다. 이 ‘정화 운동’은 오롯이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한국 정부는 기지촌을 ‘정화’하기 위해 성병관리소를 전면적으로 확대·설치하게 된다.

‘특정윤락지역’의 기지촌 여성들이 신분증보다 더욱 중요하게 지참해야 했던 것이 보건증이었다. 여성들은 매주마다 성병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검사를 통해 성병이 발견되지 않아야만 보건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검사에서 성병이 발견되어 탈락(낙검)한 여성, 여러 사정으로 보건증을 미지참한 여성은 모두 여지없이 성병 관리소에 수용되었고, 또한 미군에게 성병이 발견되면 (미군이 아닌) 그 미군과 관계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모든 여성들이 마찬가지로 수용되었다. 여성들은 이곳에 들어오면 자신의 의지대로 원하는 시기에 나갈 수 없었으며, 성병관리소는 당사자의 동의와 무관하게 고용량의 페니실린을 주사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 사망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성병 관리소라는 이름은 지녔으나 이 장소에서 관리했던 것은 여성의 신체였다. 국가의 “안보”와 외화벌이를 위해, 미국과의 이해관계를 위해 성매매가 가능한 ‘특정윤락지역’을 운영하면서도, 정작 그곳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을 국가는 질병화하였다. 애초에 미군을 위해 ‘특정윤락지역’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어떤 바탕이 있던 것일까? 남성의 과잉한 성욕은 필연적이며 그렇기에 반드시 그리고 당연히 해소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미국-미군에게는 남한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역할이 부여되었기에 이들은 자타의에 의해 강력한 남성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기지촌을 운영·관리하기 위한 “정화”의 대상에 미군- 즉, 극단의 남성성이 부여된 존재는 당연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미군을 마주하는 여성을 질병화하여 이들의 신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만 “정화”가 작동되었다. 국가는 여성과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각기 다른 역할과 책임을 부과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성병관리소다. 여타 다른 지역의 성병관리소는 모두 도시 개발을 목적으로 철거되었다. 동두천의 경우 부지의 소유권이 학교법인에 있던 사유지였기에 지자체의 의도대로 철거할 수 없었으나, 2023년 동두천시는 성병관리소가 포함된 부지 일대를 매입한다. 시는 이곳을 소요산 관광특구로 개발해 유원지와 호텔과 상가등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철거를 희망하는 주민 의견이 많다”는 이유를 들며 성병관리소를 보존하는 지역 시민사회의 의견은 수용하지 않고 있다.


(사진: 동두천시청의 페이스북 페이지 / 게시일: 2024.10.16)

동두천시는 기지촌 성병관리소를 코로나19 시국에 운영된 격리치료시설과 동일시하는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시청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재했다. 국가폭력의 역사를 시에서 나서서 희석하고 삭제하려 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링크:
https://www.facebook.com/100064478958522/posts/pfbid02yedX3xr3JmU4rNqEjU5P12NJDDwFJ8QwMaGf9ai8LY6sVJwhGnNwhEFFEDRFhf5rl/)

폭력의 흔적을 지운다고 하여 그것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여성의 신체를 동원하고 훼손하고 이를 통해 취득한 이익을 부정한다고 하여 그 명백한 사실이 가려지지도 않는다. 억압의 행간을 살펴보고, 그 바탕이 된 관념들에 의문을 던지기 위해 생생한 기록의 장이 필요하다. 기억과 기록을 마주하며 당시 내려진 결정을 의심하고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꾸준한 의문과 질문은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한다. 결국 그 상상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이다. 이것이 인권적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 동두천 성병관리소 보존운동 농성 천막)

동두천 성병관리소 보존운동을 하고 있는 경기북부 평화시민운동 페이스북 페이지를 남기며 마치겠다. 많은 관심과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시기를.
https://www.facebook.com/peaceactionddc




- 이 글은 여성주의상담팀의 부리🔥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