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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쿠나 |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 본 상담소 회원

부엌

어렸을 때 엄마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압력 밥솥에 밥을 하고 국물 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생선을 구웠다. 분명히 요리 이외에도 하는 일이 매우 많았는데도 엄마는 하루에 최소 두 번, 한 시간 이상 부엌에 있었다. 그렇다고 식단이 눈에 띄게 변하거나 색다른 음식이 나오는 경우도 드물었다. 정성껏 상을 차려 내지만 나와 동생은 그것의 삼분의 일도 먹지 못하고 십여 분 안에 일어나곤 했으니까, 부끄럽지만 격렬하게 식단의 지루함에 대해 엄마에게 항의한 기억도 난다. 결국 시간과 노력이 아까운 일이었다. 노동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그리고 들인 공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 그래서 절대로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취

어찌하다 보니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었다. 입에 착착 맞아 저절로 살이 찐다는 소문과는 달리 서양식의 달짝지근하거나 소금이 가득하며 기름이 줄줄 흐르는 음식들은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기숙사에 부엌이 있어서 밥을 직접 해먹기 시작했다. 혼자는 심심하고 의욕이 생기질 않으니 이웃들을 불러 모아 같이 요리하고 술도 마시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에 겨우 국 한 가지, 반찬 한두 가지로 지내지만 꼭 많은 양을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음식이 아니라 사람들로 배를 채우려고 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공부만 하는 외톨이인 것처럼 느껴졌다. 막상 스스로의 배고픔은 공부를 하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뱃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면서 달래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집에서 먹는,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가 차려주던 지루한 밥상이 간절해졌다.

도시락

귀국 후 드디어 취직이란 걸 했다. 1시간 동안 식당을 찾아가고 다닥다닥 붙어 십 분 동안 밥을 삼키는 데 지쳐갔을 무렵, 도시락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밑반찬을 두세 가지 확보하여 따듯한 밥을 싸가는 것으로 충분히 힘들었다. 가끔은 엄마의 손을 빌릴 때도 있었고. 그러다가 조리도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먹으면서 비로소 회사에서도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을 하기 위한 에너지원이 아닌, 하루하루를 내가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된 것이다. 점점 식사를 하기 위해 나다니는 시간이 줄고 대부분은 도시락을 싸온 사람들과 자리를 펴거나 때로는 혼자 먹었다. 고소한 밥 냄새가 ‘이제 머리는 쉬고 위장이 운동할 시간이야~’하고 신호를 주었다.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해 미련이 없던 내가, 내일 반찬으로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전혀 시간이 아깝거나 귀찮지 않았다. 나를 위한, 그리고 잘 살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터득한 기분이었다.

생존 노동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후에는 집에서 식사를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하우스 메이트와 요리를 하기도 하고, 반찬을 만들어서 동네 친구와 나누기도 했다. 여전히 타이머를 맞춘 듯 한 시간 이상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제철 재료들을 이용해 살아가는 에너지, 활동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장하고 기특하다 여겨 스스로를 칭찬하기에 이르렀다. 더욱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아무도 나를 대신해 나의 먹기를 위해 노동하지 않는 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며,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고 직접 만들어서 먹는 과정이 모두 나의 생존을 위한 노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시간과 에너지는 결코 낭비되거나 아깝거나 헛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살아 있음을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밥상

여러 가지 변화를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은 여러 사람들을 초대하여 밥을 먹이는 일이었다. 독립해서 살고 있는 동네는 멋진 여성주의자들을 포함,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친구들이 지척에 포진해 있는 곳이다. 내 한 몸 먹이기에는 충분하나 어쩐지 그들의 끼니를 맛나게, 즐겁게 책임지는 일은 감당해 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동네 친구들 30~40여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의 제안이 찾아왔다. 일인 즉슨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이하 마레연)’ 의 정모인 퀴어밥상 준비. 마레연은 2010년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고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며 사회적 변화를 꿈꾸는 마포 지역 주민들의 연대를 위해 생겨난 모임인데 이번에는 마레연의 존재도 알리고 동네 퀴어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을버스에 광고를 내기로 했고 그 비용 마련을 위한 큰 밥상을 벌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멋진 일이 아닌가, 마을버스에 탔는데 무지개 빛 광고를 보고 호기심에 혹은 반가움에 달뜬 얼굴들을 상상하면.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 여러 사람들과의 밥상을 준비하게 된 것은. 그날,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음식을 담아 앉은 이들과 함께 둘러앉은 밥상은 새로운 기쁨이었다.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 cafe.daum.net/maporainbow2010

퀴어 : LGBTIQ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슈얼, 퀘스쳐닝)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이런 식으로 발을 담그게 된 마레연은 2010년 지방선거를 대비한 모임으로 시작, 현재까지 거의 매 달, 밥상 정모를 준비해 같이 음식을 하여 나누고 영화 보기, 소풍, 실내 운동회, 강정마을에 현수막 만들어 보내기, 여성의 날 기념 잔차 액션 등을 즐겁게 지속하고 있다. 특히 퀴어 밥상은 마레연의 마스코트와 같은 의미랄까. 매월의 셰프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들어 결정되고, 셰프가 메뉴를 결정하면 운영진들 및 자원자들이 같이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한다. 요리를 하지 못해도,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다 함께 만들어서 똑같이 즐기는 밥상이니까. 이미 3년 차로 접어든 즈음이면 메뉴도 중복되고 질릴 만도 한데 셰프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게 매번 즐거운 음식들을 제안한다. 물론 실패할 때도, 어려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커리와 난을 야심차게 제안한 경우. 아무도 난을 직접 구워본 적이 없어 모든 손에 밀가루를 묻히면서 가지각색의 아류 난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다. 뭐든 결국 모여 앉으면 하하 호호 웃음 속에 음식들이 사라져 간다.

변해가는 밥의 의미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친구들, 하지만 바빠서 집에서 조차 끼니를 제 때 챙겨먹기 힘든 친구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궁한 친구들. 매 주 만나는 친구도 있고 한 달에 한번 혹은 일년에 몇 번 얼굴만 보이는 친구도 있고 심지어 처음 나오는 회원들도 있어 다소 어색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그래도 밥상의 힘인가? 밥상의 마법인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음식을 두고 마주 앉아 있자면 어느 새 긴장이 풀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게 된다. 사는 동네 얘기, 근래 힘든 일, 재미있는 일, 소소한 일, 혹은 사회적인(선거, 여성의 날, 강정마을 돕기 등) 액션의 제안도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 모습들을 보면 야채를 씻느라 얼얼한 손이라던가, 매운 양파로 인해 눈이 아리던 것은 저 멀리 사라진다. 허무한 가사 노동에 불과했던 밥의 의미는 이렇게 변해간다. 이러다 언젠간 동네 친구들을 모아 잔치를 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르고 좀 더 정성스럽게, 나만을 위해서도 1시간 이상 요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쿠나 따듯한 남쪽나라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도 현재 동네 친구들과의 삶에 푹 빠져 있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