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수확하러 난 지금 텃밭에 간다
캔디.D | 본 상담소 회원
텃밭은 로망이었다.
푸른 밭에서 건강한 땀을 흘리고, 그 땀으로 일군 음식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 햇볕에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로 수확한 농작물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 사진 작가의 멋진 사진이나, 귀농한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잡지들을 보면서 나는 텃밭에 대한 로망을 키워갔더랬다.
하지만 그 로망을 현실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텃밭이 근처에 있지 않았고, 어떤 정보로 접근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리고 자신도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그 작물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를 결심하는 것 이상의 부담감이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내가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쉽사리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잡을 수 없었던 결심은 뜻밖의 경험에서 다가왔다. 2008년, 하루하루가 지친 마음의 연속인 생활을 하던 때, 마법처럼 반려동물을 키우겠냐는 제안이 왔다. 까맣고 작은 고양이와 함께 삶을 살기 시작한 이후, 나는 반려한다는 것, 함께 하는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무조건적으로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 마음이고 반려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서로 반려하는 시간을 꽤나 보내고 난 후에서야 나는 텃밭을 일구는 것을 결심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하고 있던 텃밭은 합정역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그리고 다시 이십 여분 이상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이름조차 생소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귀농운동본부에서 임대 해주고 있다는 땅은 꽤나 넓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말농장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내가 농사를 지은 첫해에는 네 명의 친구가 함께 농사를 짓기로 했다. 땅은 열 평. 처음에 친구들이 열 평을 짓는다고 했을 때 고작 열 평을 가지고 뭘 하겠냐고 웃었었는데,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건강한 그을음이나 가치가 있는 땀방울은 헛소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농사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땅을 갈아엎고, 퇴비를 뿌리고, 씨를 뿌리고 키워내는 과정은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이니만큼 일주일에 최소 한번은 절대 빠지지 말고 텃밭에 가야 하는 압박도 엄청났다.
뭐, 그렇게 투덜대긴 했지만, 그래도 텃밭은 신기하고 재미났다. 허허벌판이던 땅에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면 작은 새싹이 마술처럼 솟아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새싹은 다시 올 때마다 부쩍부쩍 커져서 어느새 먹기조차 아까울 정도로 커다란 먹을거리로 변해있었다. 온갖 스트레스를 받는 일상에서도 토요일 아침 일곱 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텃밭에 갈 준비를 했다. 은평, 마포에 사는 우리들이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에 모여서 4호선 저 끝 쪽인 대야미역까지 가는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그런 걸음걸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텃밭의 식물들이 너무나 어여쁘게 커갔기 때문이었다.
텃밭을 일구며 내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냉장고 가득했던 가공식품들이 사라져가고 그 자리를 채소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오 년여를 자취를 하면서도 거의 해먹지 않았던 밥을 해먹고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피자와 햄버거로 가득했던 저녁식탁을 내가 수확한 야채로 만든 김치찌개와 반찬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변화였다.
그리고 점점 투덜거림이 잦아들면서, 토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토요일에는 약속을 되도록 잡지 않았고, 오롯이 텃밭을 위해 하루를 투자했다. 맑은 공기와 작은 텃밭의 흙들과 함께 하노라면 세상의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스스로 치유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시점도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텃밭을 위해 남겨두는 하루, 느리게 자라나는 야채들과 느끼는 여유로움. 그리고 수확으로 흡족해진 마음과, 그 수확물을 주위 사람과 나누는 풍성함까지……. 여유가 없고 짜증이 가득했던 삶이 바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삶의 방향은 정말 작은 일에서 부터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텃밭을 시작한 이후, 나는 좀 더 “잘 사는 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텃밭을 하면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함께 하는 삶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의 방향도 조금씩 바뀌어갔다. 건강한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의외로 주변의 많은 이들이 건강, 공동체, 잘 사는 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친구들과 더 많은 교감을 나누면서 먹거리 생협, 의료 생협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활동이나 관심꺼리들이 다 “텃밭”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과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때? 나는 지금 행복하고, 그 행복의 과정에 텃밭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이런 약간의 과장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텃밭에 대한 나의 로망은 작은 결심을 계기로 현실이 되고, 새로운 꿈을 꾸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나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채소를 심으러 간 텃밭에서 행복을 수확했다. 당신은 뭘 수확하게 될지 궁금하지 않나? 자, 일단 작은 화분에 시장에서 산 대파 한 대를 심어보자. 그게 당신의 첫 텃밭이 될 것이다.
※ 캔디.D 망원동에서 7년. 고냥이와 4년. ‘잘 먹고 잘 살자’ 를 좌우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