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근속 활동가 휴가 사용기
마도 |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묵은 먼지 털기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전거 타기였다. 올봄, 어떻게 하면 삶에 생기를 불어넣을지 고심하다가 마련한 자전거다. 바람을 가르며 이 동네 저 동네를 쏘다녔던 어린 시절의 희열이야 늘 간직하고 있었지만, 막상 탈 시간이 여의치 않아 번번히 구입을 미루고는 했던 것이었다. 사놓고도 한두 번 타고 세워만 두고 있다가 휴가 기간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수원에 살고 있는 터라 수원 화성(華城)의 성곽 주변을 돌기도 하고, 이웃 동네 재래시장까지 가서 유명하다는 만두를 사오기도 했다. 허벅지에 일어나는 경미한 경련과 함께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내가 사는 지역을 오랜만에 돌아봤다.
자전거로 40분을 달리면 다다르는 ‘시내’는 10대 시절 부산히 놀러 다니던 그곳이 아니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활기로 가득했던 상점가는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조용하고 한산한 재래시장이 되었고, 오래된 골목에는 작은 공방이 여럿 들어서 있었다. 화성의 북문(北門)에 위치한 공원 벤치에 잠깐 앉아 쉬면서 길게 난 성곽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 내게 “너는 한국의 로마에 살지 않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사실 이건 좀 과장된 말이다).
20년을 넘게 살아온 지역임에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 몇 년 안 된다. 어렸을 때부터 화성은 늘 그냥 거기에 있었고, 성곽을 따라 난 길은 학교에서 시내까지 가는 길목일 뿐이었다. 그리고 난 항상 이 작고 촌스러운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한 시간을 조금 더 가면 휘황찬란한 서울인데. 못 갈 것도 없는데. 전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마다 ‘언젠가는 꼭 서울에서 살겠다’고 꿈꾸던 때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 다시 보니 오히려 조금 더 성곽 근처, 오래되고 한가로운 동네에서 살아봐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닳도록 드나든, 잠시 거주하기도 한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마음이 점차 복잡해지는 것만큼 이곳에 대한 기억과 감정도 해마다 한 겹씩 결을 달리하며 덧씌워질 것이다. 천천히 흐르는 풍경을 뒤로 하며 자전거 위에서 처음으로 해 본 생각이다.
떠나야만 한다
무려 2주라니. 어떻게 하면 금쪽같은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연초부터 생각해봤다. 다만 별다른 계획 없이 그저 ‘여행을 가야 한다’는 마음 정도는 있었다. 긴 휴가를 떠났던 다른 활동가들은 여기저기―저 멀리 유럽까지도 잘도 다녀오던데, 나는 난감했다. 원체 여행에 취미가 없고, 낯선 곳에서는 호기심보다 긴장이 앞서는지라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과연 나에게 진짜 휴식인지가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의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데도 가지 않는 것보다 어디라도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동남아 지역의 여행 가이드북을 샀다.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어영부영 시간은 지났고, 인터넷에는 “○○만 원에 저렴하게 다녀왔다”는 후기 글이 난무하는 가운데, 휴가 예정일이 임박한 시점에서 항공권 가격은 훌쩍 높아져 있었다(미리 봐두었던 호텔도 만실 상태). 내가 역시 그렇지, 혀를 차며 여기저기 다른 (저렴한) 곳을 알아보는 가운데 눈에 띈 곳이 중국의 상하이였다.
여행은 상담소 활동가인 두나와 3박 4일로 다녀왔다. 상하이는 중국 근대의 흔적을 목격할 수 있고, 그보다도 훨씬 오래된 풍경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굳이 말하면 그랬다는 거고, 화려한 현대식 도심과 근대의 거리, 그리고 인근의 유적지까지 두루 갖춰진 도시였다는 거다. 특히 과거와 미래의 두 번화가가 형형색색 빛을 내며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있던 모습은 기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난무하는 속에서 며칠을 보내야만 하는 것은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문화권이다 보니 옆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는 마치 한국인가 싶었지만 잠시 침묵이 흐르거나 혼자 남겨져 있게 되면 풍경은 갑자기 생경해지고 나와는 단절되었다. 낯선 자가 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라면 그게 매력이기는 하다는 것을 처음 체감했다. 이런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계속 (지금처럼) 영어를 못 해도 괜찮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건, 좀 그렇지만.
방은 노란 잠수함
뒤늦게 쓰건대 내게 이번 휴가의 키워드는 여행이나 휴식보다 ‘잠수’였다. 활동·업무에서 훌쩍 떠났다가 새로운 기운을 받고 돌아오는 것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잠시 동안의 단절과 침잠이 필요했다. 여행에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욕구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집과 내 방이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아무래도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내 공간은 그저 방 한 칸이 전부다.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것이 온전히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는 방문을 콱 닫아놓고 칩거나 다름 없이 지냈다.
게다가 방에는 놀 것이 많다. 항시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고, 읽지 않은 책과 듣지 않은 음악이 잔뜩 쌓여 있고, 영화니 드라마도 보기 시작하면 한정이 없다. 요즘은 노래 만드는 강의까지 듣고 있어서 숙제니 기타 연습도 해야 했다. 휴대폰이야 멀리 던져놓았다.
방에서의 잠수는 고요했다. 가족과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눈 뜨면 무언가를 보고 듣고 먹고, 자면 됐다. 단순한 일상은 머릿 속을 좀 씻어냈다. 오랜만에 내가 만든 반찬으로 며칠에 걸쳐 집밥이란 것을 먹는 것은 몸을 씻어내는 듯 했다. 계속 이렇게 맘편한, 크게 움직이지 않는,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빠르다는 것도 실감했다. 나와 얽혀있는 많은 것들이 모두 다 그렇게나 중요한 것인지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지나 모든 것에 무력감이 올 때 쯤, 휴가는 끝났다.
삶의 정경을 바꿔내는 걸음
휴가는 분명 ‘무언가’를 위해 보내는 시간일 것이다. 과거에 질리도록 쉬어본 적이 있다. 척추가 녹아내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 잠만 자본 적도 있다. 무위도식하는 삶에도 어쩔 수 없이 기한이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매일이 호우인 현재, 이번 휴가는 흔치 않은 고요였다. 서로가 조금씩 섞여들어 점차 균형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을 지금 막 뗀 참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고요한 가운데 가끔씩 호우가 쏟아지는 삶을 일궜으면 싶다.
※ 마도
1. 눈에 뵈는 모든 게 장난감이던 시절도 이제는 갔다.
2. 경험과 영혼의 노래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상하이에서 ‘상하이 로맨스’ 같은 노래를 만드는 것도 까먹었다. 칭따오(靑島) 맥주에 상하이(原味) 스파이스 치킨 버거만 처먹었다. 나란 사람, 어리석게도…….
3. 마, 마이 이모션……! 마, 마이 소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