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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폭력피해자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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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터 이야기

친족성폭력피해자와 어머니

공명 | 본 상담소 부설 열림터 부원장

본 글에서 인용한 사례는 열림터 상담 사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에게 법적 해결은 성폭력 피해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이다. 특히 성폭력 피해가 지속적이고 외부로 드러나기 어려운 친족성폭력의 경우에는 증거가 없어서 가해자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지만 피해자에게 불구하고 법적 해결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법적 대응은 그동안 자신이 혹시 잘못한 것은 아닐지 자책하고 불안해하는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잘못을 돌리는 것에 집중하던 가족들도 가해자의 범죄 행위로 관심의 초점을 돌리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개소 초기부터 현재까지 열림터를 거쳐간 생활인의 다수가 직계 가족 관계 안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생활인들은 가해자이기 전에 아빠이고 오빠인 그들이 변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할 것이라는 희망에서 고소를 주저하기도 한다. 고소를 하더라도 가해자 외의 다른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 피해 사실이 드러나 피해자가 가족과 분리되어 생활하게 되어도 남은 가족이 해체되는 사례는 드물고, 다른 가족들이 피해자를 선택하고 지지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피해자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어머니도 가해자의 편을 들며 성폭력 피해를 은폐하려 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심지어 딸에게 남편을 빼앗겼다고 느껴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는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어머니에게 심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며, 가해자보다 어머니를 향한 분노를 더 크게 나타내기도 한다.

가해자인 남편을 선택한 어머니

A는 친부에 의한 성폭력피해자로 가해자인 아버지는 법적 처벌을 받아 구속되었다. 그렇다면 폭행과 협박을 일삼던 가해자의 처벌이 이뤄진 후 A는 온전히 기뻐할 수 있었을까? A는 자신을 지원해주는 활동가, 상담원들을 만나면서 성폭력피해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재판부의 판결을 통해 법적으로도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집을 떠나 쉼터에서 살고 있는 자신보다 앞으로 부양자 없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닥쳐온 어려움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때때로 A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지만 그녀를 걱정하거나 염려 하는 말 대신 “너희 아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은 난리가 났다”, “지금이라도 내려와서 가족들에게 사과해라” 라는 회유 혹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A는 아직도 아버지의 가해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가 밉다. 하지만 언젠가 가족 안에서 일어났던 성폭력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A가 선택했던 법적 해결이 결코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어머니의 선택

B는 의부에 의한 강간과 성추행 피해로 열림터에 들어왔다. 몇 년 동안 반복된 성폭력 피해보다 B를 더 힘들게 한 것은 가해자의 성폭력에 가담했던 어머니였다. 남편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남편의 성폭력 사실을 모르는 척 하며 피해자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B에게 단 하나뿐인 가족이다. 그래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사는 분명했지만, 성폭력에 가담한 어머니도 처벌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유일한 가족을 잃을지도 모를 두려움 때문에 고소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딸의 안전을 걱정하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사건 발생 초기와 다르게 법적 진행이 될수록 피해자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가해자에게 심리적,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차지하고라도 어머니의 처벌만을 막고 싶었던 피해자를 또다시 힘들게 했다.

스스로 찾아가는 가족의 의미

C는 친부와 단둘이 살면서 수시로 발생하는 폭력과 성추행에서 벗어나고자 집을 도망쳤다. ‘이렇게 맞고 지내다가는 아무도 모르게 죽겠다’ 는 공포를 느꼈던 C가 집에서 챙겨올 수 있었던 것은 옷 한 벌뿐이었다.

열림터에 와서 C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사망했다며 언급을 꺼리던 가해자와 친척들의 의심스런 행동들도 서류에 적힌 어머니의 생존으로 거짓임이 밝혀졌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선명하게 쓰인 낯선 이름 석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면서 힘나는 의미였다.

가해자에 대한 기억과 흔적을 지우고 싶은 C에게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고 현재보다 나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훗날을 기약하는 것은 가해자인 아버지와 단둘이었던 가족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친족성폭력이 발생하는 가족 안에서 피해자들이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어머니가 피해자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어머니들이 가해자에게 심리적,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맞물려, 피해자를 지지하고 돕기보다는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이 현실이다.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가족들로부터 적극적으로 지지받고,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절실한 이유이다.

비(非)가해 부모의 자립 능력이 없을 경우, 친족성폭력 피해 자녀와 비가해 부모에 대해 적합한 직업을 알선하고 그들이 우선 고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나만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찾아보는 것도 피해자가 친족성폭력을 치유하고 나아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 공명  모르는 만큼 어려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는 만큼 수월한 시간이 올 수 있을까 기대했던 적이 있었죠. 요즘은 어떤 결정이든 앎과 상관없이 쉬운 것은 하나도 없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