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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에게 당당한 레즈비언 엄마가 되고 싶어요
  • 박김수진 | 동물권연구활동모임 공존
기획특집 |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

투투에게 당당한 레즈비언 엄마가 되고 싶어요

박김수진 | 동물권연구활동모임 공존

안녕하세요? 저는 파트너인 바른얼굴님, 딸인 투투, 아들인 비비와 함께 살고 있는 레즈비언입니다. 2인·2견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햇수로 5년째 서울 마포구에서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항상 재미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육아가 그러하듯 투투와 비비의 육아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경제적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비비는 4년 전에 바른얼굴님의 부모님 댁에서 우리 집으로 온 강아지이고요, 투투는 11년 전부터 지금까지 저와 동거하고 있는 강아지입니다. 저는 원래 동물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강아지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던 사람이었고요. 저는 강아지가 자기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우울함이나 기쁨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매일 치아 관리를 해주어야 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필요한 생명체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강아지들도 생로병사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이런 제가 ‘강아지를 키워야지’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무턱대고 투투를 데리고 온 것이지요. 투투와 함께 살면서 ‘개’라는 동물이 얼마나 영리하고, 감정이 풍부하며, 의사전달 능력이 뛰어난지 알게 되었습니다. 투투는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3시간 정도는 의연하게 기다리지만, 5시간이 넘어가면 혼자 작은 소리로 울어요. 그리고 투투는 한결같아요. 잠시 이별한 후 다시 만날 때면 항상 같은 마음으로 저를 반겨주고, 저를 사랑해줍니다. 무엇보다 투투는 엄마가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어요. 그저 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믿어준답니다. 투투는 이제 11살이 되었습니다. 이가 흔들리며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고, 머리와 등에는 검버섯이 생겼습니다. 최근에는 유선염으로 고생 중이지요. 투투와 함께 해 온 1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도 많이 늙었습니다. 주름은 깊어졌고, 흰머리의 수도 많이 늘었습니다. 이렇게 투투와 저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입니다.

투투와 함께 해 오면서 서서히 다른 동물들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개’인 투투에게 다양한 감정이 있다면 ‘고양이’인 나비에게도 다양한 감정이 있을 것 같았고요, ‘개’인 투투가 고통을 느낀다면 ‘돼지’인 베이브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이 문제를 깊이 탐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투투와 동거하는 오랜 기간 동안 저는 친구들과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돼지 갈비 집을 찾아 다녔고, ‘맛집 탐방’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는 스테이크 집을 찾아 돌아 다녔지요. 가끔씩 고기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무겁기도 하였고, 뭔지 모를 불편한 기분에 망설인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불편한 마음을 쉽게 감출 수 있었습니다.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테이블 앞에 앉아 고기 덩어리들을 보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그 덩어리들을 ‘덩어리’로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불편한 마음은 느꼈지만, 고기 섭취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요.

2010년 말부터 연일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구제역으로 인해 생매장 되는 농장동물에 관한 소식을 전해주었고, 구제역으로 생매장 되는 동물들에 관한 뉴스는 2011년 초까지도 이어졌지요. 그 시기에 380만여 마리의 농장동물들이 생매장 되었습니다. 2010년 말에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잠입 촬영했던 돼지 생매장 현장 동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 때까지만 해도 ‘고기를 먹지 말아야 겠다’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했어요. 그저 생매장 당하는 돼지와 소들이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런 기사를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구제역으로 인하여 살처분되기 직전의 어미 소와 아기 소의 이별의 순간을 ‘아름답고도 애잔하게’ 묘사한 기사였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갑자기 너무 화가 나기 시작했고, 기사를 읽고 일기 시작한 제 안의 ‘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화’의 정체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제가 내고 있는 ‘화’의 대상은 다름 아닌 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기자가 농장동물의 살처분이라는 현실 앞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감정을 가진, 살아 있는 동물이었어요. 하지만 현실의 동물은 살아있는 채로 땅에 묻혀가고 있었지요. 같은 동물을 두고 살처분해도 무방한 존재로 만들고는 또 한 편으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그 기자에게만 있던 것이 아니었어요. 오랜 시간 동거해 온 투투를 보면서 ‘동물의 신비’에 관해 감탄하던 저는 또 다른 동물인 돼지·소·닭을 보면서는 그저 음식 재료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죠. 조금이라도 그것들이 투투와 같은 통증을 느끼고 감정을 가진 동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차려고 하면 회피·정당화·대상화·합리화 등 온갖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면서 ‘육식하는 나’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생매장 당하는 돼지들을 보면서 동정심을 갖다가도 저녁 식사 시간이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 올린 돼지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죠. 같은 동물을 두고 살처분당해 마땅한 동물과 아기 소와의 이별에 절망하는 동물로 이분화 하는 기자의 사고방식과 시선이 저의 사고방식과 시선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알고는 제 자신이 갑자기 역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고기를 끊으려 노력했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강아지인 투투와 돼지인 베이브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돼지인 베이브와 오리인 도널드는 또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오리인 도널드와 사람인 나는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생각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 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이성애주의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동성애를 비정상화하고, 이성애를 정상화해왔던 것처럼 육식주의 이데올로기가 채식이나 비육식을 비정상화하고, 육식을 정상화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성중심의 근대 철학이 몸과 정신·여자와 남자·비정상과 정상·동성애와 이성애를 엄격하게 분리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동물이기도 한 사람이 동물과 동물이 아닌 것, 동물을 또 다시 식용동물과 반려동물로 나누어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물이기도 한 사람이 또 다른 동물들을 농장동물, 실험동물, 오락동물, 전시동물, 모피동물, 반려동물로 분류하고 착취해 온 과정이, 같은 사람을 유색인종,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분류해 억압한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동물의 권리를 생각한다는 것과 사람의 권리를 생각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당장 모든 육식을 중단하기가 어렵더라도 최소한 소비를 줄여나가자 다짐하고, 동물에 관한 분열된 저의 인식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성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지만,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결국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의 의미와 기쁨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이유들이 충분했고, 그리하여 노력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쉽지 않더군요.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살처분을 앞두고 이별하는 어미 소와 아기 소를 묘사했던 그 기사를 보고 시작한 공부와 비육식 시도가 2년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라면, 떡볶이, 김밥 등 즐겨 먹는 대부분의 음식에 고기가 들어가 있고(심지어 코카콜라 안에도 고기 부산물이 들어가 있다고 해요) 고기가 들어가 있지 않은 음식을 찾고 만들어 먹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100% 비육식 생활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저는 여전히 가죽으로 만든 운동화와 가방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마음 한편이 무겁고, 자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지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소비를 줄이고, 중단하고자 노력할 작정입니다. 그래야 엄마로서 딸인 투투에게 그리고 아들인 비비에게 당당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야 레즈비언으로서, 저와 비슷한 이유로 고생하고 억압당하는 동물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습니다. 돼지와 개가 다르지 않고, 개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제가 잘 해나가는지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제가 걷는 길에 길동무가 되어 주신다면 더 없이 좋겠고요. 감사합니다.

※ 박김수진 최근에 트위터에서 만난 좋은 분들과 함께 <동물권연구활동모임 공존, http://blog.daum.net/animalrights>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http://blog.daum.net/lesbian2013>라는 작은 단체를 만들어 운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