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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 나영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기획특집 |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

나영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쿠바를 처음 만난 건, 애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2007년 8월 15일 광복절. 자정이 조금 넘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나는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까만 닥스훈트 한 마리를 만났다. 부슬비에도 몸이 제법 젖은 채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너 여기서 뭐하니?”하고 말을 걸었더니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꼬리를 치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8월이지만 비가 내려 제법 쌀쌀한 새벽 공기가 걱정되어 일단 집으로 데리고 가서 재울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마침 집에 외국에서 온 손님도 있고 해서 그냥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오는데, 어이없게도 이 녀석은 마치 자기가 나를 인도하기라도 하는 듯 한 번씩 내가 잘 오고 있는 지를 확인하면서 앞장서서 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우리 집 앞까지 와서는 내가 문을 열자 자기가 먼저 쏙 들어가 버렸다.

결국 우리는 일단 녀석을 따뜻한 물로 씻기고 참치를 한 캔 먹인 다음, 다음 날 유기동물로 신고하기 위해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침을 흘리고 부쩍 힘들어하던 녀석이 병원에 도착하니 동공이 거의 풀린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동물병원 의사가 호들갑을 떨며 유기견이면 뭔가를 잘못 먹어서 금속 중독이 되었을 수도 있다면서 온갖 검사를 다하더니 결론은 심장사상충 3기라고 했다. 순식간에 수십만 원의 병원비가 나왔다. 하지만 심장사상충 3기면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상태인데 그 상태로 그냥 유기동물로 맡길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녀석을 치료하기로 하고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그야말로 우리는 녀석에게 ‘찍힌’ 것이었다.

며칠 후 애인은 살겠다고 우리 집을 앞장서서 찾아 들어온 이 녀석의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했고, 친구들은 병원비를 함께 모아 주었다. 다행히 친구들의 지지와 걱정 속에서 녀석은 건강을 잘 회복했고 최고의 말썽꾸러기가 되었다. 그렇게 한 바탕 소동을 치르며 쿠바가 온 지 2개월 후, 동물구조협회 사이트에서 코난을 만났다. 쿠바와 같은 닥스훈트였지만 털이 긴 장모 종에 5개월 밖에 되지 않은 꼬맹이였다. 처음 코난을 만나러 갔던 날, 관리사의 장갑 낀 손에 들린 채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온몸의 비듬을 흩날리던 코난의 모습은 그야말로 더럽고 못생기기 짝이 없었지만 집에 오자마자 녀석은 쿠바와 우리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까불이 막내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 해 12월 말에 눈이 잔뜩 쌓인 추운 골목길에서 우리 집 마지막 식구 샨띠를 만났다. 처음에는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정신없는 닥스훈트 두 마리와 이 소심해 보이는 고양이가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웬걸, 샨띠는 특유의 무심함과 결정적 한 방으로 첫 날부터 가볍게 무림을 평정하고 자연스럽게 영역을 확보했다. 그렇게 우리 다섯은 식구, 아니 반려공동체가 되었다.

함께 돌보아야 할 생명이 셋이나 된다는 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뻔한 경제사정에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녀야 하는 우리는 매번 충분한 넓이의 거실이 있는 집을 찾아다녀야 했고, 한 번은 계약서 작성 직전에 반려동물이 있다는 이유로 계약이 취소되기도 했다. 동물들이 병에라도 걸리면 상당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어느 날 녀석들이 저질러 놓은 온갖 말썽으로 집안이 엉망이 되어 있을 때면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내가 주저앉아 울 때 옆에 다가와 내 손을 가만히 핥아주는 녀석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늘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함께 살며 우리는 종종 한강에 놀러 나갔고, 여행을 다녔다. 집회도 함께 나갔다. 때로는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웃과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어느 덧 함께 산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어느 덧 눈빛과 행동만으로도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기분이 어떠한지 서로 알 수 있게 되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가족이 사회의 기본단위’라는 이야기는 어느 덧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혈연 가족이 아니면 우리 모두는 그저 개별자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고는 한다. 게다가 그만큼 우리 사회는 가족 중심적이어서 실제로 살면서 가족을 구성하지 않으면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지원 체계로부터 소외되고 때로는 질병이나 외로움으로 인해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우리는 가족만이 아닌 다양한 관계와 사회적 공동체들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혈연가족을 구성하지 않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 동성애인 또는 이성 애인과 동거하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보면 흔히 사람들은 ‘자식이 없어 외로우니 동물을 키우는 거겠지’, ‘그래도 자식이 있어야 늙어서 보살핌이라도 받지’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자녀가 단지 외로움을 달래거나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대리물이 아니듯, 반려동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따뜻한 위안을 얻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아프고 힘들 때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반려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우리끼리의 관계에서 끝나지 않는다. 쿠바가 우리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었듯 우리의 친구, 이웃들과 그들의 반려동물들이 필요할 때 서로를 돌보고 만나며 또 다른 관계들을 확장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반려공동체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친구, 이웃들과의 더 큰 반려공동체 네트워크로 확대된다.

나는 우리의 이런 관계가 혈연 가족만을 중심으로 한 배타적인 관계들을 넘어, 인간들만의 관계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 속에 함께 살고 있는 존재들 서로에게 힘이 되고 지지가 되는 더 멋진 사회적 관계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지난 11월 말, 마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 주민 모임인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가 성소수자들이 이웃으로 함께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사회적 후원 과정을 거쳐 마포구 관내 현수막 게시대에 게시 신청을 한 두 개의 현수막에 대해 마포구청이 게시를 거부한 일이 있었다. 그 두 개의 문구는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와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지금 여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였다. 단지 ‘함께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건네는 이 현수막에 대해 마포구청은 ‘살고 있다는 문구가 혐오감을 줄 수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다’, ‘문구가 과장되고 직설적이다’는 이유를 들어 성소수자들에게 주민으로서의 존재를 드러내지 말 것을 요구했다. 아프다고, 말썽부린다고 버려지고 방치되었던 생명들과 함께 살면서, 그리고 이번 사건을 겪으며 마포구청이 자랑스럽게 내건 ‘더불어 잘 사는 복지 마포’라는 문구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함께 산다’, ‘더불어 산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 애초에 고려되지 않는 존재들이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떠한 소외되고 버려지는 존재도 없이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 존재가 사람이든, 사람이 아닌 동물이든 말이다.

※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페미니즘학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포구에서 동네 친구들과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라는 모임도 함께 하면서 동성 애인과 반려견 두 마리, 반려묘 한 마리와 재미나게 살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