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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고 고양이는 혐오하는가 - 호리와 함께 살아가기
  • 란 | 본 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기획특집 |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고
고양이는 혐오하는가

<호리와 함께 살아가기>

란 | 본 상담소 여성주의 상담팀

하얀색 털에 귀 끝과 꼬리는 노란빛으로 빛나고 새파란 눈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게 생긴 ‘호리’. ‘호리’를 처음 만난 것은 날이 무더워지던 6월 즈음이었다. 어쩌면 그전부터 ‘호리’는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호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 시점이 6월 즈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4년 전 쯤 일본에 갔다가 낯선 모습을 보았다. 저녁을 먹으러 길을 걸어가는데 길가에 예쁘게 담겨진 과일과 생선회가 있었다.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한참을 쳐다보았는데, 담겨져 있던 접시가 예쁘기도 했지만 과일과 생선회를 담아둔 모양이 참 정성스러웠다. 왜 저렇게 과일과 생선회를 두었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길고양이를 위한 누군가의 배려였다. 길고양이들을 위한 밥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에게 길고양이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는 누군가의 마음은 깊은 여운을 주었다.

사실 나는 일종의 고양이 혐오자(?)였다. 어렸을 때 무서운 이야기 100선등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고양이는 목숨이 일곱 개인데다가 죽어서도 복수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길고양이들이 눈에 안 보였던 이유도 고양이 혐오에서 비롯된 무관심 때문이었다. 그런 내 눈에 일본에서의 낯선 경험 이후, 길가를 다니는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고양이들은 그곳에 있었다. 자동차 밑에, 집들 사이 담벼락위에,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00횟집 앞에.

‘호리’는 상담소에서 처음으로 밥을 챙겨준 길 고양이었다. 상담소 외부 창고 지붕에서

상담소 난간 앞에 앉아 있는 하얀 고양이 호리

늘어져 자고 있던 ‘호리’를 발견하고 곧바로 토리와 함께 동물병원으로 가서 고양이 사료를 사왔다. 처음에는 어찌나 경계가 심한지 편하게 먹으라고 창고위에 밥그릇을 올려두면 우리가 사무실에 들어갈 때까지 밥 근처에 앉아만 있었다. 차츰 서로의 얼굴이 눈에 익어가면서부터는 사료봉투 소리만 들려도 어디선가 나타나 자리를 잡고 앉아 밥을 기다렸다. 우리가 서서 밥 먹는 모습을 구경해도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여름철 장마가 시작될 즈음에는 창고 안으로 밥그릇을 옮겨두었다. 가림막 없는 창고 위에서 장맛비를 맞으며 밥을 먹게 할 수는 없었다. 상담소 대부분 활동가들도 창고 안으로 밥을 주는 장소를 옮기면서 호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상담소 공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니 활동가들의 동의도 필요한 일이었다. 커다란 박스에 동그란 구멍을 뚫고 안에 신문지를 잘게 잘라 넣어둔 푹신한 자리도 만들어주었다. 파란 눈에 블랙홀마냥 빠져버리겠다며 유치한 발상의 ‘호리’라고 붙여준 이름도 제법 알아들었다. ‘호리’ 부르면 한쪽 귀가 살짝 내려갔다가 쳐다보는 정도랄까.

‘호리’의 밥을 챙겨준 이후로 더 많은 길고양이들이 상담소를 찾았다. 길고양이들간의 네트워킹이 잘 되어있는 모양인지 수시로 새로운 길고양이들이 다녀갔다. ‘뚱땡이’ 길고양이부터 ‘청쏘녀’ 길고양이까지 창고 안에 놓아둔 밥을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그런데 ‘뚱땡이’가 나타난 이후부터 ‘호리’가 상담소를 잘 찾지 않았다. 아마도 영역다툼에서 밀린 듯싶었다. ‘뚱땡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뚱땡이’ 사진은 한 장도 남겨두지 않았다)

최근에 나타난 ‘청쏘녀’는 이제 막 독립한 길고양이로 보인다. 검은색 고등어 무늬에 초록색 눈이 어찌나 반짝이는지, 사람도 많이 경계하지 않아 창고에 있다가 우리가 다가가면 멀리 도망가지도 않고 앉아서 쳐다본다. ‘호리’를 위해 만들어뒀던 푹신한 자리를 ‘청쏘녀’는 무척 좋아한다. 추운 날씨에 그마나 그곳이 따뜻한지 밥이 다 떨어졌나 보려고 창고 문을 열면 박스 안에 있다가 후다닥 창고 창문으로 올라가곤 한다.

또 다른 ‘치즈’ 케이크 무늬 고양이는 상담소 주변 일대에 여러 명의 캣맘(자발적으로 지역 내 길고양이들에게 먹이급여와 구충, 나아가 불임수술 등을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보살피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 캣대디, 케어테어커라고도 함)을 둔 길고양이로 보인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목에 작은 방울 표식을 달고 있어서 사람과 함께 살면서 자유롭게 외출을 하는 고양이인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왼쪽 귀에 TNR(Trap-Neuter-Return, 안전하게 포획(Trap)하여 피임수술(중성화, Neuter)을 마친 뒤에 제자리에 방사(Return)하는 것을 뜻하는 국제적인 공용어, TNR를 한 길고양이는 왼쪽 귀를 1cm가량 잘라 표시함) 표시가 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상담소 계단 위까지 따라 올라와 밥을 달라고 칭얼거린다.

길바닥에 앉아 앞발을 핥고 있는 고양이

호리, 뚱땡이, 청쏘녀, 치즈…. 상담소 내 창고를 찾는 길고양이들과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 위주로 내어진 길, 도로, 자동차들은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에게는 낯선 위협이 되기도 한다. 비단 환경문제만이 아니다. 사소하게 여겨져 주변화되어 소외된 것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없는 연대와 공감을 느끼게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수준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위대함과 도덕적 수준까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누리는 것들이 누구의 것을 박탈하여 가지게 된 것이라는 일말의 양심과 그에 대한 책임은 필요하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주는 길고양이들에게 말이다.

p.s
그나저나 호리가 요새 도통 상담소에 나타나지를 않는데, 누군가 보게 된다면 상담소 방문을 권해주세요.

※ 란  동거 견 복길이의 앞발냄새를 킁킁거리며 맡길 좋아하는 변태. 복길이 앞발냄새는 맡아본 사람만이 그 향긋함을 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