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 왕초보 입문기
송이송 | 본 상담소 회원
5주 과정의 ‘왕초보 의역학’ 첫 강의였던 <사주명리학 개요> 자료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했다. 아마도 이 문단을 몇 년 전에 접했더라면 “이게 무슨 비과학적인 이야기람.”하면서 코웃음을 쳤을 것 같다. 그런데 시간과 돈을 내어 그 먼 곳까지 달려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듣고 있게 되다니. 인생이란 참 재미진 것 같다.
“모든 사람은 병(病)을 안고 태어난다.”
동의보감 시작 부분에 나온다는 이 문장, 첫 강의에서 들었던 말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이었다. 선생님은 이 문장을 인용하며 인간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주와 지구의 축이 어긋나 있듯 우주의 기운을 타고 나는 인간 또한 기운이 어그러질 때 태어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결핍과 병의 씨앗을 안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21세기 소년'의 작가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또 하나의 유명한 작품, ‘플루토’라는 만화를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만화는 미래의 로봇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데, 한 박사가 만든 완벽한 로봇은 한 번도 깨어나지(작동을 시작하지) 못한다. 너무도 완벽하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 합리적인 사고의 경우의 수를 회로에 넣었기 때문에 그 로봇은 그 중 어떤 치우친 감정이나 생각을 갖지 못해서 영영 작동을 시작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각종 병을 안고 살아가며 약한 몸에 대한 원망과 스트레스를 키워왔던 나에겐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고 병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몇 개월 전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 발병 이후로 음식을 가리고 몸을 사리며 받아온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날 밤은 “그래, 인간은 다 병을 갖고 태어나는 거래잖아, 내가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면서 몇 개월간 참아왔던 치즈스틱(!)과 흑맥주(!!)를 먹고 행복에 젖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여지없이 찾아온 두드러기에도 그 전보다 훨씬 너그러운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좋은 사주 없고 나쁜 사주 없다.
사실 ‘사주를 본다.’라고 하면 다들 자신의 사주가 좋은지 안 좋은지 부터 궁금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강사였던 안도균(도담)선생님은 사주명리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길(吉)이 흉(凶)이고 흉이 곧 길이다.’라는 이치를 깨닫고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부모 복이 들어 있다고 하면 좋고 길한 것 같지만 부모 복으로 인해 의존적이 되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이는 길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인생은 이렇듯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변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길(吉)함과 흉(凶)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다만 어떤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나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행운이 들어왔을 때 그 기운이 나에게 좋은 사건을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또 다른 나쁜 국면으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살면서 겪을 건 어차피 다 겪게 된다!’는 게 선생님의 지론이었다. 가끔 태어나는 아기에게 ‘좋은 사주’를 주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골라잡아 제왕절개를 무리해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면서 이럴 때 결국 부모의 욕심이 아이에게 흘러가는데 이게 어찌 좋을 수 있겠냐면서 순리대로 태어나 어떤 기운이든 받아 안고 살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태어나면서 얻은 기운을 잘 쓰면서 살아가는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주명리학 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라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강의를 신청했던 나는 어느새 이런 이야기들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사주명리학의 매력에 빠져들어 갔다.
나는 금, 너는 토?
사주팔자는 기본적으로 이 8개의 칸에 들어간 글자들이 가진 기운을 가지고 해석을 해내는 것이다. 그 중 ★표가 쳐져있는 일간에 들어가는 기운이 나의 기본을 구성하는 씨앗과 같은 것으로 나의 기운의 벡터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경(庚)금(金)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바윗덩어리에 해당하는 기운이라고 할 수 있고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한 글자로만 모든 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자리에 수(水)가 엄청나게 많아서 나는 말하자면 ‘물속에 가라앉은 바윗덩어리’라고 할 수 있단다. 이걸 보자마자 내가 몸이 무겁고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하체의 순환이 되지 않아 만병에 시달렸던 것이 설명되는 것 같았다. 곧바로 함께 살고 있는 애인의 사주도 찾아보니 기(己)토(土), 텃밭의 기운이었다. 텃밭의 기운은 비옥하게 잘 가꾸어내는 기운에 비유될 수 있다는 설명을 보고, “피~”하고 입을 삐죽였다. 왠지 내 사주는 나쁜 것 같고 애인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아무리 좋은 사주 없고 나쁜 사주 없다지만 바윗덩어리보다는 텃밭이 더 좋은 것 같은 이 느낌적 느낌을 어쩌랴.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갈수록 각 글자가 가지고 있는 기운을 그렇게 간단히 해석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옆자리에 어떤 글자가 있는 지에 따라 달라지고 또한 글자간의 관계라는 것이 있어서 나머지 글자들과의 관계에 따라 해석해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바위, 토=텃밭이라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해석으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적어지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왕초보라서 행복해요.
그렇지만 이제야 막 입문하는 단계인 나는 사주의 깊이를 알게 되는 경지까지 기다릴 틈이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강좌를 듣고 오기만 하면 그날 배운 걸 이용해서 애인이랑 나랑 왜 잘 맞을 수밖에 없는지를 찾아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예를 들면 애인의 사주에 화(火)가 4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나는 수(水)가 많으니까 내가 너의 불(火)을 꺼뜨려서 네가 내 앞에서 순해지는 거야!”라며 신나한다든지, “나의 벡터는 금(金)이라서 불로 제련이 필요한데 내 사주에는 화(火)가 없어. 너의 불(火)이 나를 제련해 주어서 내가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거야!”라면서 의미부여를 하며 그저 신이 났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이런 것에서 괜한 신기함과 신남을 느꼈다. 사주 공부하는 지난한 과정에 이런 재미도 있어야 하는 거지. 하지만 사주팔자라는 것이 참 복잡한 것이어서, 이렇게 간단히 설명될 수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8개의 칸에 각각 어떤 글자가 들어가는지, 어느 자리에 위치하는지, 옆자리에 무엇이 있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해가 지나감에 따라 대운 등이 달라지며 합이며 충이며 등등의 것들도 적용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주팔자는 총 57만 가지의 수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껏 누려왔던 소소한 재미들은 사실 왕초보이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내 운명은 나만이 알 수 있고, 만들어갈 수 있다.
사주의 경우의 수가 57만 가지라는 건 결국 내 운명은 나만이 알 수 있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사주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내 사주에 깃든 기운이 실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만큼 세세하게 서사를 엮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사주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이런 기운을 읽음으로써 내 인생의 서사를 관통하여 엮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닐까. 또한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사주해석을 궁금해 하고 점을 치는 궁극적인 이유는 내 삶을 알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기에 앞으로 사주명리학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 그리고 사주팔자에 대한 좋고 나쁨의 판단을 넘어서서, 내 인생에 흘러들어오는 기운을 ‘잘’ 살아가기 위한 기운으로 만들어가는 지혜를 얻게 되길 기대해 본다.
송이송 사주명리학 입문 과정에서 힐링되고 있는, 계속해서 더 공부하고픈 여자사람입니다. 공부를 하다가 이성애 관계에만 대입할 수 있는 해석틀을 보면 신경질이 나는 레즈비언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