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잔인한 나의, 홈> 감독 아오리
interviewer_나랑 (본 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
Q 상담소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소개를 해 달라.
A 2009년에 다큐멘터리 학원을 졸업하고 영화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조감독으로 활동을 하면서 그 때부터 상담소에서 하는 <작은 말하기>에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상담소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은 말하기>에서 공간에 대한 공포, 가해자와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공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어떤 기억이 떠올랐고, 그 기억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어느 날 <작은 말하기>에서 사람들이 “여기는 가해자 집입니다. 여기는 가해자 집 백 미터 앞입니다.” 이런 푯말을 써놓아 가해자들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상상에 불과하다며 씁쓸하게 마무리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대신 복수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경험이 지금의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니까, 내가 통쾌하게 대리만족 시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놈에게 복수하는 법’을 찍었다.
Q 영화 <잔인한 나의, 홈>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지인에 의한 성폭력에 관한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놈에게 복수하는 법’을 상영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하는 데 어떤 분이 왜 감독 자신이 주인공이냐고 묻길래 영화에 참여할 사람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지금 <잔인한 나의, 홈>의 주인공인 친구가 자신이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고 연락처를 남겼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보니 그 친구는 나를 도와주고 싶었던 게 우선이었는데, 나는 그 친구가 굉장히 하고 싶어서 영화를 찍겠다고 한 줄 알았다. 결국 우리가 서로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어 준 것이다.
Q <잔인한 나의, 홈>은 어떤 영화인가?
A 이 영화는 친족성폭력에서 시작하는 가족 이야기다. 가족들이 친족성폭력 피해자인 그녀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고 똘똘 뭉쳐 그녀를 내치는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 친구가 가족과 부딪치면서 자기 스스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가족이라는 공간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안전한 공간일까? 가족이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버려야 하는 게 가족이라면 그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게 가족을 통해 ‘믿음’이라는 가치를 배우고 성장하는데, 그 가족이 믿음이라는 걸 깨버린다면, 오히려 가족 바깥에서 믿음을 주는 사람이 또 다른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Q 주인공과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관계는 어땠나?
A 개인적으로는 잘 맞는 것 같다. MBTI가 비슷해서 그런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설명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는 편이다. 딱 한 번 갑자기 이 친구가 갑자기 화를 내며 촬영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무마해서 넘어갔지만 이후 왜 그랬는지 고민을 해봤더니, 이 친구가 그동안 어떤 설명이나 납득도 없이 가해자로부터의 폭력을 받아들여야 했었고 그 경험 때문에 자기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에 매우 민감해져 있었던 거다. 그런데 내가 그 친구의 이야기도 제대로 듣지 않고 판단해 버린 것이다. 이제는 주인공 친구의 이러한 상황과 경험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잘 지내고 있다. 이 관계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어떻게 지속될지 나도 궁금하다. 영화라는 목적 없이 다시 만나도 내가 주인공 친구와 잘 맞추면서 지내게 될지, 서로 부딪칠 일이 생기면 내가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지 안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감독이기도한 캐릭터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 주인공이 혹시나 상처받지는 않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걱정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어떻게 해야 잘 될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찔린다. 주인공이 영화 촬영 중 재판을 진행했는데, 영화를 위해서라도 가해자에게 유죄가 반드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 마음을 주인공에게 들키긴 싫었다. 그래도 활동가와 감독이 짬뽕된 캐릭터인 내가 주인공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옆에 있었던 것밖에 없지만 옆에 있다는 게 엄청난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Q 올해 ‘9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는 영상으로 말하기로 진행되었는데 작품들을 보고 어땠는지 궁금하다.
A 성폭력이 발생하는 공간에 대한 공포감이 공감되는 작품이 있었다. 참가자 중 한 분이 엄마가 집에서 빠져나갔을 때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비어있는 그 공간에 대한 공포감을 영상 작품에서 표현했는데, 그 작품을 보면서 나도 예전에 외할머니 댁에서 가해자와 같이 있을 때, 가해자의 동선이나 숨소리까지도 나의 살들이 다 기억하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동안 잊었던 그 공포감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기도 했다.
영상 작품들을 보고 어쩌면 성폭력에 대한 영화를 내가 아니라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참가자 본인들이 직접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영화 ‘놈에게 복수하는 법’을 거짓말로 만든 것 같기도 했다. 깊이 다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영화를 만들면서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를 표현할 때 왜 굳이 관객들에 설명을 해줘야 하나,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피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한 참가자의 작품을 보면서 저렇게 리얼하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 작품에서 표현된 것처럼 친족성폭력생존자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내 영화에서도 보여주고 싶다.
Q 언제쯤 어떻게 영화 <잔인한 나의, 홈>을 볼 수 있는지?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주인공에게 가장 힘이 되는 공간이 어디일까 지지해줄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다보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더라. 2013년 4월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를 목표로 시기를 맞추고 있다. 관객들이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친족성폭력피해자를 보는 일반적인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친족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오랜 기간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일이 성폭력인지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 등, 친족성폭력피해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참, 마지막으로 영화 후반작업 애니메이션과 음악, 번역 등의 비용이 필요한데 여성단체들이 미리 상영 예약을 잡아두고 선투자를 해주시면 어떨지 제안해보고 싶다. 현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에서 해피빈 모금함을(happylog.naver.com/yeolim)도 열어주신 상태이다. 많은 지지와 관심, 후원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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