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는 사이에도 성폭력이 있을 수 있나요?
본 글은 오마이뉴스에 개제된 기사 “<남자·여자다움> 강요하는 사회가 낳은 폭력(2012.09.06)”을 재구성 한 것입니다.
<From 불편이>
A 안녕하세요. 불편이님. 보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최근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신 것 같습니다. 불편이님의 고민과 걱정은 상담소에도 문의가 많이 오는 일종의 ‘데이트 성폭력’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편이님처럼 데이트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믿었던 사람이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무시한 것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를 호소합니다. 이미 성관계를 맺는 사이여서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연애 관계를 포함해 서로 성적인 친밀감을 바탕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 성폭력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는 일은 드뭅니다. 성적인 관계나 행위는 당사자들만 공유하는 사생활인 탓에 외부에 알려지기 어렵고, 불편이님의 경우처럼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불쾌한 성적 행위로 인식하고 넘어가는 일도 많습니다. 또 자신이 겪은 일을 성폭력으로 인지하더라도 성관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여전히 여성에게 도덕적 비난이 집중되는 현실 때문에 사건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데이트 폭력을 유발하는 ‘남자다움’-’여자다움’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별 규범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기대하지요. 이러한 기대와 역할 수행 강요는 개인의 다양한 가능성과 특성을 무시한 채 성별 규범에 따라 행동하도록 강요합니다. 때문에 감정 절제, 강한 육체, 책임감 등을 요구 받으며 자라온 남성들은 자신의 약한 모습이나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그 탓에 많은 남성들이 사귀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조차 차별적이고 폭력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여성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성장하길 강요받습니다. 동시에 여성은 타인을 정서적·물리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하도록 요구받지요. 결국 타인(남성)에게 보호 받으며 (남성을) 보조하는 위치를 강요받는 셈입니다.
이러한 성별 규범 안에서 성장한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될까요? 각자 다른 언어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생겨, 결국 데이트 관계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리드하고,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거나 돌봐주는 ‘이성애 연애각본’이 구성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은 많은 경우 이런 ‘연애각본’ 안에서 생기는 오해로 시작됩니다. 실제 데이트 성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가해자는 피해자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며 자신의 행위를 성관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단순히 당사자 간의 견해 불일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인 성적 행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나 “여성의 NO는 진짜 NO가 아니다”라는 속설은 여성의 거부 의사가 진심이 아니거나, 거부 의사가 있더라도 밀어붙이면 뜻을 굽히게 되어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역시 이런 사회적 인식과 자신의 불쾌한 감정, 상처 사이에서 자기의 경험을 어떻게 명명할지 혼란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적 행위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성별규범이 만연한 사회 안에서는 데이트 상대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렵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집니다. 때문에 성적 행위에서도 서로의 욕구와 기분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일방적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데이트 성폭력뿐 아니라 스토킹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스토킹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요. 스토킹이라고 하면 남녀간의 ‘애정 문제’ 정도로 생각하거나 몇몇 유명인들의 사례만 떠올립니다. 현행법 또한 처벌의 수위가 미미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고백을 거절했음에도 지속적으로 문자나 전화, 방문 등의 접촉을 통해 만나줄 것을 요구하는 행위는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납니다. 게다가 당사자의 주변인들이 이러한 행위를 사랑에 대한 끈기 있는 도전이라며 응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이고 지속적인 구애 행위를 과연 로맨스라고 여길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이트 성폭력 해결은 평등한 소통과 관계에서부터
데이트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평소 대화에서 상대방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 견해만 강요하면 상대방은 상처를 받고 관계는 삐걱거리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적 의사소통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물론 남성은 성적인 능력이 탁월해야 하고, 여성은 성적인 관계 요구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운 문화 속에서 성적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서로에 대한 일상적 소통을 점차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편이님도 남자친구와의 일상적인 소통방법이나 관계를 평등하게 바꾸기 위해 남자친구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어느 한쪽만이 힘든 상황을 감내하며 상처 받지 않도록 관계를 정리하는 결단력도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데이트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별 규범을 해체하고, 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도록 하는 사회구조적인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특히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요구받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버리고, 타인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는 교육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성별에 구애 받지 않고 평등과 소통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야 말로 데이트 성폭력의 예방과 근절을 위한 작지만 큰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From 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