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지나고 겨울, 다시보기
잇지 | 9회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기획단
서울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아스팔트길도 하얗게, 빌딩도 하얗게 도톰한 옷을 입은 것 같다. 겨울이 왔다는 게 실감난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올여름을 함께 보냈던 그녀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맨손을 호호 불며 장갑도 없이 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그녀들을 처음 만난 것은 6월 말이었다. 소매가 짧은 반팔, 다리가 드러나는 반바지, 얇은 소재의 레깅스 같은 것들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서서히 무더워지기 시작하던 초여름 창문 사이로 축축한 바람이 땀을 식혔다. 살갑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그랬다. 상담소 활동가 마도의 설명과 안내에 따라 첫 만남을 가졌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 어색하고 낯설게 만났다. 10월에 있을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이하 말하기대회)를 향해 함께 걸어가기 위해.
그날 이후로 일주일에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세 번을 만났다. 말하기대회가 열리는 10월 24일까지. 차곡차곡 벽돌을 쌓듯 우리 사이의 거리도 차츰 좁혀졌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또 그 다음에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해 아는 것들, 공유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우리는 조금씩 ‘공감’이라는 집을 지어갔다. 그동안 할 수 없던 말들, 눈치 보며 꺼냈던 말들이 이곳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드러났다. 꾹꾹 눌러왔던 얘기들을 불꽃처럼 터뜨렸다. 그 광경을 보며 함께 울었고 함께 웃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말들이 바탕이 됐기에 말하기대회 무대와 전시까지도 올 수 있었다. 갑자기 그녀들이 했던 시시껄렁한 농담, 썰렁한 ‘드립’들이 생각나 피씩 웃음이 난다. 찬바람이 손등을 따갑게 스치는데 그리 춥지가 않다.
듣기 참여자들이 보는 무대와 전시회 이면에는 말하기 참여자들과 기획자들의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숨겨져 있다. 4개월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몸 워크숍과 영상워크숍이 진행 되었다. 이번 말하기대회는 영상이라는 새로운 말하기 매체를 시도해 말하기 참여자들이 영상까지 창작해야 했다.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는 참여자에게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다. 또 거리를 좀 멀었던가.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한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야 했다. 폭우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입을 삐쭉대며 툴툴거렸지만 불가피했던 몇 번을 제외하곤 불참한 적이 거의 없었다. 시작 30분 전부터 와서 기다리던 ‘모범생들’도 있었고 아픈 몸을 이끌고 온 ‘열혈 참여자’도 있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녀들의 자세에서 ‘우리’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몸 워크숍에서는 선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몸을 움직이며 내 안의 상처를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써보고 소니 선생님의 ‘힐링’음악에 맞춰 움직이거나 명상을 했다. 아무래도 육체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다보니 지치기도 했지만 디톡스 주스와 아로마 향초가 있었기에 그 정도가 덜 할 수 있었다. 특히 아로마 향초는 워크숍이 끝난 후에도 참여자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그 향과 맛과 음악이 내 몸에서 어른거리는 듯하다. 어렴풋하게. 선희 선생님의 서툰 한국말도 생각이 난다. 여담이지만, 말하기대회 무대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발그레하게 취한 선희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유난히 선생님의 서툰 한국말이 귀엽게 들렸던 건 나뿐일까.
영상 워크숍은 수경, 수목 두 선생님의 도움 하에 이뤄졌다. 기획안을 짜고 카메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참여자들은 단시간에 완성도 높은 영상을 만들어냈다. 선생님들도 완성도에 놀랐다는 후문이다.
영상 작업을 하며 무거운 장비를 들고 촬영도 하고 복잡한 편집프로그램을 다뤄야 하는 기술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우리의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우려와 기대였다. 지금껏 말하기대회 준비가 우리끼리의 과정이었다면, 영상과 무대에서 할 말을 준비하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듣기참여자들이 함께하는 과정이었다. 정답은 없었다. 결국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정제하지 말고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뿐이다. 이후에 일어날 일들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참여자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도 우려와 기대는 나를 안심시킬 줄 몰랐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말하기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마도와 내가 분주해졌다. 나는 아예 상담소로 출퇴근하며 대회 준비를 했다. 무대 큐시트를 짜고 전시 배치를 고민하고 자질구레한 물품들을 챙기며 대회가 임박해왔음을 되새겼다. 듣기 참여자들의 참가메일이 속속 도착할 때마다 설레기도 하면서 동시에 더 잘 준비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모든 활동가가 퇴근하고 난 뒤에도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또 봤다. 끼니는 김밥이나 간편한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는 일이 많아졌고, 마도와 담배 피우는 횟수가 늘어났다. 하지만 하기 싫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마도와 말하기대회를 찐하게 알게 된 시간이었기에,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그 모든 것에 고맙기까지 하다.
무대와 전시 기간은 나도 모르는 새 빠르게 지나갔다. 무대와 전시가 동시에 시작되는 바람에 그 전날까지 밤늦도록 전시장에서 작품 설치로 골머리를 앓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전시장으로 가서 몇몇 작품을 손보고 상담소에 들렀다 바로 무대가 있는 아트레온으로 갔다. 업체로부터 물품을 받고 로비 세팅을 하고 듣기참여자들에게 자리 안내를 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것이었지만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그날은 어떤 느낌보다 어떤 일을 했는지만 기억난다. 무대가 끝난 뒤 대기실에서 참여자들을 보자 그제야 말하기대회 당일이라는 게 실감났다. 끝내 내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울지 않았다. 그녀들은 울음 그 이상 혹은 그 이하의 감정을 받은 듯했다. 그녀들과 함께 한 뒤풀이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화장도 다 번지고 눈엔 졸음이 가득했지만 우리는 동이 트도록 신촌거리를 누볐다. 양손에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서.
인사동 전시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정성스런 방명록과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작품에 꽃을 갖다 놓는 사람도 있었고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고 전시장만 쓱 둘러보고 나간 사람도 있었다. 좋은 듣기참여자 나쁜 듣기참여자는 없다. 위로나 지지, 비난과 욕설, 그도 아니면 무관심. 모두 예상했던 반응들이다. 하지만 우리를 욕하는 참여자들은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예전보다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진 요즘, 이들이 공개적으로 입을 열기엔 힘든 상황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공분을 사지 않는 성폭력에 대한 논의는 회피하고 있지 않나. 듣고 싶은 성폭력의 경험에만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기대회를 마친 지금 성폭력에 대한 복잡한 고민들만 더 늘어났다. 눈이 까만 밤하늘에서 펑펑 내려온다. 환하다기보다 아득하게 어둡다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들어간 말하기참여자 모임 카페에 한 참여자가 붕어빵을 먹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일주일이나 지난 글이지만 반갑게 댓글을 남겼다. 난 슈크림 붕어빵도 먹어보았다고. 지난여름처럼 빈번하고 잦은 만남은 아니지만, 그 시간이 엮은 관계에 기대어 느슨하게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일상을 전하며 지내고 있다. 함께 찍었던 사진과 글들을 새삼 다시 보니 입가에 씨익 웃음이 번진다. 남현, 도경, 봄, 차차, 지현, 상정, 마도, 선생님들, 상담소 활동가들.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 뒤늦게 이렇게나마 전한다. 올여름의 추억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잇지 “딱히 갖고 있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어요. 그게 뭐가 잘못됐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