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댄스는 사랑의 묘약
박상희 | 본 상담소 회원, 전 상담활동가
그즈음 나는 암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항암치료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경과가 좋다는 말을 들어 기분이 룰루랄라인 상태였다. 동네 커피숍에 앉아서 사장님과 무슨 운동이 좋을까, 헬스는 지겹고, 뛰는 건 못하겠고, 건강관리를 위해 뭐든 하긴 해야 되겠다고 얘기 중이었다. 그때 연세 지긋하신 우아한 어르신이 커피숍에 들어오셨다. 우리 얘기를 들으시더니 가방에서 보석이 박힌 공연복을 보여주셨다.
나 : “이게 뭐에요?”
어르신 : “나 벨리댄스 하는데 이런 거 입고 해. 옆에서 수업하니까 한번 구경 와요.”
그날 이후 며칠이 지나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벨리댄스 수업을 보러 갔고 나는 신나는 음악에 매료되어 그 즉시 벨리댄스와 사랑에 빠졌다.
두 아이를 키우는 나. 주부로 살림하는 나도 나고, 잠깐이지만 무대의 나도 나다. 평범한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이다. 아마추어로 시작할 때도 내 마음은 언제나 프로였다. 늦게 시작했으나 인생의 상처를 알고 적절히 치유도 된 지금 나는 남의 인생 들러리가 되어 살기 싫어졌고, 내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벨리댄스는 나에게 인생의 주인공이 되도록 해주는 사랑의 묘약과 같다.
일상에서 받은 영감을 벨리댄스 동작을 통해 표현하는 일은 정말로 재미있다. 멋진 영화음악을 듣다가도 동작이 떠오르고, 하늘을 나는 새를 봐도 군무로 표현하고 싶고, 김연아의 아름다운 아이스 쇼를 보아도 춤이 떠오른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나도 뭔가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겨서 정말 좋다.
벨리댄스는 한국 사람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집트 터키 지방의 민속무용에서 유래했고 주된 동작이 인체의 관절로 원, X자, S자, 직선을 만들고 스텝과 턴을 이용해 연결해 추는 춤이다. 댄서의 개성에 따라 우아하게, 때로는 귀엽게, 섹시하게,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춤을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 더 행복해졌고 조금 더 젊어졌으며 조금 더 생기가 생겼다. 이렇게 좋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벨리댄스를 퍼뜨려 내 모든 대화는 “기승전벨” 이 되었다. (*기승전벨 대화의 결론이 모두 벨리댄스로 귀결된다고 남편이 지어준 별명)
어떻게 하면 춤을 잘 출 수 있을까? 정말 궁금해서 홍신자 선생님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실 때 찾아가서 여쭤보았다. 홍신자 선생님은 웃는돌 공연단을 이끌고 있는, 손꼽히는 현대무용가다. 그 분은 내 손을 잡더니 웃으며 “SPIRIT” 이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영혼이라니. ‘영혼’, 춤이 영혼을 표현하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 달래주는 데 효과가 있구나. 선생님의 말뜻을 나는 나름으로 해석했다.
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특히 춤을 췄으면 좋겠다. 객관적인 증거를 대라면 할 말은 없지만 춤이 분명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성폭력의 상처 때문에 아파하고, 터놓고 얘기하고,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가해자에게 따지고, 상담을 받는 일련의 활동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것으로 성폭력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가 되나? 그런 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전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용기를 내서 사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주변에 내가 놓치던 재미있는 일들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굳이 벨리댄스가 아니어도 좋다. 집 주변을 돌아보면 각종 센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춤을 가르쳐주는 곳이 많다. 라인댄스, 방송댄스, 스포츠댄스, 다이어트댄스 등 조금씩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려 보자. 해보지도 않고 적성에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는 없다. 나도 내가 춤을 추며 살게 될 거라고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은 재미있는 거라 생각한다.
사실 인생이란 생각해보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스펙을 쌓거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 했다면 서른이 넘은 나이에 춤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영혼의 소리를 따라 춤을 선택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원 교육을 받을 때도 영혼의 소리에 따랐던 것이고 그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지나보면 영혼의 소리를 따랐을 때 내 삶은 한층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춤을 안 춰도 시간은 간다. 나는 이왕 가는 시간 즐겁게 춤추며 지내기로 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요. 프로안무가를 꿈꿉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