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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나의 인생
  • 유리화영 |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기획특집 : 내 삶의 활력소, 춤

춤은 나의 인생

유리화영 |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얼핏 제목만 보면 “이 사람은 굉장히 춤을 잘 추는 사람이거나 댄서?”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일랜드 전통춤, 아이리시댄스(irish dance)를 춘다. 간혹 나의 사생활 영역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매우 쑥스러워하면서 ‘아이리시댄서’라고 소개할 때도 있다. 춤을 잘 춰서 댄서라고 소개하는 건 아니고 한국에는 이 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기도 하고 출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되기 때문에 가끔은 아이리시댄서라고 소개한다.

아이리시댄스를 추기 전 나의 춤 이력은 꽤나 넓고 얕다. 탭댄스를 하는 친구를 따라 갔다가 댄스보다는 사람들한테 정들어서 남고, 또 어쩌다보니 같이 하던 사람들 모두 아이리시댄스로 종목을 바꾸어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탭댄스에서 아이리시댄스로 옮겨가면서 한 시간이 벌써 9년! 아이리시댄스는 내 인생에서 넓고 얕은 취미에 깊이를 준 유일한 취미라고 할 수 있다.

잠시 발이라도 살짝 담갔던 취미는 뭘까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친절하게 소개하면 초등학교 때 CA시간에 들어갔던 무용반을 시작으로 춤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됐고, 중학교 때는 잠시 동네오빠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에 태권도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암울했던 고등학교시기를 지나 대학생이 되자 온갖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중 마음을 제일 사로잡은 것은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새터 공연이었다. 잠결이었지만 너무도 처절한 문둥이의 몸짓에 탈패에 들어가서 꼭 저 춤을 춰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야외 무대에서 아이리시댄스 공연을 하는 모습

나를 움직인 것은 고성오광대의 1과장에 “문둥이 춤”. 누가 추는지도 모르고, 그 춤이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지만 춤의 처절함이 와 닿았었다. 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선 매우 허탈했으나 그래도 그 춤은 나를 움직였다.

여성의전화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더욱 나의 욕구에 충실해졌다. 욕구에 충실한 인간이 되고자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을 주기로 새로운 것에 심취했다. 재즈댄스를 시작으로 뮤지컬학교에 들어가고, 재즈댄스, 발레, 현대무용, 판토마임, 스윙댄스, 그리고 탭댄스와 아이리시댄스까지. 정말 다양한 취미를 즐겼던 것 같다. 춤마다 특성이 있지만, 음악과 어우러지는 가운데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고, 댄서에 따라 다른 모양, 전에 없던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한다.

끌리는 대로 하다 보니 재즈댄스를 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 맛을 들였던 것 같고,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에 적응하고 유연성을 잃어가는 내 모습을 알아차리면서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리시댄스를 하면서 공동체의 소중함과 자매애를 배운다. 개인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리시댄스의 멋과 재미를 위해서는 각 개인이 서로의 소리와 움직임을 배려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상대의 호흡에 맞춰 발소리를 내고, 춤 특유의 절도 있는 동작을 한다. 그리고 체력소모가 많은 춤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큰 숨이 쉬어지고, 나도 모르게 표정은 심각해지기 때문에 공연을 위해서는 가끔 표정 관리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춤을 추면서 말하기 힘든데도 말을 하고 있었다. 공연을 잘 하기 위해서는 줄을 맞추라는 말도 하게 되고, 박자를 맞추라는 말, 심지어 관객에 대한 얘기까지 춤을 추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한 소통을 하고 있는 셈이다.

관객들이 둘러선 광장에서 진행되는 아이리시댄스 공연

아이리시댄스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TAP風”친구들과 몸으로 배우고, 익혀서 알게 된 것이다.(첫 시작을 TAP風에서 했고, 지금까지 9년간 쭉 함께 하고 있다.)

생소한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면 아이리시댄스는 ‘리버 댄스’나 ‘로드 오브 더 댄스’로 유명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모 전자회사의 TV광고에서 나온 적이 있다. 춤은 크게는 소프트댄스와 하드댄스로 나누는데 소프트댄스는 발레와 조금은 비슷하지만 춤이 가진 느낌은 매우 절도 있고 힘 있어 보인다. 하드댄스는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추기 때문에 아이리시 탭댄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탭댄스와는 다르다. 탭댄스의 시초가 되는 춤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여러 명이 나와서 일치된 동작으로 같은 발소리를 내며 춤을 추거나 한두 명이 신기에 가까운 동작을 선보이기도 한다. 장르는 춤이지만 영국에서는 익스트림스포츠라고 분류한다고도 하는데 하면 할수록 도전의식을 자극하기도 한다. 춤은 상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추며, 다른 사람과 손을 잡는 것 외에는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점프 동작이 많기 때문에 전신을 다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상체를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지만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놀이와 즐거움을 다 제한해서 춤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상체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아이리시댄스를 하면서 내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단순한 생활의 활력소가 아니다.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으로 달라지게 되었다. 어쩌면 호기심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걸 했을지도 모르지만, 함께 변화하고 있었다. 처음엔 안정적인 공간에서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으니 알려주는 대로 배웠고, 그것에 안주하는 때도 있었다.

야외 광장에서 함께 춤을 추는 아이리시댄서들

선생님이 유학을 갔을 때는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 모두가 선생이 되고, 안무를 짜고, 수업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의 폭도 매우 다양해졌다. 한국에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모임과 교류하면서 아이리시댄스를 공연하기도 하고, 여성의전화나 다른 단체들의 행사에 가서 공연을 할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아이리시 음악을 하는 동호회와도 만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흔히 보는 엄청난 실력의 아이리시댄서들은 5살부터 시작해서 20살이 넘으면 은퇴하거나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프로가 된 사람들이다. 서른 살이 넘어서 시작해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춤을 추려는 게 엄청난 무리수를 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일랜드 사람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걸을 수만 있으면 춤을 춘다고 한다. 그건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서 생활의 즐거움, 흥을 잊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아이리시댄스를 통해서 좋은 사람도 만나고, 변화하게 되고, 일상의 즐거움을 잊지 않게 되었다. 나의 발랄함이 다른 사람한테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길 바라기도 한다. 그리고 즐거움을 위한 또 다른 기회를 계획 중이다.

※ 유리화영 / TAP風이 궁금한 분들은
http://cafe.naver.com/tappung 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