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댄스타임 5인5왈(曰)
시놉시스
한 산부인과 의사가 낙태를 시술한 병원과
동료의사들을 고발하는 사건으로 떠들썩해진다.
이를 계기로 종교, 시민단체, 각종 협회들은 성명서를 내고
언론 또한 물 만난 마냥 연일 보도를 이었다.
그러나 정작 이 부산스런 움직임에 가려져
드러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용해진 듯 보이는 몇 년 뒤,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란
한 장의 웹자보를 본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
평범한 직장인, 교직에 있는, 곧 학부모가 될,
아직 학생인 그녀들.
찬반 논란에 가려져 있던 그녀들의 경험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과거로 간다.
다큐멘터리 82분 | 컬러 HD | 2013
프로듀서 강유가람 | 연출 조세영 | 촬영 손경화 | 조연출 박소현
<자, 이제 댄스타임> 300자평
맥주
사실 환풍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찍어서 마치 쇠날에 갈리는 듯한 느낌을 준 줌인 화면, 뮤직비디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환상 속의 시술 장면, 얼굴이 뿌옇게 처리되었다가 하늘 개듯 맑아지는 효과를 준 것 등 여러 시도들에 더 눈이 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시도들이 딱 떨어진다는 느낌이기보다 ‘도중’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임신중절을 다룬 다큐에서 이런 길 잃음은 대견하게 느껴졌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열심히 곁길로 샜던 것. 그 길이 언젠가는 합쳐질 거라고 믿는다.
영
‘자, 이제 댄스타임’이라는 제목과 함께 달팽이와 춤추면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이 장면을 ‘낙태를 둘러싼 담론들을 심각하고 무겁고 어두운 사회적 문제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한 여성이 자신의 감정, 욕망 그리고 몸에 대해 집중하는 댄스처럼 이야기할 수 있게 하자’라는 상징적 의미로 나름 해석해 보았다. 논란으로 떠들썩한 세상과 달리 낙태를 고민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 영화가 그 소리에 확성기를 대고 사회를 향해 첫 마디를 외쳐주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큰, 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해 보인다.
토리
낙태는 성문화, 여성혐오, 성별화된 의료 권력 등 많은 사회 이슈들이 겹쳐있는 문제이지만 수술 받은 여성 당사자의 경험으로만 환원된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여성 당사자들의 낙태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공한 것 아닌가.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다. 영화 내내 생존자말하기대회를 생각했다. 어떤 경험도 그 사람의 성별이나 다른 사회적 위치를 이유로 (무거운 족쇄를 찬 채)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만 헤엄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성들이 성적경험을 말한다는 것은 그 내용에 상관없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낙태가 불법이라는 사실보다 낙태를 둘러싼 경험들을 말하기 어려운 현실이 더 막막하다.
잇을
긴장됐다.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물론 형체 없는 것이지만)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여성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이크가 한 사람씩 벗겨지는 장면의 감동은 다른 관객들에 의해서도 거듭 언급됐다. 모자이크는 대개 어떻게 사용되는가. 모자이크로 가려지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모자이크로 가려야 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모자이크는 특정 경험이나 정체성이 낙인이 되고 삶을 위협하거나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지만, 특정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자이크로 가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사회의 책임회피, 사회의 외면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의 건강, 여성의 삶, 여성의 임신중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내 가까이 있는 이들과 대면해서 하자.
정희
작게 소곤소곤대던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뛰쳐나왔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통해 얻게 된 간접 경험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낙태를 여성의 선택으로 당연시했던 나에게 이 영화는 낙태로 얻게 되는 죄책감과 상처의 무게가 작지 않음을 알게 해주었다. 불법이므로 숨겨야 했던 여성들의 낙태 이야기가 대중에게 소개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낙태는 불법이 아닌 여성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더 강하게 주장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낙태가 여성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진 사회라면 여성들은 더 이상 낙태를 숨기지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