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통념을 깨는
새로운 연구활동을 펴는
본 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소장 권인숙
Q 상담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A 2003년에 상담소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주한 ‘군대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함께하게 됐어요. 그때 프로젝트를 함께하면서 인연이 만들어졌고요. 2010년에 성폭력 두려움 연구를 시작하면서 다시 함께하게 되었죠. 상담소를 들락거리면서 연구를 계속했고, 제가 쓴 글들을 상담소 활동가들이 되게 재밌어하고 새로운 논의로 받아주셨어요. 상담소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를 해나갈 수 있었고 인연이 좀 더 깊어졌죠.
Q 연구소 소장은 어떻게 맡게 되셨나요? 계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셔요.
A 사실 성폭력 두려움 연구를 하면서, 연구 역량으로 상담소에 기여할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왜냐면 제가 50대가 되는데, 50대에는 제 수준에서 사회적 역할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상담소는 일할 가치가 있는 단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부적으로 탄탄할 뿐만 아니라 여성적 지도력이 경험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느낌도 들었고, 구성원의 능력이나 판단력, 관점도 그렇고, 굉장히 생동감 있는 단체로 느껴졌어요. 도울 수 있다면 도울 부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있었어요. 상담소와 반성폭력운동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상담소와 함께 했을 때 학자 개인이 결과물을 내는 것과는 달리, 훨씬 실천적인 내용을 다룰 수 있고 사회적 의미가 더 커지는 부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Q 상담소와 ‘같고 또 다른’ 연구소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요?
A 상담소라는 곳이 명칭은 상담소지만 한국 반성폭력운동의 방향을 이끌어왔고, 연구 성과도 제시해왔던 단체죠. 각종 성문화운동도 주도해왔고. 그런 면에서 보면 상담소와 연구소가 서로 결합력이 떨어진다든가, 일하는 양식이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보다 더 연구라는 일을 특화하고 전문화해서 투자하고 여유를 만든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상담소와 연구소의 지형 차이라기보다는 연구소가 연구 부분에서 얼마나 전문성 있게 파고들 것인가, 또는 상담소의 활동에 더 많이 결합할 것인가 하는 부분, 즉 연구소의 정체성에 대해서 더 설명해나가야 하는 면은 있겠죠. 물 흐르는 대로 하자는 마음이 있어요.
Q 성폭력 예방과 성폭력 가해자 처벌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접근은 시민단체의 접근과 다른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어떤 비전을 갖고 계신가요?
A 시민단체는 국가의 개입을 어떻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도화에 대한 고민도 되죠. 제도화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바뀌지 않고 있고, 사회가 아직 성폭력 통념에 지배받고 있으니까요. 사회 인식을 변화해내는 데 상담소의 운동과 연구의 의미가 훨씬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죠.
‘성폭력은 문제다’라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은 굉장히 올라와 있는 상황이에요. 선정적인 언론보도가 많고, 그에 분노하고 있지요. 분노는 있는데 실제 주변에 있는 가해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이제 지겹다, 성폭력 얘기’, ‘불필요한 고소나 불필요한 문제제기가 너무 많다’는 식의 여론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죠.
Q 연구소가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을 소개해주셔요.
A 피해자다움에 대한 연구가 있어요. 이를 통해 기존의 ‘피해자는 이런 것이다’라는 사회통념을 극복하고, 성폭력피해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보면서, 현실을 직면하는 능력에 대한 가능성을 더 많이 열어보려고 해요. ‘성폭력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어떠한 모습이고’ 라는 기본 구도들이 있잖아요. 기본 틀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담론 생산이 목표죠.
성폭력 경험에 대한 인터뷰와 사례분석을 통해서 성폭력피해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성폭력피해가 구성되는 데 가장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무엇인지, 성폭력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회가 성폭력피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다루어보려고 해요. 성폭력피해에 대한 당연한 전제들을 여러 각도에서 해체해보겠다는 의도가 크죠.
성폭력피해자 각자는 자기 경험에 대한 평가가 있어요. 어떤 피해를 입었고, 무엇 때문에 피해라고 생각한다는 지점이 있거든요. 그 지점이 주로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 어떤 계기에서 이것이 극복되거나 변화되는지를 보려고 해요.
Q 성폭력피해자가 자신의 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A 그렇죠. 상황이 달라지죠. ‘내가 정말 고통스럽나? 내가 정말 두려운가? 내가 지금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나? 지금 가장 나에게 필요한 요소가 뭘까? 나의 지금 현재의 문제가 뭘까?’ 자기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직면할 수 있으면 성폭력을 바라보는 것, 대응하는 힘의 양이나 여러 간접 피해에 대한 대처능력도 완전히 달라져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도 극복과정이 달라질 수 있는데, 사회는 피해자 스스로 자기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별로 열어두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피해자에 대한 사회통념 등이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직면하고 솔직하게 문제화하는 걸 막고 있어요. 치유되지 못하도록 벽을 쌓는 것뿐만이 아니고, 스스로 자기 경험에 대해서 진솔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틀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 같아요. ‘피해경험은 이런 거야, 그러니까 너는 히스테리가 있어야 돼’ 이런 식으로요. 각종 사회적 가치관, 사회적 틀이 많이 개입되어 있는 게 성폭력이죠. ‘성폭력은 당하면 큰일 난다’는 식의 두려움을 강조하는 성폭력 보도와 그로 인한 성폭력통념 등을 해체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새로운 논리적 지형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연구소에 대한 비전이 있으시다면요?
A 연구는 바쁘면 참 안 만들어져요. 그래서 활동가 정체성을 조금 벗고 연구원 정체성으로, 쉬면서 할 수 있는 마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할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성과가 일주일 단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 두고 봐야죠.
꺄르르 웃음, 도닥도닥 쓰다듬과 함께 인터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권인숙 연구소장님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2013년 개소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을 응원하며 지켜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