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만남: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예비의료인을 만나다
정희 | 본 상담소 부설 울림 활동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서울여자간호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성교육과 성폭력예방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여성 예비의료인이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내담자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실행하고, 성폭력피해생존자에게 전문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하고, 부설 연구소 울림이 교육을 담당했다. 성교육과 성폭력예방교육을 각 7시간의 강의와 워크숍으로 기획했다. 한정된 시간으로 기획할 수밖에 없어서 내용 구성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참여자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하여 졸업 후 실무에 도움이 되도록 구성했다.
강사를 섭외하고 홍보물을 제작하여 학교 측에 보내고 학교로부터 프로그램 신청자 명단을 기다렸다. 예측과는 달리 신청자가 많지 않아 초반에는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도 예상했던 인원이 채워져 프로그램 진행 이틀 전에 최종 명단을 받고 막바지 준비작업을 할 수 있었다. 교육을 하루 앞두고 수료증과 명단을 만들며 어떤 예비의료인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11월 2일, 드디어 기다리던 교육이 시작되었다. 30분 전에 도착한 참여자도 있었고, 지각이 거의 없이 교육장소에 도착하여 수업을 기다렸다. 박차민정 님의 “‘여성다운’ 섹슈얼리티 다시 생각하기”, 김보화 님의 “현대사회 성적 친밀함 사랑 동거 결혼 그리고 의사소통”, 김백애라 님의 “성폭력과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으로 성교육 프로그램은 진행되었다.
11월 3일 진행된 성폭력예방교육은 권인숙 님의 “여대생 성폭력 두려움”, 여성주의상담팀 란 활동가의 “성폭력피해생존자의 지원체계와 성폭력 유형 이해”,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의료지원팀 장세연 님의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의료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앞의 두 강의에서 성폭력피해자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대해 인식했다면 마지막 강의는 예비의료인인 참여자가 실제 의료현장에서 성폭력피해생존자를 만났을 때 필요한 의료인의 역할을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교육담당자로서는 매순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수업에서 성과 성폭력에 관한 언어들을 어려워하는 참여자를 보면서 반성폭력운동의 언어가 대중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렵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지 새삼 생각해보기도 했다.
교육이 끝나고 참여자들이 작성한 강의평가서는 ‘여성,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됨’,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조금 사라진 것 같음’, ‘성적인 부당한 요구에 당당히 자기 의사를 표현할 힘이 생긴 것 같음’, ‘개인의 의식의 변화를 통한 사회 인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간호사가 되어서 성폭력피해자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음’, ‘간호사의 역량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알게 되었으며, 우리의 자리가 한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뜻 깊었음’ 등 생각의 변화가 드러나 있었다. 많은 참여자들이 짧은 수업시간이었지만 성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고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깨닫게 되어 유익했다고 평가하였는데
교육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예비의료인의 인식변화를 이끌어낸 것 같아서 매우 흐뭇했다. 자기방어훈련 실습을 해보고 싶다는 의견과 성폭력상담소를 방문해보고 싶다는 의견 등 적극적인 관심과 의지가 담긴 참여자들의 후기를 보며 교육활동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틀에 걸쳐 약 80명의 예비의료인을 만났다.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 한 명 한 명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적었지만, 이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예비의료인들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만나고,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만났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이들이 앞으로 의료인이 되어 성폭력피해생존자에 대한 적절한 지원을 하고,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이 의료현장에서 2차 피해를 겪지 않는 미래를 기대해본다. 성폭력에 맞서고자 하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이어져 서로를 지지해주면서 성폭력 없는 세상으로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언제, 어디에서 참여자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짧은 인연이 참여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고, 반성폭력인식 확산 계기가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정희 / ‘禎禧’ 상서로운 복이라는 뜻입니다. 이름 하나 믿고 겁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