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에 새집이 필요한 몇 가지 이유
백미순 | 본 상담소 소장
합정동, 연남동, 동교동, 서교동, 통이동, 신촌, 그리고 다시 합정동……. 숱하게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2종 주택지, 근린시설, 전셋집, 월세집, 경매물건, 참으로 종류도 다양했다. 상담소에 새집이 필요하다는 결정 이후, 아침, 점심, 저녁, 짬이 날 때마다 부동산의 부름을 받고 달려갔다.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한국성폭력상담소 법인 명의로 계약한다고 하니 전세를 줄 수 없다며 거절당하기도 하고, 우리 형편에 꼭 맞는 집을 만나 계약하자고 하니 정작 주인이 한 달 전에 다른 이와 계약을 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맘에 들어서 서너 차례 둘러보았더니 가격을 올려서 계약하자 하기도 하고, 이사를 위한 길은 참으로 길고 험난했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다. 현재의 장소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상담소 입구가 어디에요?”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들이 자주 볼멘소리로 전화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제 이름이 있어도 이름을 내걸기 어렵다. 내담자나 방문객이 ‘성폭력’이라는 표지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상담소에 들어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상담소 간판을 버젓이 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상담소임을 알아볼 수는 있어야 하기에 상담소는 ‘여성인권과 함께 하는 KSVRC’라는 작은 간판만을 달고 있다. 상담소는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평범한 2층집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담소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운데, 이 작은 간판도 상담소를 찾는 데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게다가 2층 상담소로 들어오는 입구조차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은 발견하기 어려운 작은 쪽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는지라, 상담소에 대한 일정한 기대를 가진 사람들은 쪽문 앞에서 상담소 입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상담소 방문객들은 열려있는 쪽문으로 들어오기보다 간판을 사이에 둔 번듯한 대문의 옆집 벨을 누르고 상담소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간판 좀 옮겨 달”라는 옆집의 빈번한 항의가 당연하다. 옆집으로부터 우리집은 상담소가 아니라는 냉담한 반응을 들은 내담자들은 상담소 바로 앞에서 도대체 상담소가 어디냐는 항의 아닌 항의 전화를 하는 것이다. 이제 상담소는 사람들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들어올 수 있되, 찾아오기에 어려움이 없이 접근 가능한 집이 필요하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내담자들이 편안히 걸어들어 올 보통의 문을 가진 집이.
“이쪽이에요?”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인 내담자들에게는 치유를 위한 편안한 상담공간이 참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상담소의 지하 상담실로 안내할 때마다 내담자에게 죄송한 맘이 컸다. 최선을 다해 정갈하게 상담실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쾌적하기 힘든 지하실로 내려갈 때 내담자가 이 공간에 불편한 맘을 갖게 될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성폭력사건을 심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다루기 위한 전략을 서로 논의할 때,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시작의 시점에서는 내담자에게 공간이 주는 신뢰성도 상당하다. 상담공간에서 울고 웃으며 사건의 지도를 그려나가면서 대부분 상담소에 대한 신뢰는 쌓이지만, 누추하고 옹색한 상담소의 환경은 처음 상담소를 방문하는 내담자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잘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첫 인상을 주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여성주의상담의 전문성을 담아낼 공간을 갖추는 것도 이제 더는 미루기 어려운 과제이다.
“내가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야?”
상담소가 부설로 운영하는 성폭력피해자쉼터인 열림터에 들어오는 생활인들은 가해자로부터의 분리와 치유를 위해 자신이 살아왔던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생활인들은 열림터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며 지지와 공감의 분위기 속에서 치유를 경험한다. 그렇지만 물리적 공간의 차원에서 처음 열림터에 들어온 생활인이 ‘여기서 살고 싶다’는 느낌을 갖기는 어렵다. 노후한 기기며 생활용품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지만 지어진지 30년 넘은 집은 개선의 여지를 제한한다. 심하게 비가 내리면 어딘가의 틈새를 타고 스며드는 빗물로 전기누전이 걱정되기도 하고, 여기저기 막히고 넘치는 배관, 배수문제가 터지기도 한다. 생활인들이 열림터에 있는 기간만큼은 일상의 불편함 없이 쾌적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공간, 학업을 계속하는 생활인들이 조용히 공부할 공간, 모두가 둘러 앉아 쾌적하게 식사를 하거나 공동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 편안하게 앉아 TV나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등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이 바뀌어야 한다.
“오늘 몇 시에 나가세요?”
상담소는 20평 조금 넘는 사무공간에서 매일 스무 명에 가까운 상근 활동가, 자원활동가, 인턴이 복닥거리며 반성폭력운동을 펼쳐왔다. 상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앉을 자리가 충분하지 않아 빈자리가 날 때마다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일하기도 한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서로 묻는다. 오늘 외근이 있는지, 언제 나가는지. 일 년 내내 제습기를 가동해야 하는 지하 모임터 외에는 회의 공간이 없는지라 각 팀마다 모임터 확보 경쟁이 치열했고, 그나마 내담자가 모임터 옆 상담실에서 상담 중일 땐, 조용히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활동가들은 주변의 카페를 돌며 회의를 해야 했다. 그래도 우리는 주인이 ‘나가라, 마라’ 하는 전셋집이 아니라 선배들이 한푼 두푼 알뜰하게 절약한 결과 마련한 우리 집이 있음을 자부하며 새 공간을 마련할 엄두는 내지 않았다.
법과 제도를 넘어서
그런데 법과 제도의 변화로 상담소는 새집 마련 구상을 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까지 공간의 문제는 가난한 여성단체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불편쯤으로 여겨왔지만, 법과 제도가 바뀌면서 상담소나 열림터가 충족해야 할 공간에 관한 법적 요건이 달라져 공간의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작년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예방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쉼터는 생활인 1인당 3.3㎡를 확보해야 하고, 상담소가 성폭력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1인당 1㎡의 면적과 관련 기준을 충족하는 교육장도 필요하게 되었다.
상담소의 새집마련 프로젝트는 법제도 변화에 의해 견인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동적 대응의 결과라고만은 할 수 없다. 활동의 변화는 공간의 변화를 요구한다. 상담소가 반성폭력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담론생산을 위해 야심차게 시작한 연구소 설립 역시 공간변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연구소가 반성폭력운동의 현장에서 현실에 발 딛고 연구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상담소와의 공간적 긴밀성도 매우 필요했기에, 상담소 안에 책상이라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출입문을 찾기도 어려웠던 반성폭력운동에 번듯한 대문달기, 반성폭력운동 과제의 대안을 찾아낼 책상 놓기, 무엇보다 성폭력생존자의 치유적 공간 마련하기, 이 모든 것이 상담소에 새집이 필요한 이유이다. 상담소의 새집 짓기는 반성폭력운동이 현재 놓인 고민과 과제에 도전하기 위한 적극적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