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상담소!
그리고 7월 25일,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소중한 인연을 맺어온 많은 분들을 빈 상담소 공간에 모셨습니다.
전 활동가와 회원님들, 반성폭력운동을 함께 해온 가까운 단체 활동가 분들이 자리해주신 가운데 상담소 신축을 알리는 한편
지난 12년을 함께 한 현재의 주택건물에 얽힌 추억과 아쉬운 작별인사,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와 소망도 나누었습니다. 그날의 소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미경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 본 상담소 前 소장
상담소는 25년 전, 1990년 8월 뜨거운 여름날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한국에 성폭력상담소를 만들 것인가 고심하며 8개월간 준비하다가 91년 문을 열었는데요. 김길자 선생님께서 청운동에 집을 내주셔서 편안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죠. 그리고 58명이 10만원씩 내서 서초동 7.5평 오피스텔의 보증금으로 500만원을 하고 나머지를 월세로 해서 상담소를 시작했고 이후 양재동으로 갔다가 그 다음 합정동에 오게 된 거죠. 12년간 전세 또는 월세살이를 한 뒤, 12년간 자가주택의 삶을 살게 됐어요. 우리 집이라고 기쁘게 살았는데 오늘은 이 공간에서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한참 회의를 하고 있는데 뭐가 날아가는 거예요. 지붕의 한 면이 바람에 떨어져서 날아갔어요. 회의하다가 다 나와서 떨어진 지붕을 부여안고 이를 어떡하나 했지요. 그리고 2006년, 회원들께 보답하자는 뜻에서 당시 활동가 원사의 지도하에 활동가들이 다 같이 댄스 연습을 한 적이 있어요. 여기서 도저히 할 수 없잖아요. 옆에 마침 공터가 있어 연습하면서 이 땅을 사고 마리라, 연결해서 멋진 집을 짓고 말리라 꿈을 꿨는데 금방 건물이 들어와 시야를 가리게 된 아픈 기억도 있네요.
옆집이 바로 붙어있는데 우리가 오죽 사람이 왔다갔다 해요.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 받으셨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에 감이 열리면 담아서 좋은 일 하는 여러분 드시라며 가져오셔서 먹은 고마운 기억이 있어요. 또 한 번은 지하에서 야옹야옹 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가정생활을 꾸리고 있어서 우리 공간에 우리도 모르게 새 생명이 왔구나 생각했죠. 또 한 번은 2층에서 밥을 먹는데 새 한 마리가 날아왔어요. 내보내자고 새잡기를 한 기억도 나네요.
소중한 기억들 뒤로 하고 물리적으로는 허물어지겠지만 기억 속에 그 모습은 영원히 있을 거고 새로 태어날 모습도 기대가 됩니다.
이윤상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본 상담소 前 소장
어느 날 보듬이 선생님이 지하 상담공간에서 2층 사무실로 뛰어 올라오시더니 ‘큰일 났다’ 하시는데, 상담소는 큰일 날 게 많아요. 이게 또 무슨 큰일인가 하고 봤더니 물난리가 났다는 거예요. 뛰어 내려가보니 밑에서 물이 올라온 거예요. 온천도 아니고 냉천이 터진 거지요. 그때가 2009년 11월이었어요. 모든 업무를 멈추고 대야, 쓰레받기로 그 물을 퍼냈는데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암담함이었지요. 하루 종일 30분 단위로 내려가 물을 펐어요. 상하수도 누수탐지 하시는 갖은 분들 다녀가셨지만 이상이 없고 결론은 땅속의 지류가 땅을 타고 흐르다가 약한 곳에서 터져 나온, 명확히 알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죠. 냉천이 터졌는데 퇴근하는 마음을 아시겠어요? 집에는 가야 하는데 다음날 오면 어떨까 암담했죠. 며칠을 궁리하다 방법이 없어 집수정을 설치하고 그때부터는 장판 뜯어낸 자리에 야외돗자리를 깔아서 회의도 하고 상담도 하고 치유도 하면서 1년을 살았습니다. 닥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집수정 단 뒤에도 저는 밤에 혼자 나왔어요. 너무 조마조마한 거예요. 집이 가까워서 망정이지 명절에는 혼자 와서 보고 가고는 했어요.
그해 겨울은 폭설이 내려 2층 올라오는 계단이 꽝꽝 얼어 당시 사무국장 오매가 아침마다 도끼로 얼음을 깼어요. 갑자기 단수도 되었는데 모든 한다 하는 업자가 다 다녀가고 벽을 다 녹이고 했는데도 해결이 안 나고 원인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물이 안 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화장실도 갈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고. 저는 재택근무를 해야 하나 생각까지 하며 3일, 4일씩 버티고 있었는데 귀인을 어렵게 만나 옥상에 있는 물탱크의 관이 얼었다는 진단을 받은 거죠. 관을 끊고 다시 연결을 해서 물이 나온다는 소식을 바깥에서 전화로 듣고는 앞사람에게 ‘물이 나와!’ 말하고 눈물이 터졌던 기억이 나요.
그때 당시 이미 20년이 넘은 집이었고 지금은 더 오래됐죠. 2010년 겨울에 재보수 결정을 하고 애써서 고쳤어요. 부탄가스로 밥 해먹다가 도시가스 연결하고, 또 뒤에 창문이 뚫려있었던 것을 발견해 수리했어요. 겨울이면 활동가들이 장갑 끼고 업무해야 했는데 이제 정상적인 냉난방이 되어 장갑 벗고 일할 수 있다고 기뻐한 그 기억들, 잊을 수 없죠. 갖은 어려운 일 거치며 흐른 12년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일 시작한 것에 기쁘고 활동가들께도 감사합니다. 여러 감정이 겹치네요.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제가 자주 간 곳은 지하 모임터예요. 상담소 계단은 디딜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저는 성폭력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양재동에 있을 때 받았어요. 휠체어 쓰는 언니들과 같이 받았는데 그때 교육생을 위해서 화장실 문을 다 뜯어냈던 기억이 나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합정동으로 이사 온 뒤, 이미경 전 소장님이 반성폭력운동의 제도화 문제에 함께 대응해야 하지 않겠냐고 전화를 줘서 이 장소에 처음 온 것 같아요. 2007년이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집이 있고 또 자가라고 해서 부러웠지요. 모임터는 제가 처음으로 다른 여러 여성단체와 만나서 제도화 대응이라는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곳이라 좋은 기억이고 운동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이에요.
그리고 그때부터 올해까지, 언젠가는 2층에 올라가 사무실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제가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무실이 없어진다고 하니 안타까운데 아마 서류가 쌓여있을 모습이 상상은 가요. 다음에 만들어질 공간은 사무실을 구경할 수 있을 정도의 접근성이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소중한 바람이 있습니다. 건축할 때 많은 걸 고려해야겠지만 누가 오든 부담이 덜 되는 공간, 편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백현 법무법인 드림 변호사, 자문위원
신축하신다 말씀 듣고 꼭 오고 싶었고 오늘 와서 지난 역사 되돌아보니 많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쪼록 멋진 건물이 완성되기를 기원 드리겠습니다.
원민경 법무법인 원 변호사, 자문위원
힘든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활동가 한분 한분이 따뜻한 마음,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새로 지어질 건물이 이런 따뜻함과 순수함이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임순영 남윤인순 의원보좌관, 본 상담소 前 활동가
서초동 7.5평 오피스텔 시절에 총무 일을 같이 했습니다. 그 오피스텔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떠오르는데 제가 처음 갔더니 제 자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했어요. 워낙 좁은 곳이라 눈치를 보고 자리가 있는 것 같으면 앉아서 일했지요. 선배들이 바깥에 회의 나간다 하면 기뻐서 빈자리에 앉아 일을 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초창기 4, 5년간 일을 했었는데 2001년 즈음에 열심히 모은 돈으로 집을 샀다는 이야길 듣고 너무 기뻐서 감격의 눈물 흘렸어요. 12년 만에 치유의 공간, 나눔의 공간을 새로이 만드신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하셨을지를 생각하니 그 의미가 살아있는 집이 지어지기를 고대합니다.
우성희 부설 열림터 자원활동가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부끄럽습니다. 활동하셨던 분도 계시고 자문하는 분도 계시고, 상담전화 받는 일을 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필요할 때 불러주시면 오고 후원회비 종종 내는 것밖에 없어 죄송하고요. 번창하기를 빕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원, 부설 울림 객원연구위원
창문 에피소드를 들으니 상담소에 올 때마다 춥고 더웠던 게 다 그것 때문이었구나 싶습니다. 따뜻하기도 하지만 창문 열면 아주 시원해지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사람들만큼 집도 따뜻하게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