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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피해 이후를 헤엄쳐나가기: <한공주>
  • 현미 | 본 상담소 부설 울림 책임연구원
삶의 돋보기

성폭력 피해 이후를 헤엄쳐나가기: <한공주>

현미 | 본 상담소 부설 울림 책임연구원

‘사건’으로서 성폭력 피해는 더 이상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지 않다. 영화 <한공주>는 이처럼 수면 위로 올라온 성폭력 피해를 어떻게 ‘제대로’ 다룰 것인가 하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여전히 성폭력 피해를 선정적이거나 비윤리적으로 재현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 ‘이후’, 사건의 파장 안팎에서 진동하는 피해자의 일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전의 성폭력 피해를 다룬 영화들과 다르다고 평가받았다.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극단적 상황에 놓여있는 한 소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 소녀를 둘러싸고 있는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공주를 사건 이후 수영을 배우려고 시도하는, 노래를 좋아하고 잘 하는 소녀로 그려내는 것, 공주를 도와주거나 외면하거나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친구들, 선생님, 부모 등의 주변인의 모습은 이를 위한 설정이다. 또한 영화는 남자 청소년의 집단문화/학교폭력에서 연속되는 집단성폭력의 모습, 아들을 지키기 위해 합의와 탄원서 서명을 강요하는 가해자 부모들의 모습, 난감하고 귀찮은 표정으로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는 어른들의 모습 등 성폭력 피해의 다단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눈에 띈 것은 ‘선생님 어머니’였다. 공주의 전 담임인 아들의 부탁으로 공주를 잠시 맡게 된 ‘선생님 어머니’는 선하고 올바르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처음에는 공주를 의심하며 달가워하지 않다가, 공주를 맡으면 가게 일손도 덜고 약간의 생활비도 지원받는다는 것을 경험한 이후에야 함께 살기에 선선해진 사람이다. 또한 불륜의 연애가 들켜 동네 여자들에게 “쥐어터지고도”, “나이 먹고 주책” 같지만 연애와 섹스를 즐기는 사람이다. 자신의 세속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실현시키며 사는 솔직한 사람이기에, 오히려 공주와 점차 가까워진다.

‘선생님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공주가 될 수도 있었지만 되지 못한 미래로 다가왔다. 적당히 세속적으로 욕망에 충실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삶, 욕도 듣고 힘들기도 하지만 견디고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 공주 스스로는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변의 부적절한 대응과 피해의 영향은 이 삶의 가능성을 여러모로 차단한다.

다른 한편 ‘선생님 어머니’는 악한 의도나 행동은 아니었지만 피해자를 고립된 상황으로 몰아간 주변인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선생님 어머니’는 공주의 피해를 알았을 때 “걔들이 잘못했네”라고 바로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집을 떠나는 공주를 붙잡지는 않는다. 공주에게 호의를 보이고 다가왔던 친구도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혼란스러움 때문에 공주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 담임도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공주의 곁에 계속 있어주지는 못한다. 공주의 엄마는 재혼 후 경제적 압박과 새남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공주를 외면한다.

이러한 각자의 사정과 어쩔 수 없음은 관객에게 공주가 곁에 있었다면 너는 얼마나 달랐겠냐고 되물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당사자가 아니라고,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을 때, 그것이 거대한 파도처럼 공주를 덮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파도에 공주가 배우고 있던 수영은 크게 쓸모없어 보인다.

현재로 범람해오는 과거의 트라우마, 미래를 휩쓸어가는 현재의 상황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영화는 공주의 캐릭터를 ‘순수하게’ 구축하고 공주의 상황을 고립무원으로 이끌어간다. 이 영화의 한계와 의아스러움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청소년 집단성폭력에서 피해자는 보통 가해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모텔에 가는 식으로 어울린, 가출, 성매매, 일진문화 속에 있는 ‘일탈’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비난받거나 피해를 의심받기도 한다.

영화 <한공주>에서 기타를 치는 공주

하지만 공주는 그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편의점 알바를 성실히 하고 친구를 살뜰히 챙기고 부모의 부재에도 빗나가지 않은 소녀로 나온다. 이에 비해 공주의 친구 화옥은 조금 놀기도 하고 이미 성경험이 있어 “쟤 소문난 애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하는 존재이다. 화옥을 주인공으로 했다면 이 영화는 동일한 방식의 재현과 반응을 일궈낼 수 있었을까. 이미 죽은 환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화옥은 영화의 윤리적 한계, 재현의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영화는 전 담임선생님 말고는 공주를 지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화의 시점을 고려해 봤을 때 이것은 어색하다. 영화는 모티프가 된 사건의 시점(2004년)보다 이후, 아마 2010년 언저리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시기는 아동청소년 성폭력에 대한 여러 개입이 활발한 때이다. 감독은 성폭력피해를 둘러싼 환경을 섬세하게 다루기 위해 여러 조사와 노력을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성공적이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내가 한공주를 만난 것은 4월 말이었고 세월호 사건 이후였다. 우리가, 이 사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익사하는 자들의 모습으로 두 모습이 겹쳐졌다. 꽤 고통스러운 겹침이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들, 떠올라도 썩어가는 것들의 모습에 어떻게 귀 기울이고 말할지 직면하자는 메시지는 이제 감독이나 영화의 것을 넘어 우리의 것으로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