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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상담소 박부진 신임이사 : 생존자들의 삶의 여정에 함께한다면 그렇게 우리는 행복해지면 됩니다
  • 토리 | 본 상담소 사무국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생존자들의 삶의 여정에 함께한다면
그렇게 우리는 행복해지면 됩니다

본 상담소 신임이사 박부진

정리 _ 토리 | 본 상담소 사무국장

그동안 나눔터에서 자주 소개드리지 않았지만
중차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13명의 이사님들이 항상 상담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4월 이사회를 통해 상담소에서 활동을 시작하신 박부진 신임이사님을 만났습니다.
앞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나갈
박부진 이사님을 지금 만나러 갈까요?

Q 박부진 이사님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수락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회원님들에게 이사님 소개 부탁드릴게요.

A 회원여러분 안녕하세요? 박부진입니다. 저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했고요, 지금 아동학과에서 심리상담 분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Q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시고 모래놀이치료와 같은 가족상담이나 아동청소년 심리상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A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면서 인간이해와 인간사랑을 익혔어요. 학위가 끝난 다음에 학교에 자리 잡으면서 제가 너무나 많은 혜택을 이 세상으로부터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부터 무엇을 해서 이 혜택을 세상에 돌려주고 떠날까 하는 생각을 사십대 정도부터 했어요. 인류학을 공부할 때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듣고 수집하면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아픔을 가진 사람과 나누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가사조정위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이혼가정의 아동들을 만나고 가족문제에 관심이 많아졌죠. 학교에 마침 아동학과가 생겨 아동학과로 소속을 옮기고, 세상에 봉사하자는 마음에서 봉사의 방향을 상담 쪽으로 잡았어요. 그 때부터 체계적으로 상담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Q 교수로서 다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박부진 신임이사 인터뷰 사진

A 정말 바빴어요. 한국에서 모래놀이치료가 매우 초기단계였으니까 다른 나라에서 강의를 듣거나 해외 전문가에게 수퍼비전을 받았어요. 모래놀이치료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걸 알고 그 매력에 완전히 빠졌죠. 그래서 이제는 심리상담이 내가 하는 공식적인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어요. 제 마음이 그 방향으로 그냥 흘러간 거예요. ‘왜 그랬어요?’ 이렇게 물어보면 명확하게 답할 수 없어요. 처음부터 그 목적을 가진 게 아니라 일을 하다 보니까 좋고 스스로 그 매력에 빠져서 공부를 한 거죠.

Q 80년대에 가사조정위원을 하셨던 이야기가 궁금해요. 상담소가 91년에 문을 열고 그 이후에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졌거든요. 성폭력이라는 단어도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잖아요. 또 어려움에 처한 가족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폭력이 일어나는 가족 안에서 상처받은 아동이나 십대를 만나셨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A 아동의 경우, ‘가족은 사랑하고 감싸 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표현해야 될까요? 가족은 아동에게 생존을 위한 일차적 보호공간이기 때문에 가족을 흠집 내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죠. 말하자면 자기 아버지가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하는데 그래도 아버지를 걱정하고 사랑해요. 때로는 피해 받은 아동이 폭력을 저지른 부모를 감싸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족 안의 폭력을 끝까지 감추는 시대를 오랫동안 살았죠. 그 아픔을 속으로만 담고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고요. 가정폭력피해자의 경우에는 피해 당시의 문제가 자기 속에 딱딱한 껍질에 싸인 채, 자기 자신도 건드리기 무서운 상태로 무의식 속에 숨겨진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 딱딱한 껍질을 뱉어내고 자기가 그 경험을 다시 환기시켜서 직면하고 확인해야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어요. 자기 사건을 객관화한다고 할까요? 아닌 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밖으로 그것을 표출할 수 없어서 자기 자신을 공격해요. 자기 자신을 공격하니까 좌절하거나 위축되고, 그것이 다시 외부를 향한 공격성으로 나타나고요. 다시 말해서 자존감을 잃고, 사회성을 상실하는 거죠.

모래놀이치료실에서의 박부진 이사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적응이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경향이 있으니, 이중의 피해를 보는 셈입니다. 감춰왔던 피해를 끌어내서 그 피해가 피해자 자신을 해치기 전에 다루도록 하는 것이 성폭력상담소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Q 스스로를 공격하기 전에 치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예를 들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연애관계를 반복하는 관계 맺기 습관을 갖고 있는 성폭력피해자가 피해에 대한 말하기를 한 이후에도 자신의 삶이 변화되지 않아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실망할 수도 있거든요. 말하기를 통해 지지그룹도 생기지만 한편으론 내면을 더 돌아봐야하는 그런 과제가 남기도 해요. 활동가들이 생존자들과 성폭력 경험을 둘러싸고 중요하게 이야기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시나요.

A 뉴스레터를 통해서 말하기대회나 작은말하기 소식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참여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죠. 피해가 극복되지 않으면 상처를 얘기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말하기대회에 참여하시는 분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상처를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해서 ‘당신 정말 아팠구나’ 하고 안아줄 수 있는 상태는 아직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픔을 받아주는 일 이외에 생존자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일차적 생활적응 문제를 함께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보통 여자의 삶이 아닌 망가진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서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저력을 주는 게 자존감이에요. 내가 소중하다는 존재감을 상실한 경우, 현실적응능력도 떨어지게 되죠. 그래서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사회적 역할을 갖게 한다든지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해주면서 마음의 상처도 같이 해결해주어야 그 여성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혜택을 줄 것인가, 비록 소수에게라도 다양한 지원을 해서 진정한 회복에 이르게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저는 생존자가 적응력을 갖고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계속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그 사람만 도움을 받는가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때 탄탄한 결과가 나올 수 있죠. 그래서 제 활동에서도 양화된 실적과 상관없이 ‘우리가 몇 명을 살려도 좋다. 일 년에 몇 명이라도 사람 살리는 작업을 하자’ 하는 생각을 점점 많이 하게 돼요.

Q 이사님은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지역사회를 비롯해서 사회공헌을 하는 단체도 만들고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요, 이번에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직을 결심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심리상담에 관심을 갖고 그쪽을 보니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을 돕고 예방사업을 하기 위해서 기관을 만들었어요. 진행하다보니까 봉사라는 개념이 한국에서는 아직 일반적으로 수용적되지 못한 것 같았어요. 한국의 봉사는 정말 가슴이 아플 정도로 불쌍한 사람에게 무엇을 조금 주는 정도의 봉사예요. 봉사하면서 이름도 내세울 수 있는 걸 찾는 분위기도 있죠. 힘든 상황에서 저는 꾸준히 제 일만 하자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관계를 맺게 된 건 권인숙 선생님의 활동을 보며 뭔가 도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런 단체가 얼마나 열악한가 하는 건 제가 경험해봐서 아니까 기여할 게 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받을 사람이 많을 테니까 제가 많이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뉴스레터를 보니까 상담은 전체의 일부고 사회활동도 많더라고요.

Q 성폭력에 대한 인식변화를 위한 활동도 상담소의 주요 활동으로 꼽고 있습니다. 사회 인식변화는 성폭력생존자들을 위한 활동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상담소가 끈기를 갖고 주력해야 하는 활동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A 중요한 부분이죠. 성폭력은 가치관에 따라 상처를 인식하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여성의 성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대단한 상처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고, 치명적인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죠. 그리고 상처 받은 경험이 금방 사라질 수도 있지만 평생 내면에서 자신을 괴롭힐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오랫동안 여성의 몸에 대해서 한정된 가치를 부여받았기 때문이죠. 성폭력상담소는 여성이 그 틀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의 전환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테니, 우린 좀 더 끈기를 가져야겠죠?

Q 오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상담소가 어떤 활동을 더 해나가면 좋을지 제안해주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성폭력이라는 것 자체가 문화적인 것, 여성 몸에 대한 가치 등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죠. 그런 문제들을 다양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상담소가 교육프로그램을 상시로 운영하면 어떨까요? 여성의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중요할 것 같아요. 여성의 자존감, 내가 인간으로서 소중하다는 가치를 가지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죠. 그러니까 그런 강좌나 프로그램을 알려서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고, 성폭력을 이슈로 해서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되도록 기획하면 어떨까요?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피해자가 상담 받는 곳이라는 메시지가 너무 많이 느껴져요. 그것보다 성과 관련된 어떤 활동을 하고 그 분야의 하나로 성폭력 피해 여성 관련한 사업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너무 큰 요구인가요? 성폭력상담소라고 하면 여성은 계속 피해자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니까 그런 부분을 전환해서 어떻게 하면 여성이 더 주체가 되게 할까를 고민하는 큰 틀로 앞으로의 활동의 방향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이사님에게 활동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힘들지만 정말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너무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활동하면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주고 그 사람 인생의 과정에 함께하자. 이 순간에 함께 있는 것으로 좋아! 행복해! 이 시간을 잘 보냈다! 이렇게 생각합시다. 최선을 다한 만큼 행복해지자”는 말을 해주셨어요. 앞으로 맞이할 새 공간에서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는 활동가들이 불끈 힘을 낼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랫동안 여성들의 삶과 인권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해온 박부진 이사님과 함께할 앞으로의 활동이 두근두근 기대됩니다. 회원님들도 앞으로 박부진 이사님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