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의 ‘특별한’ 디자인을 만들어 갑니다
디자인이즈 실장 추정희
정리 _ 란 |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Q 추정희 실장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어떻게 소개를 하면 좋을까요? 좀 쑥스럽네요. 책과 홍보물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만나고 싶었습니다’에 소개된 분들을 보면 대부분 상담소와 활발하게 활동도 하시고 지속적으로 반성폭력운동에 기여해 오신 분들이시던데… 저야 상담소 홍보물을 제작해 오던 인연에 ‘촛불리스트’로 힘들어진 상담소의 재정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것인데 인터뷰에 응하려니 좀 거창한 것 같아요
Q 회사 이름이 ‘디자인이즈’인 이유가 궁금했어요, 또 ‘디자인이즈’의 의미가 뭐죠?
A 사람들이 궁금해하길 바라고 지은 이름인데 물어주니 반갑네요. 보통 회사나 단체의 이름을 지을 때는 지향과 정체성을 담으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디자인이 도대체 뭘까? 또 디자인 회사가 지향해야할 것이 무엇일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했지만 이걸로 정하면 다른 게 빠진 것 같고 또 한편으론 너무 규정적인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Design is …’예요. ‘…’ 즉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남겨 둔 것이죠. ‘A는 B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이 A는 C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디자인이즈’는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유연하게 생각하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예요.
Q 상담소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셨나요?
A 상담소가 처음 생겼을 땐 지면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어요. 초창기의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굉장히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거든요. 이후 상담소와 더 친숙하게 된 것은 초창기 상담소 활동가 출신들이 만든 페미니스트카페 <고마>를 통해서 였어요. 운영자 중 한 명이 절친한 친구였거든요. 상담소와 함께 일하게 된 건 2004년 ‘여악여락 콘서트’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시작되었어요. 그때 이후로 상담소 홍보물과 소식지 등을 만들어 왔어요. 그러고 보니 딱 10년이 되었네요.(웃음)
Q 상담소에서 부탁드렸던 작업물 중에 기억이 남는 작업물이 있으신가요?
A 아무래도 처음 작업했던 ‘2004 여악여락 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홍보물의 종류도 많았고, 빡빡한 시간과 콘서트가 갖는 상황적 변수들로 인해 사건사고도 많았어요. 그만큼 힘든 부분도 많았고 함께 나눴던 보람도 있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작업은 20주년 홈커밍데이였어요. 2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상담소도 열정을 많이 쏟았고, 저도 더불어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20주년 홈커밍데이의 이미지 컨셉을 상담소 20년의 역사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분위기로 잡았는데 상담소 20년에는 즐겁게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잖아요. 고통과 아픔, 분노와 투쟁, 위안과 연대의 시간들도 있으니까요.
홈커밍데이의 즐거운 분위기 속에 이런 의미들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그래서 여러가지를 고민하다 일단 사람들이 모이는 모습을 표현하되 개별요소에 힘을 빼고 스토리가 엮이도록 했어요. 그 다음에 뭉쳐지는 모양을 통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밝은 칼라를 통해 홈커밍데이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표현되도록 했어요. 그리고 뜻깊은 행사이니 만큼 행사가 끝나면 버려지는 행사홍보물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팬시적 요소를 가미한 동그라미 모양의 엽서도 만들었어요. 누군가는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상담소에서도 평가가 좋았고, 개인적으로도 애정이 갔던 작업이었어요.
Q 맞아요, 활동가들이 상담소 20주년 디자인을 상담소 홍보물 중에 최고라고 꼽는데요. 저는 10회 말하기대회 디자인이 너무나 좋았어요. 상담소 홍보물을 디자인할 때 참고하는 요소나 고려하는 지점이 있으세요?
A 20주년 디자인을 좋게 봐주니 저도 기뻐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참고하는 것은 그때 그때 케이스별로 다른 것 같아요. 고민하는 과정에서 글을 읽을 때도 있고 이미지를 모을 때도 있어요. ‘지금’ 포스터 경우는 지금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갖는 종적인 시간과 횡적인 시간을 함축한 이미지 요소를 ‘지금’이란 단어의 모음(ㅣ, ㅡ)에서 찾았어요. 10회 말하기대회 ‘지금’이 담고자했던 것 또한 1회~9회까지 내려오는 시간과 9회와 11회 사이를 관통하는 시간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기획의도를 잘 파악한 덕분에 서로 만족스러웠던 것이죠.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소통이 잘 되어야 하는데, 점점 이런 과정들이 생략되어 아쉬울 때가 많아요. 또 상담소 작업을 하다보면 상담소 사진이 너무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쉬워요. 피해 생존자들의 사진은 얼굴이 노출되면 안되니까 사용할 수가 없고 또 기록사진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하고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상담소 활동과 관련한 사진들을 실험적으로 찍어보면 어떨까 싶네요. 상담소 활동에서 의미있는 오브제를 여러 각도로 클로즈업해서 찍는다던지, 인물을 배제하고 면을 쪼개서 찍어본다던지… 이런 작업들을 꾸준히 하다보면 그 안에서 상담소만의 스토리나 이미지가 생성될 것 같아요.
Q 오늘 인터뷰 사진도 유념하여 촬영해보겠습니다(웃음),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상담소 활동이 있으신가요?
A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요. 관심은 많은데 사실 한 번도 가지 못했어요. 처음엔 ‘대회’라는 이름이 상당히 어색했어요. 누가누가 잘하나 같았거든요. 그런데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지켜본 말하기대회는 참여자의 아픔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 위안하고 지지하는 자리이자 다채로운 활동들을 통해 아픔이 승화되는 과정들을 담고 있어 참 좋았어요. 행사 당일만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을 함께하는 과정도 특별하게 보였어요. 10회를 넘게 행사를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서로를 치유하는 힘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회원으로서 상담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활동가들이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활동가들이 자주 바뀌다 보니 이제는 아는 얼굴이 별로 없네요. 또 온라인의 편리함으로 인해 만나지 않고도 처리하는 일이 많다보니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전화를 해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상담소에 대한 애정이 사그라들고 있어요.(웃음) 물론 제가 상담소 활동에 많이 참석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앞으로는 종종 나갈게요 ^^)
사무실에 선뜻 초대해주시고 향기로운 차를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추정희 선생님은 오프라인 소식지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지 질문해주셨는데요, 차분히 정독할 수 있고 주변에 나눠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회원님들 의견은 어떠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