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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원 봄MT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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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보다 재밌는 후일담

상담원 봄MT 스토리

혜나 | 본 상담소 상담자원활동가

올봄은 꽃이 일찍 피고 후에 비가 바로 와서 일찍 져버렸다. 최근 몇 해 동안 제대로 된 꽃구경도 못해서 올해는 기필코 꽃구경을 가려 했던 나로서는 상담원 엠티는 나들이처럼 기대되었다.

많은 인원이 함께 하기 위해 도심 속 자연공간인 북한산자락으로 숙소를 잡았다. 숙소 가기 전 두부요리로 점심을 먹었는데 손수 만든 두부 맛이 벌써부터 자연의 향을 느끼게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프로그램 전에 주변을 산책했다. 초록내음을 맡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뭐가 이리도 할 얘기가 많은지….

‘나와 상담소’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은 시작되었다. 상담소에서 나는 누구인지 한 단어로 지어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 실타래를 던져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상담소에서 일하는 것이 나의 삶 안에서 어떤 의미인지 그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인식하지 않았으면 편했겠지만 상담하면서 인식해야만 했고 인식했기에 삶의 의미로 자리 잡은 것들을 돌아보았고, 상담 활동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은 나태해진 나의 마음가짐을 점검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바로 이어진 프로그램에서는 각자가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세 가지를 적어서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놀이기구를 무서워 한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가지고 싶다’고 썼다. 조금은 추상적인 표현이라 그런지 의외로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내용의 주인공이 나일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 덕에 동료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봄MT 참가자들이 나무 아래 모여 찍은 단체 사진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문학소녀’, ‘수동공격형 성격’이다. 문학소설을 많이 못 읽고 삶을 살아온 내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맘으로 작년부터 문학소설을 읽어보려고 했던 시도가 빛을 내기 시작했나 하는 뿌듯한 생각을 들게 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잘 알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며 오랜 시간을 살았던 나였기에 제시하기 어려운 것들을 표현하고 제안하는 방식이 미숙하게 비춰졌을 수 있었겠구나 하고 되짚어보는 계기도 되었다. 상담소에서 일하면서 하고 싶은 것, 배워야 하는 것, 제안하고 싶은 것, 바꾸고 싶은 것들이 생기는 것이 때론 힘들지만 나의 삶의 에너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리도 자연바람을 쐬면 식욕이 돋는지, 숙소인 수련원에서 나온 저녁도 평소보다 훨씬 맛있게 많이 먹었다. 영화감상을 하면서 먹은 치킨도 너무 맛나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영화 보는 데 여념이 없는데 방해 안 하려고 조심히 많이 먹은 치킨 맛은 최근에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소재가 조금은 파격적이었던 영화 ‘투마더스(Two Mothers)’를 본 후, ‘저런 바닷가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다’ 부터 시작해서 친구 아들과의 사랑, 여성의 우정, 여성 공동체, 밀회(드라마), 20살 연하남과의 연애 가능성 등 다채로운 생각들을 서로 쏟아냈다. 보통의 지인들과는 쉽게 나눌 수 없는 얘기들도 머릿속 ‘필터링’ 없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상담소에서 일하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보물찾기도 이어졌다. 어린 시절 소풍갈 때 했던 보물찾기가 그때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는데 상담소에서 하는 보물찾기는 이상하게 열심히 하게 된다. 큰 방안에 숨겨진 숫자쪽지를 찾겠다고 양말로 방청소를 다 했을 것이다. 보람되게 나는 3개나 찾고 못 찾은 사람에게 2개를 주었다. 선물은 우리가 하나씩 준비해온 것을 나눠 갖는 것이지만 찾을 때만큼은 왜 이리 승부욕이 발동하는지. 이런 작은 기쁨도 삶의 소소한 즐거움일 것이다.

산장과 같은 분위기의 술집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하루의 마무리를 했다. 밤이 되니 조금은 추워서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술에 취하기보다는 대화에 취해갔다. 잠자리에 들면서도 끊임이 없었던 대화와 웃음. 사춘기 소녀처럼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눈물을 흘리며 웃다 잠이 들었다. 그날 대화 도중 머리를 짚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가 본인의 코고는 소리에 놀라 깨는 모습이 귀여웠던 이가 다시금 기억나 웃음 짓게 한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둘레길을 걸었다. 조금은 더운 화창한 날이라 햇살이 따갑기는 했지만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꽃들도 아직 피어있었고 푸르러진 나무들을 보며 자연의 향기를 흠뻑 맡을 수 있었다. 평소에 운동을 안 한 덕에^^;; 오르막길은 나에게 고역이었지만 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몸 안에 산뜻한 공기를 넣는 느낌이 좋았다. 상담원 봄MT는 자연 속 산책으로 마무리되었다.

혜나

인생의 유예기간을 보내고 있는 혜나.
이 시간이 지나면 더 성장하고 단단해질 것을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