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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한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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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운동하는 여성들

우리를 위한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

잇을 |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매뉴얼 '난다 뛴다 다른 몸' 표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다채로운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을 기획하고 실행한 바가 있다.
당시 나는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를 기획하고 매트 위에서 뒹구는 날이 곧 다가올 줄은 미처 몰랐다. 2014년 여름을 훌쩍 가게 한 ‘난다 뛴다 다른 몸’이 그것이다.

난뛴다! 12주

여성들도 격하고 거친 운동에 흥미를 느끼고 도전하고 싶어 하지만 여전히 때때로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이해받지 못해 ‘특이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또한 다른 남성들과 비교되는 가운데 ‘역시 약하다’는 시선을 받으면서 ‘여성에게 어울리는’ 다른 종목을 권유받거나 운동 자체를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난뛴다 훈련장에서는 여성들이 함께 운동을 하면서 다른 곳과 ‘다른’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평소 운동경기와 가깝지 못했던 우리들은 훈련에 앞서 여성야구를 관람했다. 실은 관람했다기보다 공터 귀퉁이에서 지켜본 것에 가깝다. 서울 끝머리에 있는 작은 야구장은 관람석이 따로 없었고 야구감독님의 시원시원한 호의로 선수대기석에 앉지 못했다면 땀으로 샤워를 했을 게 틀림없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에 점차 절도 있는 구호와 손뼉으로 응원에 열을 올려가며 야구규칙도 배웠다. 여성야구인들의 날쌔고 씩씩한 동작, 걸걸한 유머에도 묘하게 빠져들었고 야구복을 입은 그녀들의 몸동작과 매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편으로 여성스포츠의 열악한 환경을 새삼 생각해보는 계기도 된 것도 물론이다.

몸을 이완하고 소리를 내보는 것으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나 역시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크고 우렁찬 고함을 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껴왔다.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고 경직될 때 호흡이 가빠지며, 넓고 멀리 뻗어가는 소리를 내지르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낯설게 소리내기에 집중하고, 훈련해보았다. 작은 목소리만큼이나 감정표현도 작고 소극적이지는 않았는지, 정당한 분노를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도 ‘조용하게’ 넘어가는 것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다.

체력훈련은 신체적 건강은 물론 자신감도 증진시킨다. 몸을 깨우고, 몸 활동에 대한 거부감을 깬다. 신체를 크게 쓸 수 있는 동작이나 운동을 중심으로 체력훈련을 했다. 여성들은 대개 공간을 작게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서 공간을 크게 활용하는 것에는 서툰 경우도 많다. 보폭, 힘 있게 펼쳐지는 몸,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 큰 움직임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했다.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던 운동의 즐거움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운동동작을 하나부터 열까지 정확하게 배우는 첫 시간이 되었기에 체력훈련의 모든 내용이 유용했다.

가장 긴장했던 것은 기술훈련이었다. 대개 ‘자기방어훈련’에서 연상하는 것은 눈알을 찌르거나 고환을 걷어차는 호신술인데 많은 신체단련 없이 할 수 있는 단회의 치명적인 공격방법일 수는 있지만 전혀 연습해보지 않고서 실제 순발력 있게 해내기란 어렵다. ‘각자가 생각하는 위험상황’, ‘내가 대응해내고 싶은 상황’들을 나누고 훈련해보기 전까지는 기술훈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게 할지 궁금함과 함께 초조함도 들었다. 떠올리기만 해도 불안하거나 두려운 상황들을, 몇 주를 부대낀 동료들과 공격자-방어자의 역할을 주고받으며 반복적으로 연습해보았다. 두려움이 상상보다 수십 배는 생생해서 놀랐고, 예상치 못한 짜릿함이 느껴져 더 놀랐다.

달-라-지-다

우리는 빠르고 강해지기 위해 훈련했는가? 그렇지 않다. 늘 내가 데리고 살고 있는 내 몸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우리의 몸은 우리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현명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성이 조심하고 반성할 일’로 강요되던 문제들을 ‘여성에게 부당하게 요구되는 것들’로 바라보고 우리의 욕구와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성이니까’ 이렇게 해야만 하거나 이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온 것에서 조금은 벗어나, ‘나답게’ 살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볼 수 있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것의 상당수는 ‘성폭력’이다. 데이트상대나 배우자 또는 친족으로부터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을 침해당하는 경우, 일과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의 성희롱 등 모든 폭력적 상황을 몇 주의 훈련으로 모두 피하고 가해자를 제압할 수 있게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에게 실제 공격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어떤 싸움으로 끝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려움만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든 우리가 대응할 방법은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그 ‘가능한 것을 배우는 일’은 새로웠으며, 일상에 힘을 불어넣었다. 전 같으면 몸을 얼어붙게 했을 긴장감이 이제는 달리기 직전 준비자세처럼 온몸의 에너지를 단단히 모은 긴장감으로 변화했다.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난뛴다에 도움을 주시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욕심이 생겨 가까운 도장에 케틀벨 3개월을 덜컥 등록했다가 지금은 또 책상 앞에서만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나의 가장 특별했던 12주를 생각하면 늘 흥분된다. 후기발표회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 난뛴다 자료집을 받아보시며 많은 분들이 남겨주신 이야기를 통해 상담소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이후에도 또 다른 활동을 계획하고 계속 해나가는 것은 각자의 결심이지만, 그 결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것을 지지해주는 동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좋은 변화는, 다른 여성들에게도 자신이 느낀 것을 전하고 함께 하는 동료가 되어주는 것이다.

※ 잇을_슬플 때면 혼자 막춤을 춰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