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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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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돋보기

모과나무의 전설

홍순기 | 본 상담소 이사

상담소 옛집 전경
상담소 옛집 전경
모과나무와 인사를 나누는 활동가
지난 연말 모과나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활동가 유영
의사동인 박달회에서 활동하시는 홍순기 이사님께서
박달회 수필집 41권에 수록한 수필 한편을 소개합니다.

내가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인연을 맺은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처음부터 상담소에 마음을 열은 것은 아니다. 15년도 넘게 더 전의 일이다. 모 호텔에서 자선모금행사를 갖는 자리에 초대받아 처음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접하게 되었는데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꽤 유명했던 여자연극배우가 성폭력에 관한 모노드라마를 하는 순서가 있었다. 내용이 목사인 친부로부터 오랫동안 성폭력에 시달려온 여성의 독백이었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내내 절규에 가까운 독백이 이어진데다가 내용 자체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너무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의붓아버지도 아닌 친아버지가 어떻게 자기 혈육인 딸을, 그 어린 나이부터 성적 노리개로 오랜 기간 학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사회적으로 목사직을 수행하면서…. 너무 억지로 극적 요소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호텔에서 하는 자선모금파티라는 점이 부정적 느낌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이후 초대하신 선배선생님의 권유도 있고 하여 2000년도부터 상담소 이사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관점은 점차 바뀌어 갔다.

아아, 세상에는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들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다. 극적 요소를 억지로 극대화한 내용일거라고 거부감을 가졌던 모노드라마의 내용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인성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수직관계에서 힘없이 지배받을 수밖에 없는 인권유린의 사각지대가 여기저기 묻혀있었다. 세상에 끌어내오지 않으면, 공권의 힘으로 구조하지 못하면, 너무나 처참하게 짓밟혀지는 여성들이 있었다.

성폭력이라는 단어조차 귀에 낯선 시절,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열정을 불태우는 활동가들을 보면서 나는 감동을 받고 감화되어 갔다. 활동가들은 그들의 고학력과 다양한 재능이 보장받을 수 있는 대우를 반납하고, 아니 반항이라도 하듯이 외면하고, 교통비 밖에 되지 않는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퇴근시간도 무시하고 일하고 있었다.

작은 힘들이 합쳐지니 세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였다. 성폭력방지특별법도 제정되고 사회도 성폭력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더 가져주기 시작했다.

상담소는 점점 활동의 영역을 늘여가고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나날이 오르는 사무실 임대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서울에서도 땅값이 아주 싼 지역에 어렵사리 낡은 주택을 구입하여 상담소와 피해자 격리생활 공간인 쉼터를 마련하게 되었다.

정겨운 그 집 담장 안에는 오래된 모과나무가 있었다. 가을만 되면 이놈의 가지가지에 어찌나 실하고 풍성하게 열매가 달리는지 상담소에서 가을 이사회를 하고 나오는 길이면 상담소 식구들의 정과 함께 의례히 향이 아주 묵직한 모과 두세 개가 내 손에 들려 있곤 했다. 모과 하나가 꽤 큼직하여 모과차를 담그면 양이 제법 되었다. 겨울이 오면 따끈한 모과차를 담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무슨 커피 선전에나 나오는 배우 흉내를 내며 깊은 향과 달콤함을 즐기곤 했다.

상담소는 오랜 셋방살이에서 헤어나 내 집을 마련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워낙 오래된 집을 개조한 것이라 해가 가면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녹는 대로 집의 수명이 다해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담장도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허름한 곳을 내담자들이 찾았을 때, 치유가 시작되기도 전 그들의 어두운 마음에 참담함을 보태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실무자들의 마음에 늘 짐이 되었던 터였다.

돈 걱정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어찌어찌 또 예산을 꾸려, 올해에는 재건축을 착수하게 되었다.

소장님 이하 활동가들은 설계도면을 보며 돈 걱정이 반, 새집에서 활동하게 되는 설레는 마음이 반.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사들이나 후원자들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작은 터에 여러 기능을 욕심내어 넣다보니 마당의 모과나무와 수국 등의 식물들이 함께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수령이 꽤 오래됨직하여 이 집의 역사와 함께 숨 쉬었을, 그리고 상담소의 일상을 함께하며 해마다 풍성한 열매로 우리에게 위안과 따뜻한 행복을 주었던 그 모과나무가 가슴에 아렸다.

상담소와 함께한 10여년의 세월동안 그 집을 드나들었던 성폭력피해자들의 사연들과 활동가들의 애환이 바람결에 실려 그 나무에 고스란히 품어져 있을 것인데….

그런 놈을 어떻게 좀 살려볼 수 있을까 하여 우리 병원의 화단으로 이주시킬 생각을 하고 이것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성폭력상담소의 아이콘 같던 모과나무를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깊은 모과 향을 가까이에서 계속 즐길 수 있다는 욕심에 마음이 들뜨기까지 하였다.

알고 지내던 플로리스트에게 담 안쪽과 담 밖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현 상황을 문의해 보았다. 성격이 꼼꼼한 이 분은 병원을 방문하여 화단의 어울리는 위치와 토심을 확인하고 세 분의 나무전문가에게 가능성을 타진하고 이주비용까지 확인한 후 다음과 같은 답과 조언을 주었다.

“아마도 이 나무는 묘목 때부터 이 집의 마당에 심겨져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나무를 옮기려면 뿌리를 최대한 살려서 분을 뜬 후에 이동시켜야 하는데 이 나무는 뿌리가 자라면서 필시 곁에 있는 담을 파고들었을 것이므로 그 부분은 끊어내고 분을 떠야 할 것이다. 옮겨올 곳의 토심도 충분하지 않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이주 후에 이 나무가 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이주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 비용을 들고도 살 수 없을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나무를 폐기하는 게 낫겠다.”

결론적으로 모과나무는 그가 어릴 때부터 뿌리내렸던 그 집과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것이었다.

더 좋은 곳이 생기면 서슴없이 그 곳으로 옮겨가고 자신의 이익에 연연해하는 우리네 사람보다, 그늘과 위안과 열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고 한번 뿌리내리면 그 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나무의 속성이 자못 숭고하게 느껴진다.

꼭 요란한 사건들만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게 하는 것은 아니다. 조용하고 아주 작은 일상의 일들이 오래 마음에 머물면서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가 더 많다.

늘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 아낌없이 남에게 베푼다는 것, 그리고 때가 오면 운명에 거스르지 않는 것…. 모두 깊이 새겨야 할 삶의 교훈이 되는 항목들이 아닌가.

자신이 뿌리내린 터에서 집과 담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모과나무의 전설이 꽤 오래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