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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또 쉬다보면 우리 마음에도 꽃이 필까요?
  • 정유석 | 본 상담소 前 활동가
삶의 돋보기

쉬고 또 쉬다보면 우리 마음에도 꽃이 필까요?

정유석 | 본 상담소 前 활동가

어떤 이는 정선을 ‘헤매임을 멈추고 쉬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두어해 전, 저 그리고 상담소 활동을 통해 만난 친구 덕화,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 몇몇은 귀촌지를 찾던 여장을 강원도 정선에 풀어놓았습니다.

해발 500미터가 훌쩍 넘는 스무골 골짜기에는 약초 공부를 하고 서울서 내려오신 분들, 건축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일 년간 직접 집을 지어 이사 온 부부, 여름 별장으로 집을 둔 분들 그리고 300년이 가까워오는 느릅나무와 비탈 밭에 철마다 꽃피우는 더덕과 도라지, 엉겅퀴, 또 온 산을 제집 삼아 다니는 산고양이들, 가끔 성질 나쁜 사람처럼 울어대는 고라니들, 무슨 질문에든 해답을 알려줄 것 같은 눈빛을 한 부엉이, 우체통에 집 틀기를 좋아하는 박새 가족 그리고 엉덩이만 빼꼼 보여준 멧돼지에 도저히 이름을 알 길 없는 새와 곤충들까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다양한 개체군?^^ 들이 누가 주인이고 객인지도 모르게 모여 삽니다.

아래는 이 골짜기에 이사와 겪은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좋은 일도, 괴로운 일도 많았고 또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서울에서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요…. 며칠 만에 기온이 오르고 볕이 좋더니 종일 투둑 투둑 똘똘똘 사방에서 눈 녹는 소리 들립니다.

# 아궁이에 불을 땔 때는

아궁이에 불이 타고 있는 모습

늦봄에 이사와 처음 맞은 장마철. 방의 눅눅함이 가실 수 있도록 불을 때려 아궁이 앞에 앉았다. 손에는 신문지와 라이터뿐이었지만 구들방이 익숙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야!’

두 시간여가 지났을까. 아궁이 옆에는 종이박스, 플라스틱 부채, 나무 부지깽이, 쇠로 된 집게 등 다양한 도구들이 등장했고, 얼굴엔 검댕이 자국에 팔뚝은 부채질로 뻐근해졌다. 집주변에는 두 시간째 연기가 가득하고, 신문에서 옮겨 붙은 불로 장작개비들이 조금 붉어지는가 싶더니 매캐한 기운만 뿜어댄다. 털~썩 아궁이 앞에 주저앉으니 낙엽송 나무들이 연기 때문인지 안개 때문인지 모르게 흐릿하다.

몇몇 분들이 자기만의 노하우들을 알려주었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는 성냥이나 라이터말고 성능 좋은 토치가 필수품이다, 토치를 쓸 때 화력을 높이려면 거꾸로 잡아라, 아니다 바로 잡아야 한다, 환기팬을 돌려 강제송풍 방식으로 바람이 불도록 해야 한다, 나무를 우물정(井)자로 놓는 것이 좋다, 나무 아래 돌이나 벽돌을 괴어 공기구멍을 내놓으면 아무렇게나 쌓아올려도 괜찮다, 불쏘시개를 제일 밑에 놓아야 한다, 아니 우리 아궁이에는 그것보다는 장작, 불쏘시개, 장작 순으로 놓는 것이 적합하다 등등. 모두들 각자의 방법으로 정말이지 1분 만에 훌륭히 불을 지펴 보이셨다.

한 달 가량이 지나는 동안 의견을 주신 분들의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았고, 드디어 우리 아궁이도 5분도 안되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일 년이 지나 우리 아궁이에는 공기구멍과 잠금장치가 있는 튼튼한 쇠문이 달리고, 연기에 강한 스테인리스 환기팬 그리고 다이얼을 돌려두면 자동으로 팬이 꺼지는 타이머를 겸비하게 되었다. 그 사이 우리는 토치와 환기팬은 어느 브랜드가 좋은지, 불쏘시개로 좋은 재료들이 어디에 주로 있는지, 금방 타는 나무와 오래 타는 나무 등을 익히게 되었다.

가끔 손님들이 찾아와 아궁이 앞에 앉을 때는 이제는 우리가 “있잖아요. 불쏘시개를 이렇게 두시면 좋구요. 토치는 이렇게 쓰시면 돼요. 일단 불이 붙으면 조금 젖은 나무도 괜찮은데요. 나중에 아궁이 안쪽으로 장작을 이렇게 밀어두면 방이 더 따뜻해져요….”

나무 연료를 쓰는 것이 자연에 좋은 선택인가, 전체 난방에 편리한 보일러를 깔아야 하나. 아직도 이런저런 고민이 되지만 ‘탁. 딱. 활활. 쉭쉭쉭.’ 열심히 타고 있는 아궁이 앞에 앉아있으면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가도 고요히 따뜻하게 가라앉는다.

# 별(辰)을 노래(曲)하는 농부農夫친구들

산골 밭길을 걸어가는 농부의 뒷모습

정해진 농법보다는 땅과의 소통, 자연에 대한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연농을 택한 친구들. 아랫마을 친구들은 사람과 자연이 동등하다고 믿으며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퇴비도 최소화하며 느려도 땅의 힘을 되살릴 수 있는 자연농을 시작했다. 이 친구들의 밭에는 풀과 곡식이 함께 자라고, 수확을 하고 난 자리도 여전히 생명들로 가득해 얼핏 보기엔 묵밭이나 게으른 농부들이 신경을 덜 쓴 땅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사정을 몰라주는 동네 어르신이 정말이지 선의로 밭에 무성한 풀(이 친구들한테는 곡식이나 다름없는)을 예초기로 베어주셨고, 덕분에 속상해진 마음에 읍내에 가서 술을 마셨지만 그 마음이 풀리지 않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연농을 실천하는 것이 살면서 해 온 수많은 선택 중 가장 잘 한 일인 것 같다고도 했다.

얼마 전에는 이 친구들과 그간 벼르던 짧은 여행길을 나섰다. 일 년 전에 문을 연 인근 도시의 유기농 가게를 찾아가 그간의 운영 경험도 듣고, 결혼이주민 여성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그곳 오일장 풍경도 구경할 요량이었다. “아. 삼십분 후 출근하는데요. 물건이 많이 없어서….” 찾아간다고 미리 건 전화에서 주인이 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일 년 만에 다시 찾아간 가게에는 과자와 건제품 몇 종류만 있을 뿐 지역 유기농 농산물과 유제품 등으로 가득했던 냉장고는 장난감이 달린 유아용 쥬스류만 남고 휑하니 비어 있었다. 가게 주인은 유기농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고, 유기농이라는 이름을 단 브랜드 매장이 몇 군데 들어섰으며, 유기농 회사의 제품이라고 해도 일정 금액 이상의 매입을 하지 않으면 거래를 유지하기 어려운 점 등, 소규모 유기농 가게 운영의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다시 심기일전해야 할지 다른 품목으로 바꾸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땅의 힘을 살리는 자연농을 시작한 친구들은 재배한 농산물을 어떻게 사람들과 나눌지 고민이 깊어진다. 돌아오는 차 안에 얘기가 가득하다.

정유석_‘쉬고 또 쉬면 쇠로된 나무에 꽃이 핀다.’ - 벽암록에서 본 글귀입니다. 쉬고 또 쉬다보면 우리들 마음에도 꽃이 필까요? 바쁜 일상이지만 가끔은 몸과 마음 쉬고 또 쉬어 상담소 식구들, 우리들 마음에도 꽃. 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