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과 만난 나의 삶
-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드는 시민강좌 인권, 평등, 함께 살기’
라라 | 본 상담소 회원
인권과 평등에 대한 나름의 치열한 고민을 가지고 발을 디딘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드는 시민강좌 인권, 평등, 함께 살기’의 마지막 시간은 김현미 님의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 이주자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한국사회’로 진행됐다. 이주여성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웠던 주제를 재미있게 생생하게 잘 풀어내 강의 내내,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닌 드라마를 한 편 보는 기분이었다. 이주문제를 젠더 관점으로 접근해, 신자유주의시대 여성들이 왜 이주하는지, 여성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강의를 통해 현재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참으로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와 중개업의 공모로 결혼중개업이라는 초국적 산업 시장이 창출되고 23만 명 이상의 여성이 한국으로 이주해왔다. 그에 따른 정책지원의 필요성은 계속해서 증대되고 있지만, 다문화적 공존보다는 성과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는 등 이주여성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삭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니 답답할 따름이다.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베트남사람이지만 김치가 없으면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김치를 좋아하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세종대왕, 독도는 우리 땅….’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공유되기보다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거기에 맞추라’는 식이다.
왜 젠더 관점으로 이주문제를 봐야 할까. ‘이주자’라고 하면 까만 피부의 남성 노동자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곤 했었다. 하지만 강의에 의하면 현실은 여성의 단독 이주가 급증하고 있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집안이 남성을 지원하지만, 여성에게는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원이 빈약한 여성들이 거래비용을 내지 않고 이주할 수 있는 방법은 섹스워커, 또는 결혼 등 사적인 방식의 거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얘기를 듣고 남동생에게는 빚을 내어 학업을 지원해줬으면서 나에게는 내가 번 돈을 달라고 하시던, 없으면 학자금이라도 빌려서 달라고 학자금은 이자가 싸니까 괜찮다고 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집을 나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상처를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갖게 됐긴 하지만, 나 역시 남동생과 다른 대우에 아파하곤 했었다.
왜 여성들은 이주하려고 하는 걸까. 어떻게 선이 이루어지는지 설명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남성이 오면 대기하고 있던 여성들이 비슷한 옷차림에 번호표를 달고 쫙 서있다고 한다. 긴 머리에 흰 티, 청바지를 입은 비슷비슷한 모습의 몇 십 명의 여성이 쭉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선하다. 그리고 굉장히 괴로운 이미지로 다가왔다. 병원에서 처녀막검사를 할 때 그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깜깜하고 조용하던 시골에 벽돌집이 들어오는 것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을까. 비록 지금 당장은 모욕적일지 몰라도 이 결혼이 성사되면 집이 바뀌고 오토바이가 생길 거라는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그리고 그렇게 남성들에게 선택되어 한국에 오는 이주여성 대부분이 내 또래 20대 초반이라는 것…. 단순히 제3자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거리두지 못하고 아파하며 들었던 이유는 그 생존이 전부가 된 불안한 시기 안에 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집을 떠난 적이 있다. 특별히 기술도 없는 10대 여성이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었다. 기술 없이 할 수 있다는 막노동조차도 여자, 그것도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할 수 없었다. 결국 돌봄노동, 감정노동이 요구되는 직무를 해야만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제의들을 받은 것과, 거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등 여성성을 이용해야만 했던 아이러니함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권력이나 자원이 되었다가 억압의 기제가 되었다가 하며, 원하지 않을 때조차 시도 때도 없이 따라붙던 여성 정체성의 경험에서 ‘젠더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말을 무겁게 실감하게 됐다.
나는 많은 여성주의 의제 중 특히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여성폭력에 가장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국제결혼중개업법이 소비자보호법에 기초했다는 설명을 듣고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포르노가 돌봄산업으로 정식화되는 마당에 여성을 물품대상의 위치로 놓는 것 정도에 이렇게나 아픈 건 내가 너무 순진해서 그런 건지. ‘암내난다’ 느니 ‘피부가 생각했던 것보다 거칠다’는 이런 이유로 6개월 이내 ‘여자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을 느끼기도 했다.
김현미 님은 강의를 마치며 ‘선주민과 이주여성이 어떻게 만나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주셨다. 마치 성폭력생존자를 어떻게 대할까 하는 질문과 비슷한 것 같다. 어떤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마주하기란 참 쉽지 않다. 잘 어울리며 지내다가도 상대방이 고통을 드러내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안절부절 못하곤 했었다. 그저 마냥 잘될 거라고 위로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았고 섣불리 이해한다고 말거는 것은 내가 과연 그 사람의 고통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어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태도는 교수님의 얘기를 듣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 김현미 님은 인터뷰 중에 베트남 여성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물었는데 그 대답이 와인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은 와인산업이 발달해서 오히려 와인을 즐겨먹는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력한 피해자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을 가진, 멋지고 유쾌한 사람들인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을 낙인찍고 어줍잖은 충고를 하는 시혜가 아니라 ‘가만히 듣기’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견고한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 평가나 전제를 하지 않고 타자의 삶의 조건과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는, 관습적인 방식으로 쉽게 듣지 않고 복잡하게 사유하는 청취능력을 기르고 싶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소통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력이 필요하다.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내어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문자라도 한 번 보내볼까 싶다. 듣고 싶다.
※ 라라_어린왕자에 여우과
인턴활동이 끝난 뒤에도 상담소의 공개강좌를 비롯한 많은 자리에 함께해주고 있는,
반가운 얼굴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