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판례를 뒤집다!
나눔터편집팀
본 상담소는 그간 <성폭력을 조장하는 대법원 판례 바꾸기>(2006~2007),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와 함께하는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2004~) 활동 등을 통해, 성폭력피해생존자의 입장에서 성폭력을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법조인들에게 촉구해온 바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 특히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판결의 준거가 되고 이후 발생한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2차례의 좌담회와 대토론회로 진행된 <2015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 뒤집기>는 앞서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면서 최근의 성폭력 판례를 여성주의로 다시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실제 힘과 지위가 있거나, 있을 것으로 오인하게 하여 쉽게 거절하거나 반항을 하기 어렵도록 하면서 자신의 성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청소녀를 유인했고 실제로 간음행위에 이르렀다면, 이는 아청법상 위력에 의한 강간 기수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 사건)은 대법원 판결에 의해 마치 ‘순수한’ 성인 남성이 ‘순진하지 않은’ 십대 청소녀와 ‘사랑’을 했을 뿐으로 규정되었다. 피해자는 십대 청소녀였고,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27살이 많은 성인이었다. 무죄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뒤, 이렇게 심각한 나이 차이는 ‘사랑’이라 인정하기에는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대법원의 “합의”인정을 거부하는 입장부터, 청소녀와 성인과의 성관계는 일방적인 성적 학대 또는 착취로서, 무조건적으로 청소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근거로 공분을 자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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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서의 쟁점은 ‘나이차’나 ‘미성년 대 성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쟁점은 법률상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 성립여부의 판단근거로서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이 누구의 관점에서 고려되었는가에 있다. 결국 이 글에서 제안하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다시보기”란 사건의 중심에 있는 피해자의 관점과 진술에 따라 얼마만큼 가해자의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 행위가 정확하게 판단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즉, 위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입법의 부재’로 인한 결과물도 아니며, ‘형사상 강력한 처벌’이 없어서 생겨난 문제도 아니다. ‘폭행·협박’을 ‘폭행·협박’으로, ‘위계·위력’을 ‘위계·위력’으로 판단하지 않거나, 정확하게 누구를 기준으로, 또는 무엇을 기준으로 ‘폭행·협박’, ‘위계·위력’을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같은 사건임에도, 각 재판부에 따라 상반된 판결의 결과가 나온 핵심적인 이유는 ‘피해자의 말에 재판부가 얼마만큼 귀를 기울였는가’에 있다. 피해자가 지속적인 성폭력으로 인하여 임신하고, 가해자의 유인에 의한 가출 이후에 가해자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동안 주고받은 문자, 접견 시 대화 내용, 서신 등은 1,2심과 대법원 모두 판결을 위해 함께 고려했던 증거자료이다.
결국 피해자중심주의를 ‘피해자 관점’에서 다시 본다는 의미는 재판부가 각자의 가치관, 통념, 관점에 따라 같은 사실을 다르게 볼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진정한 사건의 객관적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경청하라는 것이다.“
조소연 (본 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 대토론회 발제문에서
청소년성폭력의 바른 판결은 이미 마련된 법 조항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전문가들은 입법의 부재와 추상적인 법률 해석의 어려움으로 인해 가해자가 처벌을 피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동청소년성폭력의 형량을 높이거나, 의제강간으로 보호되는 연령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한데요. 그러나 성폭력피해에 대한 무지나 왜곡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재판부가 성폭력피해자를 의심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은, 결국 법률에 명시되어 있는 ‘위계 또는 위력’과 같은 성폭력 성립여부 판단근거를 피해자의 관점에서 검토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직장내성희롱과 관련해서도 현재 법률상의 보완점을 짚어보았습니다. 르노삼성자동차 직장내성희롱 공대위의 ‘불분노(직장내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조치에 분노하는 사람들)’ 캠페인을 통해 제기되었듯이, 직장내성희롱은 사측의 불이익조치(보복행위)로 인해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되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직장내성희롱을 문제제기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낙인찍고 퇴출하는 현실은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보복행위일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이 법적으로 보호되는 행위를 하였음에도, 오히려 그러한 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그 행위자의 사용자 또는 소속된 조직의 장 등이 행위자에 대해 불이익한 처분을 하는 것”으로 일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조리에 대해 신고와 공론화를 막는 일이지요. 현재 법적으로 제한되는 불이익조치(보복행위) 판단기준이 모호하고 제한적인 점을 보완하고 “만약 이들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불이익처분은 가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면 사측의 징계, 해고 등을 불이익조치로 적극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본 상담소는 내년에도 젠더편향적인 성폭력 판결을 바꾸어나갈 다양한 실천을 이어나가겠습니다. 관련 자료집은 관련기관, 일선 판검사와 경찰, 전국 각 대학 법학대학 등에 배포되었고, 본 상담소 홈페이지 발간자료 게시판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