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가 말하는 작은말하기
성폭력과사람들 ①
생존자가 말하는 작은말하기
은석
7월 말하기가 끝나던 날 밤, 어느 지하철역 앞. 작은말하기가 끝나면, 집이 먼 저는 차를 가지고 다니는 남편과 함께 집에 갑니다. 제가 오기를 기다렸다 퇴근한 남편이 이날은 갑자기 생전 묻지도 않던 작은말하기에 대해 물어보네요.
남편 : 왜 이렇게 늦었어. 좀 빨리 오지.
나 : 아직 끝나지도 않았어. 나는 먼저 나온 거야. 뒤풀이도 하는데.
남편 : 몇 시부터 시작했는데?
나 : 7시. 7시부터해서 9신데 두시간 밖에 안 되잖아. 사람도 많고 항상 시간이 모자라.
남편 : 무슨 두 시간씩이나 얘기를 해. 무슨 얘기하는데?
나 : 자기 경험 같은 거 돌아가며 얘기하기도 하고 그 날 주제가 있어서 수다도 떨고 그래.
남편 : 무슨 경험. 뭐 피해사실 같은 거?
나 : 어.
남편 : (정말 궁금한 말투로) 그거. …얘기하면 좀 나아져?
나 : …응? 뭐 그렇지… 나아지려고 가는 거니까.
남편 : 뭐가 나아지는데?
나 : 남들한테 말 못하는 거 하기도 하고 도움도 받고 그러지……. (이 사람이 뭘 알고 있는지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지 파악이 안 됩니다.)
남편 :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야?
나 : 아니. 자주 오는 사람도 있고 처음 오는 사람도 있고 다 섞여 있어. 매번 달라.
남편 : 그럼 다 피해자들만 있는 거야?
나 : 아니. 주최하는 상담소가 있어서 거기 분들이 한두 분씩 오기도 해.
남편 : 어쨌든 주로 피해자들끼리 얘기하는 거네. 근데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게 얘기한다고 나아지나…? 얘기하면 더 생각나는 거 아냐?
나 : …….
남편 : 그게 도움이 되는 건가……. 잊어버리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말할 때 마다 생각이 더 나는 거 아냐? 신고를 하거나 가해자 하고 얘기해야지. 정신적으로 힘든 거면 치료받거나…. 피해자들끼리 얘기하면 해결이 되나….
나 : 아이구 그게 말이 쉽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잖아. 신고가 쉽냐. 치료가 뭐 감기약 받아먹듯 하는 줄 알어? 그리고 그게 뭐 사건 해결하자고 하는 게 아니잖아.
(어디서부터 알려줘야 할지 난감합니다. 같이 살아도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얘기해 본 적이 없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씩 농담이라도 ‘남자들만의 세계’가 어쩌구 저쩌구, ‘남녀평등할 거면 여자도 군대 가라’ 소리하는 이 남성을 친절하게 이해시킬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나 자신도 작은말하기라는 모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깊지 못합니다.)
(고로 괜히 벌컥하며…) 어휴… 됐어!!! 당신이 뭘 알어.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봐. 평소에 좀 관심이나 가졌어야 말이 통하지. 운전이나 해!!!
작은말하기와 함께 하면서
배우고 알아가는 만큼 혼란도 생깁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게 왜 하필 나였는지
꼭 알아내야만 내가 살 것 같아서
관련 직업도 가져보고 관련 책들도 찾아보고 여성학 문턱에서도 서성거려 봤습니다.
작년에 작은말하기를 시작하고부터는
뭔가 초심을 되찾은 기분으로 더 열심히 배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즘 제가 느끼는 감정은
암수술하려고 환자 배를 열었다가
암이 너무 퍼져있어 얼른 도로 닫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내가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을 뿐더러
이 어려운 것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저와 제일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를 저렇게 끝내고 나니
어쩌면 남편의 반응이 경험이 없고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평균적 반응인데
저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미숙함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 같아서
생각할수록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누가 네 경험을 해석해내라 숙제내준 적도 없는데
그냥 나만 손 털고 빠져나와 아무 일도 없는 듯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절대 잊혀질 리 없는 기억과
예고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감정들을 처리하지 못한 채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엉거주춤 서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작은말하기를 통해 배워가는
혹은 치유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말하기 안에서조차도 제 경험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고
분명 의견은 있는데 조리 있게 전달하지 못해 횡설수설하기도 했고
아동성폭력 경험을 가진 입장에서 말하다보니 성인이 되어 겪으신 분들께 오해가 생기도록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작은말하기 밖으로 넘어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고민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사실 그 다음이 또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는 혼자 꺼내보고 혼자 고민하고 다시 혼자 묻어버리는 악순환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작은말하기에 왔던 1년여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듯이 언젠가는 사회에서도 제가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순간에 피하지 않고 맞서는 힘도 생기겠지요. 혼자 힘들어하던 시간들이 너무 지긋지긋해서라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배우고 알아가는 만큼 혼란도 생깁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게 왜 하필 나였는지
꼭 알아내야만 내가 살 것 같아서
관련 직업도 가져보고 관련 책들도 찾아보고 여성학 문턱에서도 서성거려 봤습니다.
작년에 작은말하기를 시작하고부터는
뭔가 초심을 되찾은 기분으로 더 열심히 배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요즘 제가 느끼는 감정은
암수술하려고 환자 배를 열었다가
암이 너무 퍼져있어 얼른 도로 닫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내가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을 뿐더러
이 어려운 것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저와 제일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를 저렇게 끝내고 나니
어쩌면 남편의 반응이 경험이 없고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평균적 반응인데
저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미숙함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 같아서
생각할수록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누가 네 경험을 해석해내라 숙제내준 적도 없는데
그냥 나만 손 털고 빠져나와 아무 일도 없는 듯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절대 잊혀질 리 없는 기억과
예고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감정들을 처리하지 못한 채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엉거주춤 서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작은말하기를 통해 배워가는
혹은 치유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말하기 안에서조차도 제 경험을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고
분명 의견은 있는데 조리 있게 전달하지 못해 횡설수설하기도 했고
아동성폭력 경험을 가진 입장에서 말하다보니 성인이 되어 겪으신 분들께 오해가 생기도록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작은말하기 밖으로 넘어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고민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사실 그 다음이 또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는 혼자 꺼내보고 혼자 고민하고 다시 혼자 묻어버리는 악순환을 끊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작은말하기에 왔던 1년여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듯이 언젠가는 사회에서도 제가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순간에 피하지 않고 맞서는 힘도 생기겠지요. 혼자 힘들어하던 시간들이 너무 지긋지긋해서라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7월의 말하기에는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오셨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충분히 이야기를 풀어낼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웠지만 한편 그래서 항상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이 따뜻한 자리가 더 발전하며 잘 이어져 나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늦은 후기를 마무리 할까합니다.
눈 내리는 계절에 다시 뵐게요. 모두 안녕히 계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