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
  •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이 감동을 ‘운동’으로 펼쳐가겠습니다!
  • 이미경 (본 상담소 소장)
특집 : 상담소 새집을 마련하기까지

이 감동을 ‘운동’으로 펼쳐가겠습니다!

이미경 (본 상담소 소장)

2015년 7월 17일, 맑은 하늘에 제법 상쾌한 바람도 부는 여름 날. 우리 상담소는 새 집에 이삿짐을 풀었습니다. 대지 57평으로 그리 넓지는 않지만 지하1층에서 지상4층까지의 공간을 활동가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그동안 창고와 임시 사무실에 있었던 자료, 집기들을 정리하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원래 집터에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고 임시거처로 옮긴 지 1년, 처음 7.5평의 사무실에 상담소 문을 연지 24년만의 일이니까요. 그동안 상담소 새집마련에 물심양면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1990년 8월 뜨거운 여름날, 당시 우리나라에 한 군데도 없었던 ‘성폭력상담소’를 만들자고 여성주의자들이 모였지요. 그해 가을 김길자님이 종로구 청운동의 자택을 무료로 빌려주셔서 58명의 발기인들은 수시로 모여 상담소 활동의 밑그림을 그려갔습니다. 팀별로 프로그램을 짜서 우리나라의 성폭력 현황 및 외국의 운동사례를 공부하고 자체적으로 상담원교육을 했습니다. 8개월 뒤인 1991년 4월 13일, 상담소 개소를 하고 우리는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상담부스 하나와 책상 2개, 소파 하나를 간신히 놓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상근활동가였던 최영애 소장, 정경자 선생과 저는 사무실을 구하느라 서울의 각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부동산에서 우리 셋을 보더니 “혹시 00교인들이냐, 선생님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해 가을부터 상근활동가로 합류한 임순영 선생은 누군가 출장을 가야 책상에 앉을 수 있었노라고 회고합니다.

1년 후 상담소 바로 옆에 새 건물이 좋은 조건으로 나서 30평 규모의 쾌적한 환경으로 옮겨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상담소는 한 유명교회 목사에 의한 성폭력사건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출근시간에 검은 양복을 입은 십여 명의 남성들이 상담소 출입구에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그들은 “목사님이 절대 그런 분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상담소가 앞으로 피해자 지원을 자제하라는 요구를 하고 돌아갔는데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1993년에는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가는 길목에 있는 건물의 4층으로 이사를 갔고, 거기에서 부설 쉼터 열림터를 개소했습니다. 쉼터는 상담소 가까이 위치한 일반 주택에 세를 얻어 10명의 생존자들의 새로운 삶을 열어갔습니다. 그리고 “지킴이”라는 대학생 자원활동가들을 모아 성폭력위기센터를 열었습니다. 그야말로 상담소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고 밤낮으로 상담전화를 받고 피해생존자를 지원했습니다. 다행히 그 당시 몇 년 동안 독일의 한 재단(EZE)에서 연간 1억 원씩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 공간마련 및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4년 뒤인 1998년에는 양재전철역 근처의 건물 4층에 자그마한 교육장까지 갖춘 사무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50여명의 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은 정말 큰 감격이었습니다. 더욱이 같은 건물 3층에는 여성재단이 입주해 있어서 자매기관으로 든든했지요. 그 사이 상담소 근처에 있었던 열림터는 매 2년마다 계약을 마치면 다른 집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함께해왔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최영애 초대소장은 그동안 모여진 기금을 바탕으로 내집마련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온 활동가들이 지역별로 팀을 나눠 집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드디어 2002년 장정순 소장은 전철역에서 7분 거리의, 큰길에서 조금 떨어진 학교 앞에 위치한 현 상담소를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건물에 세를 살면서 매 2년마다 보증금을 몇 천만 원씩 올려야 하거나 집주인의 의지에 따라 상담소를 옮겨야 하는 불안감도 있고, 평당 건물 관리비도 만만치 않았지요. 내집을 마련한 상담소는 일반 주택을 개조해 2층엔 상담실과 사무실을 배치하고 지하에 좁지만 모임터도 만들어 각종 모임을 하고, 면접상담실도 예쁘게 꾸미고 자료실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이 워낙 오래되어서 여기저기 수리할 곳도 많고, 급기야 지하 모임터에 물이 새어 활동가들이 자다가 뛰어와 세숫대야와 양동이로 물을 퍼내는가 하면, 폭풍이 불던 날 회의 중에 창밖으로 지붕의 한 쪽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수리를 하다가 2010년 이윤상 소장이 리모델링을 단행했지요. 짐을 컨테이너박스에 보관하고 임시사무실을 얻어 활동하며 2달간 공사를 했는데, 이때 놀랍게도 2층 창으로 난 벽의 한 쪽이 뻥 뚫려 있음을 발견했답니다. 그 쪽에 앉았던 활동가들이 겨울이면 장갑을 끼고 손을 호호 불었던 이유를 알게 된 거지요. 이후 비교적 아늑한 공간에서 2년을 살았는데 우리에게는 교육장을 비롯해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2014년 백미순 소장과 활동가들은 이사를 위해 본격적으로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여기저기 건물은 있지만 우리 상담소 활동에 맞게 리모델링을 해야 할 상황이고 가격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권인숙 연구소장의 지인이었던 황두진 건축사로부터 현재의 집터에 새로 건물을 지어도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이 있었고, 새집을 짓는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모아둔 상담소 기금이 있기는 했지만, 건축비로는 턱없이 부족해 이사회를 비롯해 활동가들은 대대적으로 ‘벽돌기금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주 큰 건축기금을 내고 응원해주신 김화영님의 참여가 없었더라면 새집짓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황두진 설계팀과 활동가들의 지난한 논의과정을 통해 상담소 공간이 설계되고, 시공사로 우공건설이 결정되었습니다. 상담소 식구들이 모여 “아듀 상담소” 파티를 하며 정든 상담소 공간과 작별인사를 하고 12월 29일 새로운 상담소로 태어나기 위해 옛 집의 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슴 아팠던 일은 가을이면 노랗고 향긋한 과실을 선물해주었던 상담소 앞마당의 모과나무를 포기해야 했던 일이었지요. 집이 철거되고 지하를 파서 기반을 다지는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층, 2층…, 하루가 다르게 새 상담소는 모습을 갖추어갔습니다. 7개월여 동안 매주 한 번씩 설계·감리팀, 시공팀, 상담소 활동가가 모여 정기적인 건축회의를 하며 진행과정을 체크하고 점검했습니다. 동시에 모금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지요. 매월 회비를 내주시는 기존의 1,000여분의 후원회원님들만이 아니라, 벽돌기금에 참여해주신 600여명의 감동어린 이야기와 기금이 모여졌습니다. 어떤 분은 공병을 팔아 벽돌 한 장을 사주셨고, 돼지저금통을 들고 온 분, 퇴직금의 일부를 기꺼이 내주신 분….

한편, 건축기간동안 주변에서 여러 가지 민원도 발생했습니다. 주변의 각 집을 돌아다니며 불편사항을 듣고 이해를 구하며 우리 상담소가 이웃과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가야 할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랑 현장소장은 매일 공사를 마치면 손수 청소를 깨끗이 하시곤 해서 주변으로부터 놀랍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시공사와 논의해 이웃의 담벽을 새로이 쌓고,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방음벽을 마련하는 등의 후속조치들을 해갔습니다. 지역사회에 우리 상담소가 ‘기피시설’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여성인권단체’로서 자리매김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7월 10일 예정이었던 입주 일정이 건물 준공검사의 일주일 연기로 차질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미 1년 계약만료로 임시거처를 나와야 해서 결국 컨테이너박스에 짐을 맡기고 일주일간 활동할 공간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사정을 전해들은 상담소 옆의 카페765 사장님은 우리 상황을 이해하고 흔쾌히 장소를 임대해주고 따뜻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상담소의 새집 입주까지 정말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온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새 터전으로 이사 온 후 우리 상담소 곳곳은 생존자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곳, 우리사회 성문화를 바꿔가는 담론을 생산하고 실천해가는 곳으로의 역할을 해가고 있습니다. 지하 1층 “이안젤라홀”에서 피해생존자 집단상담 및 열림터 친구들의 프로그램운영, 그리고 각종 회의와 세미나, 국내외 교육 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층 북카페 형식으로 마련된 다목적실에서는 소규모 회의 및 방문객맞이 등을 하고, 2층에는 사무실, 회의실, 면접상담실, 전화상담실, 휴게실 등이 배치되어 밀도 있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3층에는 부설연구소가 있고, 4층에는 옥상마당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소 건물의 이름을 어떻게 할지는 아직 고심 중입니다. 우리 상담소가 지역사회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함께하며 인권운동을 해가는 데 어울리는 멋진 이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4년 전 개소하면서 꿈을 꿔왔던 공간이 여럿이 함께하니 정말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리 활동가들은 용기를 내고 지혜를 모아 이 감동을 반성폭력운동으로 펼쳐가겠습니다.


상담소 새집을 마련하기 까지
계약서를 들고 있는 활동가들
❶ 계약
짐을 정리한 사무실
❷ 이사

2014. 4. 18.

새로운 상담소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2014. 7.

새로운 상담소가 생기는 동안
잠시 근처에 임시 사무실로 이사도 했고요.

2014. 7.

큰 사고 없이 새로운 상담소가 잘 지어질수 있도록
기원하는 고사도 지냈어요.

아듀파티 현장
❸ 아듀파티

2014.12.

아쉽지만 원래 있던 상담소는
단 몇 시간만에 사라졌고요.

철거 현장의 굴착기
❹ 철거

2015. 2.

지하1층 이안젤라홀부터
차근차근 신축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지하 터파기 공사 현장
❺ 지하공사(2월)

2015. 5.

건물 내부에서 바깥 풍경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상담소를 기대했습니다.

공사 중인 건물 내부
❻ 내부공사(5월)

2015. 6.

외관상으로 건물이 거의 다 완성되어갈 쯤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상담소에 와보기도 했고요.

공사 중인 건물 외관
❼ 외부공사(6월)
완성되어가는 건물 지붕

2015. 7.

기다리던 새로운 상담소가 드디어!
아무런 사고 없이 완공되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새로운 상담소가
많은 분들의 후원과 지지로 마련되었습니다.
새로운 상담소를 축하해주신
많은 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

완공된 상담소 내부 자료실
❽ 내부(완공)
(사)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현판
축하 케이크
지면 장식
완공된 건물 필로티 주차장
❾ 외부(완공)
상담소 입구
환영 안내판과 방문객들
개관식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개관식 단체 사진
❿ 개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