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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을 시작하며
  • 가온 (본 상담소 회원,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단장)
성문화읽기 ②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을 시작하며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몰카범죄의 심각성이 환기되면서 몰카촬영물 유포를 조장하는 음란물유통사이트 소라넷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뜨거웠습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성폭력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소라넷을 포함해 온라인상에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준강간/준강제추행)을 방지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 상담소에 이 캠페인을 제안하여 12월부터 2월까지 관련 종사자와 주변인에 대한 가이드 제작과 집담회, 인식개선활동을 함께하게 된 가온님이 이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전합니다.

가온 (본 상담소 회원,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단장)

먼저 이 운동의 짧은 역사성을 한번 되짚어 보고자 한다. 이 역사성은 2000년대 영 페미니즘, 90년대 캠퍼스 페미니즘이나 80년대 여성운동으로 거슬러 가지 않는다. 물론 간접적인 영향이야 있겠지만, 직접적인 것들만을 본다면 시작은 2015년 바로 올해이며 배경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이다. 이 운동은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온라인에서의 저항으로 시작되며, 트위터 이용자들은 이 시작을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쉬태그 선언 운동에서부터 찾고자 할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를 외치며 IS로 향한 고등학생 김군의 가상적 입장을 김태훈이라는 한 칼럼니스트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위험해요’ 라는 칼럼으로 대변한 사건이 공분을 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엠마 왓슨의 ‘평등을 바란다면 모두 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내용의 연설이 겹쳐지면서 ‘내가 바로 페미니스트’ 라는 선언이 줄을 이은 것이 올해 2월이었다. 이것을 선언으로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감을 얻으며 여성단체의 후원금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며 운동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점차 사그라들 것처럼 보이던 이 움직임은 이후에 장동민으로 대표되는 미디어의 여성혐오를 마주하며 분수령을 이룬다. 무수한 여성혐오 어록을 가진 개그맨 장동민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자신이 싫어하는 여자의 조건이라고 말한 방송이 화제가 되면서 이는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라는 영어로 변주되며 페미니스트들의 표어가 되고 이 문구를 새긴 에코백, 키링, 팔찌 등의 페미니스트 굿즈(상품)가 생산되기도 한다. 장동민의 ‘무한도전’ 등장 여부에 대한 각축의 과정에서 장동민의 팬 등에 의해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가 극심해졌고 페미니즘은 트위터를 넘어서 다른 여성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점차 저항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로 인해 연이어 ‘메갈리아’라는 주체가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여성혐오를 패러디하는 몇몇의 ‘드립’에서 출발하였지만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분노를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군집을 형성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이제껏 등장한 적이 없는 낯선 주체로 그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다.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패러디해 이름 붙여진 메갈리아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형태의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였다. 익명성과 개방성을 가지고 여성혐오를 ‘미러링’하는 것에서 출발한 이 커뮤니티가 무르익자 이 곳에서 남성 성문화에 대한 폭로성 고발이 이어지게 된다. 여자 화장실에 설치하여 용변을 보는 모습을 찍는 ‘몰카’가 이슈가 되고 이 몰카를 유통하는 통로인 ‘소라넷’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이러한 이슈를 가장 예민하게 좇는 SNS인 트위터 역시 이 분노를 공유했고, 또한 몇몇 트위터리안에 의해 술과 약물을 활용한 강간문화가 폭로되었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온라인을 넘어서서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액션이 모색되게 된다.

이 캠페인 역시 그러한 저항적 움직임의 일환이다. 여성혐오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는 놀라운 가시성과 영향력을 가지며 여성들에게 실제적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다만 이전까지는 그것이 ‘일베’로 지칭되는 특정 커뮤니티에서만 국한되는 것이라 여겨지며 연애시장에서 탈락한 일부 ‘루저’ 남성의 돌출적 행위라고 해석되었으며 그 영향력에 대해서도 축소되어 분석되었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한 번 이름 붙여지며 주목되기 시작하자 그것이 얼마나 촘촘하게 남성, 아니 사회 전반의 성문화를 에워싸고 있는지 드러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온라인 문화가 현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발견했을 때 여성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술을 포함한 약물을 활용한 강간 역시 여성들 사이에서는 마치 판타지에서나 존재하는 일처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남자친구에 의해, 지인에 의해, 무작위로 매일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온라인에는 강간 용도의 약물을 판매하는 불법 사이트가 넘쳐나고, 실제 강간 후기가 상품평에 오르며 사진과 함께 소라넷에 공유되기도 한다. 정신을 잃은 여자친구의 성기 사진을 올리며 친구들을 불러서 윤간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성기에 이물질을 꽂고 ‘다른 꽂을 물건 추천 받아요’ 글을 올리며 놀이로 삼기도 한다. 식칼 두 개를 여성의 성기에 꽂은 사진은 많은 여성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여기에 댓글을 다는 남성들 중 아무에게도 이것이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곳이 가입자 100만 명을 자랑하는 한국 최대의 대중적인 성인사이트라는 것이었다.

이 소라넷의 유입 경로는 매번 바뀌는 주소를 공지하는 트위터인데, 소라넷 트위터를 구독하는 팔로워의 수는 38만명에 이른다. 소라넷에 대한 충격이 트위터를 휩쓸자 한 익명의 계정이 이 팔로워들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너 소라넷 하니?’ 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에 대한 거센 반발이었다. 소라넷이 몰카를 공유하고 강간을 인증하는 분명한 범죄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소라넷 하니?’ 라는 질문이 지나치게 무례하며 부당한 권력 행사이고 성적 엄숙주의이며 억압이라는 남성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이 캠페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운동의 힌트를 얻는다. 성폭력문화 속에서 행동을 수정할 것을 요구받는 대상은 지금까지 항상 여성이었다. 이러한 약물강간이나 몰카는 여성이 조심해서 예방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화살이 향하는 것에 대한 엄청난 저항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저항감은 그동안 남성이 갖고 있던 ‘요구받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이 흔들리는 데에서 연유한다.

또한 질문을 개인 하나하나에게로 향하는 것은 남성의 ‘구분되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을 뒤흔든다. 남성사회는 서로를 성적인 공범으로 만들면서 그 권력을 유지한다. 야동을 돌려 보거나 여자친구와의 성적 경험을 낱낱이 친구들에게 말하거나, 성매매를 함께 하면서 남성은 서로가 성폭력문화 속에서 돌출되지 않는 공범임을 확인하고 구분되지 않도록 한다. 이를 통해 남성 개인은 이러한 문화에 대한 책임의 주체가 되는 것을 회피할 수 있다. 개인에게 질문이 향하는 것은 이들의 결속을 위협하며, 책임의 여부를 질문하는 것은 결국 누구도 책임이 없지 않음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이기에, 질문 받지 않은 남성들까지 이에 반발했던 것이다. 성폭력문화를 바꿀 수 있는 운동은 이 남성권력에 균열을 냄으로써 가능하다. 회피하거나, 달래거나, 공모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핵심에 다다를 수 없다. 이 캠페인은 바로 그러한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기를 추구할 것이다.

이 캠페인의 목표는 약물을 활용한 강간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리며, 사회적 경각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현재 강간이라고 인식조차 되지 않는 술, 약물강간이 분명한 범죄이며 피해를 막기 위한 사회적 감시와 주의가 필요하다는 캠페인을 통해 사회 전반적인 강간통념을 재고하고자 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이 주로 목표로 해 온, 제도를 바꾸고자 하는 운동과는 구분된다. 이미 제도적으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강간당하지 않을 권리가 통념으로 인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사람들 개개인의 생각에 대해 저항하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운동의 방법은 책임의 주체를 호명하는 것이다. 약물, 특히 술을 활용한 강간은 일부의 숨겨진 범죄행위가 아니라, 청소년을 포함한 모두가 대중문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동안 문제시되지 않아 온 이 사회의 대표적인 강간문화였다. 번화가의 유명 체인 바에서 강간 용도의 칵테일을 쉽게 주문할 수 있고, 클럽에서 강간할 대상을 물색해 달라고 종업원에게 요청할 수도 있다. 청소년 대상의 웹툰에 술을 마시고 의식을 잃은 여성이 등장했을 때 남성 주인공이 그녀를 강간하지 않으면 ‘남자답지 못하다’, ‘고자’ 라는 평가가 베스트댓글에 오르기도 한다. 때문에 이러한 책임의 주체는 범죄자 일부로 제한되지 않는다. 성별을 불문하고,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아 온 모든 사람에게 생각의 재고와, 행동의 변화를 요청할 것이다. 이것은 올해 온라인에서 출발한,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저항과 맥락을 같이한다. 매갈리아가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반발을 사는 이유는 이들이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통념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느끼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편안한 일상’이 소수자의 저항으로 위협받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다. 이 거부에 굴복하지 않고 힘을 키워나가는 것으로 저항은 이어질 것이다. 화장실 스티커 붙이기에서 시작해서 보다 상세한 내용을 담은 포스터 및 팜플렛 배포, 거리 캠페인, 그리고 간담회로 이어지며 목소리를 모으고 공적 영역으로 이어지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처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쉬운 종류의 것도 아니다. 비판의 여지나 운동이 담지 못하는 지점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미 메갈리안과 신생 페미니스트를 향해 더 나은 운동의 ‘전략’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폭력이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저항의 목소리는 전략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약간의 틈만 생기면 언제든 비집고 나올 비명이며, 그렇게 수없이 중첩되며 비집고 나옴으로써 틈을 넓히는 저항이다. 우리는 이 캠페인으로 다른 여성들이 앞서 지르고 있는 비명에 화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