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뒤집기 모의법정
정현주_성폭력 판례뒤집기 모의법정 기획단
이번 모의법정 기획단 활동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것이 저에게는 올해 봄을 더욱 열정적으로 보내게 하는 따스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기획단의 일원으로서 첫 번째 자문회의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평소 가지고 있던 모의법정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번 행사를 조금은 가벼이 여기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하여 실제 판결문과 변호인 의견서를 참고로 하여 대본을 만들고 전문 배우까지 등장인물로 섭외하는 과정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이번 행사가 갖는 무게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번 활동 이전까지 한국성폭력상담소라는 단체가 그저 사회의 수많은 비영리단체들 중의 하나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일하는 분들이 모여 있는 단체라고 단순하게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모의법정 행사를 준비하며 이러한 저의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은 말 그대로 밤낮 구분 없이, 자신들의 활동이 어딘가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그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25년이나 존재하여 왔던 이 훌륭한 상담소가 그동안 이뤄낸 많은 성과들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대학교에서부터 법학을 배워 왔던 저는 평소에도 정말 터무니없게 황당한 판결을 종종 목격해 왔습니다. 법에 관해서는 가장 이성적이면서 정의로운 사람일 것이라 여겨지는 법관이 내리는 판결이라는 것이 실제 우리네 현실에서는 일반인의 평균적인 상식선에서도 쉽사리 수긍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학원에서 좀 더 심화된 학문을 공부하면서도 자주 드는 고민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져 온 법학 이론이 사회적 정의구현이라는 목표를 위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법관을 비롯한 법조인들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가 바로 사회적 정의라고 생각하기에, 이번 성폭력 판례뒤집기 모의법정은 그만큼 더 공익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기회였다고 확신합니다.
실제 사건의 사실관계조차도 너무나 비상식적인데다 피해자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정말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을 소재로 대본을 작성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피고인과 피해자의 입장과 사실관계를 잘 반영하면서도, 실제 법정에서의 모습을 반영해야 하는 부분으로 인해 너무 감정적이기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한 명의 여성인지라 감정이라는 것을 그렇게 쉽게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조절하기는 어려웠으나, 9명의 배심원단 대사를 만들면서 여러 관련 자료들도 찾아보며 저의 입장도 점차 균형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피해자의 입장과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고자 애쓰던 상담소 선생님들과 우리 기획단의 마음이 모의법정 준비 과정에서 잘 스며들어 이번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이라고 하여 자신만의 권위적인 태도 속에서 매몰되어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법치질서 구현과 정의 실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매일같이 쏟아져 나올 수많은 판결문들이 이러한 모의법정에서 다뤄지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공정성을 갖추기를 다시 한 번 염원합니다. 소중한 기회를 저에게 주신 것에 대해 이번 행사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붓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뒤집기 모의법정 배심원의 말, 말, 말!
〈배심원단 대본 중〉
● 법학교수 役 배심원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따져봐야 하는 것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강간행위를 실제로 한 것인가라는 점이고 그것이 바로 해당 사건 판결의 본질입니다.
● 정신과 의사 役 배심원
피해자가 피해 후 보인 행동 양상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을 수 있는 학대순응증후군(Abuse Accommodation Syndrome)으로 이해 가능하며, 이는 피해의 지속으로 인해 더 이상 항거할 능력과 의지를 상실하게 되어, 가해자의 의사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자녀를 키우는 자영업자 役 배심원
이 사건의 가해자와 같은 파렴치한 성범죄자들이 법정에서 유죄를 받지 않는다면, 피해를 입은 여성과 그녀의 가족들은 과연 어디로 가서, 누구로부터, 그들의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 대학생 役 배심원
요즘 십대들은 이모티콘이나 스티커를 그냥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자주 사용합니다.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이모티콘이 없다면, 상대방이 화가 났거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 재미교포 役 배심원
미국, 영국, 중국 등에서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처벌을 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채택하는 반면 피해자의 진술 분석 자료나 진술 증거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는 태도는 다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연예계 종사자 役 배심원
십대들에게 연예인은 ‘동경의 대상’이라는 것을 악용하여 자신의 직업을 이용, 취약한 중학생을 유인한 피고인의 범행은 실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동입니다. 적법한 처벌로 더 이상 이런 행위들은 사라져야 합니다.
● 은행업 종사자 役 배심원
어린 나이의 소녀가 아이를 임신하여 배가 불러온 상태로 매일 구치소 면회를 갔다는 것은 가해자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취약한 피해자를 끝까지 자신의 처지에 유리하게 이용했던 가해자는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하급심 판결에 준거가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로써의 역할을 합니다.
지난 2014년 11월 본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다른 성폭력 사건 판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많은 시민들이 우려하고, 본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본 사건의 핵심은 연예기획사 대표인 중년 남성(당시 만 42세)이
다리를 다쳐 입원한 중학생(당시 만 15세)에게 했던 성폭력 행위이지,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 이후에 피해자가 보인 행동이나 태도, 편지 등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경험과 진술이 존중되는 재판부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하며,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 성폭력사건의 제대로 된 재상고심 판결을 촉구합니다.
현재 340개 단체가 모여 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매주 학부모, 십대여성, 활동가, 법조인들의 릴레이의견서를
대법원에 보내고 있고,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