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네 개의 스포트라이트
동아冬芽_나눔터기자단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
감독 : 토마스 맥카시
출연 :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줄거리 :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내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려 할수록 더욱 굳건히 닫히는 진실의 장벽. 결코 좌절할 수 없었던 끈질긴 ‘스포트라이트’팀은 추적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졌던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나는데… ‘스포트라이트’팀이 추적한 충격적인 스캔들이 밝혀진다! (출처_네이버 영화)
1. 어떻게 “안 돼요”라고 말할 수 있었겠어요?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가운데 실제 생존자들이 정말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영화가 얼마나 될까. 아니, 최소한 너무 괴롭지 않게 볼 수 있는 영화라도 있을까. 오래 돌이켜보아도 단 하나도 꼽히지 않았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되는 피해자의 울부짖는 얼굴은 이슈를 위한 자극으로만 기능하며 처절히 몰락하는 피해자의 서사는 실제 생존자들의 치유와 재기를 뻔뻔한 것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역겨운 것은 장면들을 담아내는 카메라가 내보이는 관음증적 시선이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이러한 자극적 보여주기에서 벗어나 생존자들의 삶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뛰어났다.
영화 속에서 생존자들은 스스로 용기를 내고 직접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카페에서 머핀을 먹고 미소를 짓고 공원을 산책한다. “내가 처신을 잘못 한 탓이에요.” 하며 절망하는 대신에 “내가 어떻게 ‘안돼요’라고 말할 수 있었겠어요?”하고 되묻는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 고통스러워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그러기 시작하면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지거나 고개를 돌린다. 외설스럽게 반쯤 벗겨진 교복 치마나 멜빵 바지가 끼어들 여지가 아예 없다는 것. 생존자들이 지닌 상처의 흔적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에게 남은 삶들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스포트라이트’를 빛나게 한 첫 번째 스포트라이트였다.
2. 한 아이를 기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아이를 추행하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한 거요.
영화는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와 방관자를 다루는 방식 또한 뛰어났다. 영화 안에서 방관자들은 가해자와 연결되어 그려지기도 하며 피해자와 연결되어 그려지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 예배 시간에 한 신부가 자신들의 성폭행 가해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믿음은 또 다른 것입니다.” 라고 설교하는 장면은 그 발언 내용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예배당을 가득 메운 신도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압도감이 훨씬 컸다. 신도들은 순종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꼭 착한 사람처럼 보였고 그게 견디기 힘들었다. 그들은 교회를, 믿음을 필요로 했고 이에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들이 교회를 필요로 한 것은 그들의 삶이 힘들었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관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온순한 얼굴의 가해자 신부를 통해 이야기한다.
“나는 아무도 강간하지 않았어요. 내가 한 건 강간과 달라요. 난 알아요. 내가 강간당한 적이 있으니까.” 가해자 신부가 자신의 말에 설명을 덧붙이려 할 때에 다른 인물이 등장해 그의 입을 막고 관객은 그가 하고자 했던 변명들을 자신의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3.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던 것뿐이에요. 당신과 나요.
앞서 말했듯 방관자는 피해자와도 연결된다. 피해자들은 왜 자신이 선택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으며 이는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준이 불분명하기에 구분이 불명확한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영화는 그냥 ‘운’이었다는 말로 표현하고 이는 방관자들로 하여금 피해자들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사실과 그들에게도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장면 말고도 영화에서 ‘운 좋은(lucky)’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장면이 또 한 번 있는데 처음 이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가 한 생존자에 대해 “저 친구는 운이 좋아요. 아직 살아 있으니까.” 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 대사 한 마디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생존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이에 더하여 어떤 방관자들은 타인이 겪은 성폭행 피해를 통해 자기 나름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 마티 배런은 어릴 때에 교회에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좀 자란 뒤에 전형적인 이유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하고는 다음과 같이 털어 놓는다. “우습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언젠가 교회로 돌아갈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 날을 정말로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그 (사건에 관한) 편지들을 읽으니까 내 안에서 뭔가가 부서져버린 거야.” 이러한 정신적 피해는 같은 팀 기자인 사샤의 할머니 또한 겪게 되는데 일주일에 세 번씩 교회에 가던 그녀는 손녀 사샤가 보여준 기사를 읽으며 큰 충격을 받는다. “육체적 추행만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라고 말했던 생존자 필의 호소가 다시 한 번 상기 되는 시점이다.
4. 당신들이 그걸 견뎌낼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빛나게 한 마지막 특징은 영화 속 인물들의 설정에 있었다. 그들은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가톨릭 교회라는 커다란 집단에 맞서는 것을 선택한 특종(Spotlight)팀 기자들의 활동을 지켜보며 나는 그들이 지치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다. 그러면 왠지 많은 사람들이 덩달아 지쳐버릴 것 같았고 나도 따라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수많은 장애물을 넘는 기자들의 피로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은 쉼 없이 달리고 싸우고 방법을 찾았다. 생존자들도 그랬다. 울먹이기 보다는 소리를 쳤고 절망하는 대신 화를 냈고 단단한 눈빛으로 마주 앉은 사람을 응시했다.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들의 힘과 뜨거움이 현실로 불붙어 오는 느낌으로서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지금껏 다른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영웅다움'은 '피해자다움' 만큼이나 단순했던 것 같다. 즐기고 도발하는 적들에 맞서 인상 쓰고 피로하고. 어쩌다 영웅이 되어서는 할 수 없이 애써주는 모습에 일반인으로서 고마움을 넘어 미안함마저 느끼곤 했었다. 스포트라이트의 기자들은 달랐고 그 다름은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었다. 다만 지치지 않고 분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심인물들이 영화 초반에 나눈 다음과 같은 대화는 나에게 가장 큰 의미로 다가왔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동시에 마음에 용기가 차올랐던 것이다. 눈물이 마르고 난 뒤에도 용기는 남아서 마음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교회는 몇 백 년 단위로 생각해요.
당신들이 정말 그걸 견뎌낼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네. 그럼 제가 물어봐도 될까요. 당신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