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여성살해’,
우리사회 소수자혐오가
위험수위임을 보여준 사건
잇을_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지난 5월 17일 새벽 1시, 강남역 인근 노래방 공용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었다. 흉기를 소지한 범인이 어느 ‘여자’든 화장실에 들어오기를 기다린 1시간 동안, 남성으로 보이는 6명이 화장실을 이용했다. 피해자는 ‘첫 번째 여성’이었다. 살인의 이유는 ‘여자가 무시해서.’ 범인은 여성 전체에 대한 적개심을 갖고, 일면식도 없는 어느 여성을 죽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우리사회 ‘여성혐오’의 모습을 낱낱이 불러낸 사건이다. 강력범죄 중 흉악범죄의 피해자 85.8%가 여성인 현실(2013년 경찰범죄통계). 한국여성의전화의 ‘2015 분노의 게이지’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언론보도된 사건 중 남자친구나 남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91명이다. 추모 참여자들은 이러한 여성살해와 여성폭력의 원인이 ‘여자가 무시하면 때리거나 죽여도 된다’는 발상과 그러한 행위가 사소하게 여겨지는 사회인식이라고 외쳤다.
공용화장실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언론은 가장 먼저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주목했다. 그리고 공용화장실에서 다른 괴롭힘이나 폭력 피해가 있었는지 여성들에게 질문했다. 대답은 (예상할 수 있듯이) ‘있었다’이다. 서울시는 화장실 전수조사를 해 공용화장실을 남녀화장실로 시정조치 하도록 했고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용화장실을 남녀화장실로 변경하면 여성들에게 더 안전할까? 안전은 공공장소에 제한구역을 만들거나 남성은 여성의 공간에, 여성은 남성의 공간에 드나들지 말자는 규칙을 통해서 보장되지 않는다. 여성으로 특정되기만 하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성별에 따른 공간분리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밤의 길거리도 대낮의 집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용인되는 한 ‘안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더라도, 두려움 때문에 일상의 공간을 내줘서는 안 된다. 물러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위해 더욱 싸워야 한다.
괴물은 우리사회가 키운 차별과 혐오
경찰은 사건 발생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혐오범죄가 아직 대한민국에는 없다”고 못 박고 조현병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정신질환자 체크리스트를 배포하여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행정입원’ 조치할 수 있게 하고, “정신질환자의 퇴원에 구체적 요건을 정하고, 보건소나 경찰관서와 네트워크를 만들어 정기 점검”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는 경찰이 자의적 판단으로 정신장애인/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하고 격리감금할 수 있다는 ‘폭력 선언’으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여성들이 두려워한 것은 공공장소에서 언제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이었다. 여성들이 불안해한 것은 범죄자를 ‘미래가 창창한 청년’이라는 수사로 싸고돌며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한국의 수사사법체계였다. 그러나 상황은 마치 공용화장실이라는 위험한 공간에만 가지 않으면 범죄가 예방된다는 식으로 단순화되고 있다. 범죄자의 압도적 다수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존재라는 데서 오는 절망감은 ‘그럼 그렇지, 가해자는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닌) 미친놈’이라는 ‘정해진 결론’ 앞에 더 커졌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사회적소수자 집단 전체를 멸시, 폄하, 위협하는 언동을 하거나 증오범죄(hate crime)에 이른 경우, 이는 해당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 전체의 존엄성을 공격하고 일상생활에 공포심을 유발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증오의 중단이다. 여성이라는 사회적소수자를 향한 ‘증오’를 단지 다른 방향으로 치워달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증오가 대체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증오를 중단할 수 있는 구체적 대책을 요구한다.
증오범죄(hate crime)를 ‘관용 없이 강경처벌’하고, 공공연한 혐오발언을 촘촘하게 규제할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차별금지법은 보수종교계의 이해관계로 인한 방해공작으로 번번이 제정이 가로막혔다. 시민사회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시기상조’로 여겨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사회의 소수자혐오는 위험수위다. 사회적소수자를 모욕하고 저주하는 혐오표현이 언론매체 광고를 차지하고 정당 공보물에 버젓이 실리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UN 여성차별철폐·인종차별철폐·사회권규약·아동권리위원회 등이 2007년 이후 수차례 이상 강력히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언젠가 만들어야만 할 법, 어서 제대로 만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