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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과 친밀감의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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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활동했습니다 ⑤

상근활동가 쉼 프로젝트 :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 쿠마노 순례길’

낯설음과 친밀감의 거리에서

어진_본 상담소 부설 열림터 활동가

9월 1일부터 4일까지 3박 4일간
천주교성폭력상담소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14명 활동가가 함께 일본연수를 다녀왔다.
‘짧은 여행, 긴 호흡’이라는 여성공익단체역량강화지원사업(한국여성재단)의 하나로 쉼과 재충전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명대로 여행은 정말 짧았다.

여행 충전의 힘으로 두달여를 지내오고 있는 요즘 아주 가끔씩 일본의 풍광과
그에 머물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날 때가 있다. 아주 찰나, 아주 짧게- 그 때
그 고즈넉했던 표정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 그 길에서 맡았던 새벽냄새가 여행의 설렘을 담아 보내주는 듯 했다. 산만한 가방을 메고, 버스를 기다리며 이제 곧 비행기를 탈거라는 기대에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어느새 곧 일본에 도착해 있었다. 14명의 움직임이 담긴 여행 그것도 여성단체 활동가들의 조합이라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아는 것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주장이 또렷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순간의 조율과 간극을 메워가는 것은 서로에게 긴장감과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첫날 더위와 저질 체력을 견딘 걸음걸음으로 간신히 도착한 오사카 검찰청의 <형사사법절차와 피해자지원체계>에 대한 강의는 현재 내 위치를 가늠해 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수순으로 형사사법절차들이 개정되어 가고 있는 점, 재범방지를 위해 가해자에 대한 사회복지적 접근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 등이 기억에 남는다.

둘째 날 고야산과 순례길은 일본에 대한 애정도를 오만 배쯤 높여 놓았다.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감이 별로 없었다. 단지 ‘맛있는 초밥을 마음껏 먹어보자’는 낮은 수준의 기대뿐 이었다. 하지만 고야산을 보고 그 길을 걸으면서 산을 대하는 정갈하고 소소한 마음들이 눈에 들어왔다. 돌로 쌓여 있는 고즈넉한 길을 걸으며 작은 소리의 잡담을 나누었다. 왜 반성폭력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요즘 어떤 갈등이 있는지, 그 갈등을 풀기가 왜 어려운지의 이야기들-정답 없는 한숨이지만 그 한숨이 고야산의 청정한 바람에 금세 날아가 버리는 듯 했다.

강가에서 셀카봉으로 찍은 활동가 단체 사진
셀카봉 써봤어? 모두 모여 단체샷

셋째 날 아라시야마의 천룡사에 닿았다. 평소 사찰에 대한 지식없음에 ‘사찰은 그냥 사찰일 뿐’인 나에게 천룡사는 대신 어마어마한 경치를 보여주었다. 넓은 호수, 시원한 대나무 숲길, 청정한 법당은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다. 똑똑-물소리가 나는 이 법당 한 귀퉁이에서 오래도록 앉아있고 싶었다.

인천공항에서 현수막을 들고 찍은 단체사진
일본으로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단체사진 찰칵!
돌담길을 걸어가는 활동가의 뒷모습
고독을 스치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의 뒷모습

여행은 걸음걸음으로 채워지는 듯하다. 이 사람과 걷다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다. 또 다른 사람과 걷다 보면 다른 목소리가 내 곁을 채우고 있다. 5년 만에 활동을 다시 시작한 지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나는 지금의 활동가들이 낯설다. 아니 잘 모르겠다는 표현이 맞겠다. 앞을 보고 걸으며 나의 눈은 지금의 활동가들에게, 낯선 동료들의 등을 향해 있었다. 조금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힘듦을 나누고 싶지만 어쩌지 못하는 초조한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런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냈던 날들, 여행이라는 여유가 주는 부록 같다.

거리에서 나란히 선 활동가 두 사람
본 상담소 활동가 선민(좌)과 어진(우)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핸드폰 화면에 일렬로 문자들이 늘어서고 때마침 “생활인이 아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묻는 전화가 걸려온다. ‘서울에 왔구나, 짧은 여행이 끝났구나.’ 이 활동들을 부지런히 잘하라고 주신 귀한 선물에 ‘앞으로 제대로 잘 해야지!’ 하며 어깨에 힘을 모은다.

천룡사 정원 전경과 청수사 전경
천룡사 내 정원 전경 / 청수사의 전경과 그 아래 시내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