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가해자에게,
그냥 말할 때 길거리괴롭힘을 그만둬주라
수진_나눔터기자단
‘길거리괴롭힘’이란 단어를 알게 된지 이제 막 3년이 되었다. 길거리괴롭힘이란 공공장소에서 약자라는 이유로 경험하는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력 등을 의미한다. 폭력을 언어로 만들어 가시화시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내 앞에서 처음 언어화된 폭력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꽤 컸다. 그동안 내가 길거리에서 경험한, 그러나 설명하기 애매한 폭력들을 ‘길거리괴롭힘’으로 명명하자 한결 더 명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9월 21일, 강의가 끝나자마자 ‘길거리괴롭힘·성폭력·성희롱 말하기대회 넌진상 오픈라디오’ 준비를 위해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상태의 무대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엔 의자를 나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 사이에 껴서 같이 의자를 세우고, 물티슈로 닦고, 포스터를 붙이고, 간이펜스를 치다 보니 날씨가 막 서늘해지던 참이었는데도 땀이 흘렀다. 그날따라 하늘이 유난히 맑고 예뻐서 준비하는 동안 다들 한두 번씩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날씨가 좋아 다행이라는 말을 나눴다. 준비가 끝난 뒤엔 진행을 맡으신 이진송님, 게스트로 참여하신 가수 신승은님과 은하선님 사이에 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훅훅 흘러 행사 시작 시간이었다.
화려한 무대 때문인지 아니면 행사 전 틀어놓은 노래 때문인지 행사장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중 몇몇은 무슨 행사인지 묻곤 관심 없다며 짜증 섞인 얼굴로 떠났고(와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좀 지켜보다 사진만 찍고 그대로 가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을 찍은 경우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삭제를 부탁해야 하는데, 쉽게 삭제를 해주려고 하지 않아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픈 라디오’ 방청을 위해 청계광장으로 모였다. 나는 텍스트 중계를 위해 무대 근처에 앉아 준비된 PPT 슬라이드를 넘기고, 진행자와 게스트들의 대화를 텍스트로 작성했다. 행사 시작과 동시에 피해자들의 경험과 게스트들의 대화와 청중들의 분노가 광장을 메웠다. 무차별 폭력은 ‘놀이’처럼 가벼워지고, 피해자는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검열하게 되고, 만연해진 괴롭힘 속에 가해자들은 자유로워졌다. 손이 시려웠지만 오가는 말들을 받아 적어야 하기에 쉴 수 없었다. 신승은님과 은하선님의 노래도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닿아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속 흥얼거렸다.
이번 오픈 라디오 행사에서 제일 좋았던 점은 행사가 일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SNS 채널을 통해 청취자들끼리 의견을 나누고, 행사 중간중간 진행자가 SNS 채널의 대화내용을 읽으며 청취자들과 소통하는 행사 방식은, 길거리 괴롭힘을 근절시키겠다는 의지가 단순히 행사 진행자나 주최자의 주장이 아닌 여기에 참석한 우리 모두의 의지라는 것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엉덩이와 가슴을 움켜쥐고, 외모와 옷차림에 대해 평가하고, 언어적 폭력 피해의 경험은 단순히 개인의 경험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폭력에 괴로워하고 고통 받았던 기억들이 모여 말이 되고, 그 말들이 밖으로 나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광장에 있었다.
아직도 길거리괴롭힘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가 일반화되지 않았더라도 피해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기에,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나 역시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