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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수기 투고글 - 산티아고에서 찾은 길
  • 김다연
성폭력 수기 투고글

산티아고에서 찾은 길 _ 첫 번째 이야기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 경험한 성폭력은 다연님을 생존자의 여정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에세이를 통해 그 여정에 함께 해주세요.
(본 글은 다음 호까지 2회 연재합니다.)

김다연

"다연아, 산티아고에는 여름에 비가 안와. 그런데도 가뭄이 없다. 왜 그런 지 알아? 넌 똑똑하니까 맞출 수 있을 거야."

칠레 산티아고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산크리스토발 언덕을 오르던 중이었다. 함께 걷던 캐나다에서 온 아저씨가 내게 질문을 건넸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칠레가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여서 그런 걸까.

"땡! 잘 생각해봐."

글쎄. 잘 모르겠다. 사실 난 이 무렵 시시콜콜한 문제에 논리 정연한 답을 꺼내어 조각을 맞추어볼만한 여력이 없었다. 며칠간 나를 괴롭혀온 어둡지근한 사건 때문이었다.

#

그 날은 유난히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나는 남미 여행 중 사나흘 간 동행했던 한국인 할아버지를 배웅하기 위해 피곤함을 무릅쓰고 어기적 일어났다.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호스텔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오직 홀로 여행 중인 딸을 보기 위한 일념으로 배낭만 꾸려 남미 땅을 밟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남미 대륙에서 딸과 헤어진 뒤, 홀로 여행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일정이 맞는 곳까지 함께 동행해달라며, 간곡히 부탁을 했다.

산티아고 전경
산티아고(이미지 출처 : 오마이뉴스)

어떡하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모시고 동행하는 모습을 그려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내게는 약 6개월간의 세계여행을 통해 절실히 배운 철학이 있었다. 눈물을 삼켜야 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아 왔기에 이제는 내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잡을 차례라 여겼던 것이었다. 나는 긴 고민 끝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고된 사흘이었다. 환전, 버스표 구입과 같은 간단한 도움을 청하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잡다한 통역, 사진촬영, 일정 및 이동루트 등 사사로운 일에도 내 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어느덧 할아버지의 무료 투어 가이드가 되었던 나는 내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나친 요구에 점점 지쳐가던 찰나, 마침내 계획한 루트가 달라 사흘간의 인고 끝에 작별을 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날,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이별의 포옹이랍시고 건넨 손에 이끌렸다가 그만, 성추행을 당한 것이었다. 귓가에 탐욕스런 숨을 불어 넣으며 가슴을 만졌고, 옷 속에 손을 넣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놀랐던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칠해져서 손을 뿌리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하고, 작은 탄식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밖으로 도망칠 여력도 없었다. 그저 나는, 거듭되려는 그 더러운 손길을 거부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려버렸다. 우습게도 정말 사고의 회로가 정지되어버린 건지, 내가 지금 당장 도망칠 곳이 오직 침대 위의 이불 속이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러운 말을 마저 뱉다가 결국 시계를 보고는 배낭을 마저 챙기기 시작했다.

이불 속으로 숨은 나는 여전히 온 몸이 파르르 떨리기만 했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한거지? 이 더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하나? 아니면 저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러 가버리면 그 때 민박 사람들에게 말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갖가지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휴학을 하고, 8개월 내리 억척스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애틋하게 준비하여 1년을 계획하고 떠난 세계여행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강도를 만나거나 비행기 열차 각종 사고를 만나게 되어 혹여 돌아오지 못하는 상상을 하며 두려움이 피어올랐던 여행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마저도 품고 이겨내 보겠다며 떠나온 것이었다. 그토록 내 소중한 여행에 더러운 흠집을 새겨놓다니. 생각이 이쯤 닿자, 요동치던 심장이 점차 잦아들어갔다. 좀처럼 혼란스럽기만 했던 정신도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혼란을 깨부수기 시작했고, 마음 속에 강한 의지가 돋아났다. 아,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난 반드시 이 일을 넘어뜨리리라. 마침 배낭을 다 꾸렸는지,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버스를 타러 가보겠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좀 전의 끔찍한 일을 하나씩 읊으며 말이다. 당연히 부인을 했고, 나는 혼자 힘으로 이겨낼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어 거실로 뛰어 나갔다. 사람들이 자고 있는 곳에서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잘못을 낱낱이 읊었다. 그는 시간이 촉박하자 마지못해 시인하기 시작했고, 나는 녹음기를 키며 무릎을 꿇으라 했다. 하지만 조금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로 사과를 들어야 했다. 그만 꼴도 보기 싫어서 가라고 했다.

괜찮아, 이 정도면 잘했어. 곧 이겨낼 거야, 라는 생각은 엉성하게 맺은 매듭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지기만 했다. 남미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단톡방에서 보란 듯이 뻔뻔하게 여행을 하고 질문과 사진을 올리는 가해자 할아버지의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울분이 돋아나 눈물이 톡하고 떨어졌다. 나는 혹여나 또 마주칠까봐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지도, 이 도시를 관광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왜 피해자는 고통 받고 가해자는 떳떳하게 여행하는걸까,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까. 복합적인 생각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일을 크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당한 사건을 공론화 시켰다. 그러자 갑자기, 할아버지의 딸이 나타나 공개된 녹음 본마저 그럴듯한 이유로 부인했고, 도리어 나를 노인네 꼬신 여자로 몰아가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다는 역습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도 고소를 준비하며 한국행비행기를 검색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 마음이 타들어가서 잠을 설치기도, 비참함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도 했다. 하루 종일 힘이 없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캐나다 아저씨가 등산을 가자고 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발을 움직여서 온 곳이 산 크리스토발 언덕이었다.

#

산티아고에 비도 안 오는데 가뭄이 없는 이유라. 어둡지근했던 사건을 매 분매초 되밟아보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는 잡다한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는 캐나다 아저씨의 질문에 고민하는 척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냐하면 산맥 위에 쌓여있는 눈이 녹아 흘러내려서 큰 호수를 만드는 거란다. 그래서 안데스 산맥으로 인해 산티아고엔 비가오지 않아도 풍요로울 수 있단다"

그런데 아-,

"그리고 산맥이 너무 험준한 탓에 적군이 함부로 산을 넘을 수 없도록 지켜주기도 했지.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줘서 기후가 늘 안정적이도록 도와준단다. 그게 안데스 산맥이야"

캐나다 아저씨의 말에 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잔잔히 느껴지는 안데스산맥의 자애로운 기운이 근사해서, 저절로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안데스산맥을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

안데스 산맥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가슴 속을 깊게 찔렀던 고통의 흔적들이 점차 눈이 녹듯 점점 스르르 가라앉아가기 시작했다. 강한 사람이 되라고 내린 고난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안으로 요동쳤던 감정이 덤덤해져갔다.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문득, 여행을 포기하고 고소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현명하게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다음날, 여행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떠나 발 닿은 칠레의 또 다른 도시,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에서 그믐 날 쏟아지는 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내게 현명히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다음날 신기하게도, 며칠 전 가해자 측에 진실을 호소하고 정당한 사과를 요구하며 보냈던 긴 메시지에 대한 응답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카톡으로 자백과 사과를 받아보게 되었다. 공개적인 공간에서 쪼아대며 힘을 모은 것이 죄책감을 이끌어낸 듯 했다. 한국에 있는 언니는 내 소식을 듣고 내게 이정도면 잘 풀린 일이니까, 그만하고 매듭을 지으라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벼운 사과로 사건을 종결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정지버튼을 누를 작정이었다면, 나는 당시 진심 없던 무릎 사과를 받고 바로 멈췄을 것이다. 가슴에 묻어두고 처음부터 없던 일 마냥, 여행을 행복하게 하는 척, 곪아가는 마음을 모른 체 했을 테다.

잠시 숨을 고르고, 아타카마 사막의 지평선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안데스 산맥을 바라보았다. 산맥을 아우르는 그 기운을 닮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강렬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말한 매듭은 나 자신을 넘어, 이러한 일로 고통 받는 다른 누군가, 특히 여성들의 아픔을 대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맺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 끝에 합의의 세 가지 조건을 토하게 되었다. 첫째는 나에게 자필로 된 사과문을 발송할 것, 둘째는 물의를 일으킨 민박집에도 사과문을 발송할 것, 마지막은 합의금으로, 세상에 성폭행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양심껏 성폭력 피해단체에 후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가시 걸린듯한 고통이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따금씩 떠올라 또다시 나를 괴롭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느낀 것이 있었다.

말끔히 씻어버려도 되는 기억이 결코 아님을, 고통의 기억을 짊어지고 그 속에서 피워낸 단단함으로 닮은 고통을 가진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음을. 그리고 차곡차곡 쌓여 먼 훗날 내 산맥을 이룰 거름이 될 기억들임을.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