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
  •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상담소 OLD & NEW_자원활동가편
  • 수진_나눔터 기자단 Meka 1기
만나고 싶었습니다

자원활동가 김정희님과 동동님을 만나다

상담소 OLD & NEW_자원활동가편

상담소의 행사에 참여하면 종종 열심히 일하는 자원활동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상담소에 없어서는 안 될 감초 같은 존재이지요. 상담소가 개소한 1991년부터 자원활동을 하셨던 김정희님과 2015년부터 열심히 활동 중인 동동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인터뷰이_김정희&김지훈(동동) 인터뷰·정리_수진_나눔터 기자단 Meka 1기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지훈(이하 ‘동동’) _ 안녕하세요, 저는 동동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여기 상담소에서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은 잠시 동안 대학생으로 살고 있고요, 빨리 졸업하는 게 당장 제가 바라는 꿈이에요. 빨리 졸업하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하고 싶은데, 졸업해도 그건 좀 어렵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오버워치라는 게임에 빠져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원래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게임이 너무 좋아서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김정희(이하 ‘정희’) _ 서울지방교정청에서 일하는 김정희입니다. 다섯 글자로 표현하면 ‘언제나청춘’? 그런데 내 나이면 여전히 청춘 아닌가? (웃음) ‘에너자이저’나 ‘긍정에너지’ 같은 거로 표현해도 좋을 것 같아요. 에너지가 좀 많은 편이라.

김지훈(동동)
김지훈(동동)

상담소와의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상담소를 어떻게 찾아오셨고 첫 인상은 어떠셨나요?

동동 _ 2015년에 상담소 홈페이지에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그건_강간입니다)’ 자원활동가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첫 회의를 갔던 기억이 나요.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은 남성이 주변의 연대자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에 그 의미가 컸지요. 저 역시 그 주제로 당시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던 차여서, ‘남성성 김장하기’ 좌담회에 패널로 참여했어요. 그때 그 행사를 준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캠페인 이후로 기자단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고 그래서 자주 상담소에 방문하고 있어요. 벌써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인연이네요!

정희 _ 대학생 2학년 1학기 때 여성학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지금도 불평등한 사회이지만 그 때는 불평등이 더욱 심했기 때문에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여성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하면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거나 성범죄를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여성 문제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방법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상담소 초기 멤버이신 정경자 선생님께서 오셔서 특강을 하신 거죠. 초기라 선생님들도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해서 사회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첫 발을 내딛은 거라 상담소에 대한 애착이 크셨어요. 선생님들도 젊으시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가족적인 분위기를 많이 느꼈죠. 토요일에 주로 자원봉사를 갔는데, 거기 밥솥이 있어서 같이 밥도 먹고 하면서 지냈어요.

지금까지 상담소와 함께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어떤 날인가요?

동동 _ 아무래도 2016년 2월에 신촌에서 했던 ‘동의하고 하는 행진’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페미니즘 구호를 외치며 거리 시위를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길거리에서 행진하는 일은 ‘3.8 여성의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거든요. “동의 없는 성적 행위는 강간”이라는 굉장히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메시지를 담은 구호를 사람 많기로 유명한 신촌 거리에서 외칠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잠깐이지만 해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어요.

정희 _ 김** 김△△ 사건 때 상담소가 주축이 되어 구명 운동을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전 뉴스를 통해 그 사건을 처음 접했는데, 김△△이란 사람이 강도짓을 해 검찰고위직이 죽었다고 나왔어요. 그런데 김△△의 아버지가 상담소에 와서 상담을 하면서 진상이 밝혀지게 됐어요. 계부가 의붓딸을 어렸을 때부터 강간했는데, 그 여자분이 대학교에 와서 사귄 남자친구가 김△△인 거죠. 여자친구에게 피해 사실을 들은 김△△이 계부를 찾아가서 딸을 제발 놔달라고 부탁을 해도 듣질 않으니 격분해서 살인을 저지른 거예요. 자원활동가들이 서명 운동이나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사건을 알리고 그랬어요. 그 때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고, 그 사건 이후에 근친 간 성폭행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어 기억이 남네요.

동동님은 앞으로 상담소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인가요?

동동 _ 상담소에서 “신나는 클럽” 행사를 여는 거에요. 춤을 좋아하고 신나게 추고 싶어서 클럽을 가도 원치 않는 스킨십과 불편한 분위기로 클럽에 가기 어려운 분들이 많잖아요. 상담소에서 그런 걱정 없이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는 행사를 열어서 모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놀 수 있는 그런 행사를 열고 싶어요.

이번엔 정희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상담소 활동이 선생님께 미친 영향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자원활동가 김정희

정희 _ 학생 시절 학교 내에서는 소비자협동조합(현재 생활협동조합)에서 일했었고, 밖에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환경 관련된 시민모임에서 활동했어요. 일상적인 변화, 지역사회 내에서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던 거죠. 대학생 때 이런 활동들을 했던 게 지금은 저의 신념으로 남아있어요. 살아가면서 다른 길로 새려고 하려다가도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돌아올 수 있도록 기준이 되어주는 거죠. 어떠한 선택을 할 때 나중에 덜 후회할 수 있는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고요.

나는 이런 활동가가 되고 싶다, 또는 이런 활동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게 있나요? 있다면 알려주세요!

동동 _ 딱히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활동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어디에 주목받기 보다는 그냥 사람들의 시선 밖에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을 책임지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늘 시선의 예민한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요. 이걸 유지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또 조금 고통스럽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것을 잃는다는 것이 제가 바라는 것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정희 _ 분위기 메이커였던 활동가로 기억되면 좋겠네요. 초기에는 자원봉사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었어요. 그래서 막내였던 제가 자원봉사자들의 연락망을 맡았는데, 한 마디로 자원봉사자의 자원봉사를 한 거죠. (웃음) 아무래도 처음 오면 친해지기 전엔 서먹한 분위기가 있으니까 빠지기 쉬웠는데, 막내가 연락해서 나와주라고 하면 다들 나오고 그랬었어요. 또 봉사자들이 외롭다는 생각이 안 들게 노력하기도 했고요.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 해볼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려요!

동동 _ 제가 사실 상담소에서 그렇게 대단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또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들도 많은데 이렇게 인터뷰 한다는 게 매우 어색하네요. 다만 제가 활동할 수 있는 이 공간이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곧게 서있다는 것을 상담소 건물 1충에 새겨져 있는 후원자 명단을 보면서 항상 느끼고 있어요. 물론 저도 이 상담소가 단단히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에 매달 조금씩 보태고 있고요. 한 명 한 명의 관심과 연대가 이 세계를 좋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늘 저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우리 앞으로도 계속 지치지 말고 계속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정희 _ 저희끼리는 활동하면서 봉사가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많이 배워간다고 얘기를 나눴었어요. 활동하면서 문제의식도 느끼고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많이 고민하면서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얘기도 나누니까요. 상담소가 체계적인 시스템도 가지고 있고 여러분에게 좋은 장이 되어주고 있으니 매 순간에 충실하게, 즐겁게 활동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