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찾은 길
_ 두 번째 이야기
(본 글은 80호에 이어 이번 호까지 2회 연재합니다.)
김다연
1년을 계획한 내 여행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합의 후 정확히 한 달하고 보름정도가 지났을 무렵, 합의를 거행했다는 증거를 받게 되었다. 여행 중 종종 아주 우연히, 남미 성추행 사건을 아는 다른 여행자들과 조우하게 되기도 했다. ‘재미있던’ 사건이라 표현했던 이도 있었다.
“남미여행 하셨어요? 저도 3월쯤 남미 갔다가 모로코로 넘어왔는데...”
“어 저도 그때 남미에 있었어요! 신기하다. 남미에서 멕시코랑 쿠바 거쳐서 모로코로 왔어요!”
“잘하면 마주쳤을 수도 있겠다~ 근데 남미 정말 재밌지 않았어요? 재밌는 사건도 많았는데. 왜 성추행 사건도 있었잖아요ㅋㅋㅋ 그거 진짜 대박이었는데. 사람들이랑 맨날 흥미진진하다고 얘기하고”
그를 통해 당시 그 곳의 공기를 마셨던 사람들에게 성추행 사건이 큰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어 참 씁쓸했다. 그 가십의 농도가 얼마나 가벼운지 알기에 제법 덤덤해질 법도 했는데. 밀려오는 씁쓸함을 막을 만큼의 노련함은 부족했었나 보다.
하지만 피해자로서 당당하고, 떳떳하고 싶었던 생각만큼은 또렷했다. 나는 사건이 언급될 때 마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단숨에 말을 꺼내곤 했다.
“아~맞아요. 근데 그 당사자가 누군지 알아요? 바로 저예요!”
마음에 축 가라앉은 무거운 추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 어설픈 내 내면의 감정을 감당해야 했다. 또 공감의 경계에 넘어오지 못하는 것이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을 수긍해야했다. '어설픈 괜찮음' 이라면 차라리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나아. 라고 생각했지만 씁쓸함이라는 감정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인지하고 수긍할 수 있도록, 말을 되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익숙해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잡념에 흔들리지 말자고. 여행 중, 이야기를 꺼내면 좋겠다 싶은 타이밍은 계속되었다. 또 가십이 되겠지, 나는 알면서도 어김없이 말을 꺼내며, 배낭을 메고 여행 길 위를 주저 없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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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9개월 차가 되었을 무렵, 파리 에펠탑 앞에서 수중에 남은 돈을 헤아려보던 나는 여행의 종착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도저히 완주할 수 없다는 서글픈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순례길에서 800KM의 아득한 거리를 걸으면서 긴 긴 여행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여행 중 수차례 무너지면서도 거듭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불현듯 비책 하나가 떠올랐다. 순례길 위에서, 길 위의 순간을 담아낸 엽서를 그려 팔아보는 게 어떨까.
나는 제법 비장한 다짐을 품고 파리 시내를 휘젓고 다니며 촉감이 빳빳한 종이, 그리고 잉크가 제법 명랑하게 나오는 까만 펜을 10유로에 구하게 되었다. 실은 그다지 좋아하지도, 잘 그리지도 않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여행의 끝자락, 설상가상 파리에서 돈을 잃어버린 탓에 빈털터리가 된 내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 길을 그저 아주 간절히, 걷고 싶었다.
순례길 첫 날부터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펜을 쥐어 그림을 하나둘 그려보았다. 종이 위에 정성스레 그려진 선들이 모여 짠, 하고 근사한 그림이 튀어나왔으면 좋으련만. 그림이 업도, 취미도 아닌 손에서 그런 기적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토록 못난 그림엽서가 팔리기는 할까, 무탈하게 종착지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설령 다 걷더라도 한국행 비행기를 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금적 여유가 있을까...! 단단했던 다짐이 조금씩 바스러져 갔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피곤에 잔득 절인 숨소리가 들려오는 자정까지, 소등한 알베르게 안에서 쏟아지는 잠을 마다하며 핸드폰 빛에 의지해 정성스레 그리기를, 그리다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이 서툴기만 한 엽서에 대해 하나 둘 물어보기 시작했다.
“다연아 얼마야?”
엽서의 가치를 숫자로 매기는 것은 참 민망했다. 그래서 그냥 모르겠다, 순례길에 '도네이션 알베르게'가 있는 섭리를 따르기로 했다.
“내고 싶은 만큼! 맘에 들지 않으면 0.1센트만 내도 돼!”
엽서는 각자의 시선이 만든 가치에 따라 팔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주문을 의뢰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친구를, 연인, 그리고 가족을 까만 잉크로 정성스레 담아냈다. 비뚤었던 선은 더뎠지만 조금씩 반듯해져갔고, 하루 팔아 벌은 돈으로 나는 다음날, 또 다음날도 걸어갈 수 있었다.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엽서를 사가는 그들을 보며 나 홀로만 이 순간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짊어진 고통의 기억으로 힘이 되어 주리라던 다짐을, 이 순간을 함께 누려서 작은 도움에 발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엽서 팔이 수익 중 반액은 성폭력 상담소에 기부를 하리라. 산티아고에서 내가 느낀 아픔과 닮은 누군가의 상처에 거름이 되고, 용기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엽서를 더 정성스레 빚어냈다.
그렇게 30일을 걸었다. 생장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 대성당에 발 닿은 그 날까지, 엽서를 건네어 받은 돈을 헤아려보니 170.74유로(환율 1240.12원 귀국일 기준 한화 211,744원)였다. 체코에서부터 순례길까지 걸어 온 현명오빠는 제일 싼 바게트로 끼니를 해결하며 내 엽서를 보고 과감히 5유로를 건넸다. 여행 중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거쳐 순례길 중간에 재회한 현동오빠는 내게 100유로를 담은 봉투를 건넸다. 그새 다른 사람의 아픔도 보듬을 생각을 했다고, 그러니 내가 쓰는 100유로가 더 가치있을 것이라는 편지와 함께. 그 외에도 스쳐지나가거나, 혹은 오래토록 함께 한 사람들이 오롯이 홀로 걸을 수 없던 순례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함께 해줬다. 마음에 맡겼던, 어쩌면 부담을 맡겼을지도 몰랐던 엽서였을 텐데 그들은 기꺼이 사갔다.
아마도 그들은 엽서가 아니라 이 길을 반드시 걷고자하는 내 절절한 의지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려던 그 마음을 사줬으리라. 그 다정한 마음에 너무나 고마워서, 엽서를 건넬 때 마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따뜻했다. 30일간 강렬하고 따가웠던 스페인의 태양을 등진 채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걸었으면서,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나는 우습게도 따뜻하다고 느꼈다. 내가 건네받은 것은 5유로, 100유로뿐이 아닌 그들의 따스한 마음이라서 그럴 테야. 마음에 울걱울걱 피어오르는 감정을 삼키고자 대성당 앞에서 뜨거운 태양을 이불삼아 잠시, 그리고 오래토록 눈을 감고 지난날들을 회상해보았다. 산티아고에서 씹어 삼킨 고통과 상처를, 용기와 의지로 승화시키기까지 얼마나 찬란했는가. 여행의 첫날보다 조금은 강한 사람이 되었을까, 안데스 산맥의 거룩한 기운을 조금은 닮게 되었을까. 생각의 실타래를 늘어트리며 비로소 얼기설기 맺었던 매듭을 곧게 지을 수 있었다.
바람과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던 순례길 마지막, 여행의 끝자락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