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성정치> 책읽기 소모임
오매_두 달째 페스코로 살아보고 있습니다
한국어판으로 <육식의 성정치>, 영문으로 <The Sexual Politics of Meat>인 이 책은 구글 검색에서 ‘요리책’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요. 이 책은 살아있던 동물, 시체가 되었다가 가공되는 과정을 머릿속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그래서 요리의 영역-미각의 세계에서 짠 하고 나타나는 별도의 단어 Meat(고기)를 비판하고 분석하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할 때 못 먹던 고기, 이제는 실컷 먹는다로 ‘경제성장’과 함께 언급되지만, 서구의 역사에서 육식이 어떻게 남성성의 상징이어 왔는지 분석하고, 2장에서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이 놓이는 위치와 동물이 놓이는 위치를 교차해서 살펴봅니다.
객체화, 절단, 소비. 객체화는 억압자가 또 다른 어떤 존재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게 만드는데요, 대상으로 삼으면 폭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부정된 존재는 죽은 객체로 전환되고, 절단 해체되는 과정에서 의지와 정체성은 산산조각나고, 소비되고 사라지지요. 여성폭력, 동물 도살을 떠올리면 이 개념과 실천이 주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집단은 서로에게 비유된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다른 억압을 설명할 때, 가령 ‘지구에 대한 성폭행’(생태학책)으로 비유되고, 동물 도살은 여성이 겪는 성폭력 상황에서 ‘마치 동물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비유되기도 합니다. 비유, 은유의 재료가 된다는 것은, 나와 그 존재를 ‘구분짓고 분리하는’ 사고체계이죠. 지나가던 남중학생끼리 “꺼져 이 년아”라고 하거나, 굉장히 싫은 상황에서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봤나”할 때 쓰이는 년, 개의 느낌을 생각해보면요. 어떤 억압이 다른 억압을 비유로 삼아 표현되면, 각각의 다양한 억압은 위계화되기도 하고, 원래 그런 것처럼 강하게 엮여 억압을 자연화하기도 합니다.
그럼 여성폭력반대운동이 동물해방운동과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여성의 존재와 위치에 대한 성찰과 저항은, 동물이 처한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그것이 남성중심성의 통치구조의 갈래들이라고? 참 낯설기도 하고 과한 생각이라고 느껴지시려나요. 그러나 억압받는 어떤 집단이, 다른 억압받는 집단과 비슷하거나 엮여있다고 말해지면, 경계와 거부감이 드는 일이 종종 있는데요, 왜 그런 걸까요? 억압들이 연결되어 있고, 연쇄적이라는 게 벌써부터 무겁고 지긋지긋할지도 모르겠어요.
성폭력 피해경험이 있는 동료, 친구, 회원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내게 닥치는 큰 고민 중 하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오랫동안 성폭력 피해자로서 고민하며 살아와 세상 억울함과 답답함을 다 안고 있었는데, 내가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생각해 본 순간의 놀라움과 충격. 그런데 그때 그 누구보다 그 문제를 부여잡고 씨름하기 시작한다는 것 또한 많이 보아온 것 같아요. 억압에 저항하는 것, 말이 쉽지 이것을 내 삶의 중요한 과제로 받아들인 존재가 다른 억압을 공부하는 시간은 가장 괴롭고도 또 놀라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새해에도 이 책모임은 계속되니(7개장이 남았어요) 홈페이지를 보고 이메일로 참여신청해주시면 따뜻하게 맞이하겠습니다. 함께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