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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폭력, 서로 다른 세계를 만나 공통된 문제 이야기하기
  •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_앎
이렇게 활동했습니다 ①

직장 내 성폭력
서로 다른 세계를 만나 공통된 문제 이야기하기

4월 12일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는 의심에서 지지로, 함께 하는 성문화운동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가 진행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_앎

올해 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의심에서 지지로, 함께 하는 성문화운동(이하 ‘의지로’)> 사업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향한 질문의 방향을 가해자에게 되돌리고 피해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지지망을 형성하기 위한 대중 인식 개선 사업입니다. <의지로> 사업을 알리는 첫 행사로는 먼저 각 현장에서 성폭력과 맞서 싸우고 있는 생존자와 지지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올 상반기에는 미투(#MeToo) 운동으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성폭력 사건, 연출가 이윤택 성폭력 사건, 전 충남지사 안희정 성폭력 사건 등이 연이어 폭로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생존자가 성폭력 말하기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이어졌고, 가해자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강조하는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용어도 생겨났습니다. 이번 집담회에서는 검찰, 연극계, 영화계, 정치계 등으로 조각조각 나뉘어 이야기되고 있는 성폭력 사건들을 ‘직장 내 성폭력’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모아보고자 했습니다. 피해자의 노동환경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권력 구조를 밝히고, 해당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각각의 해결 방안을 찾아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 현장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직장 내 성폭력을 말하다>

미투 운동 이후로 ‘왜 이제 와서 말하느냐?’ 혹은 ‘정말 성폭력이었다면 왜 그 일을 계속했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게 만든 상황과 맥락은 무엇이었는지, 왜 피해자가 성폭력을 피하려고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피해자의 인생은 성폭력 피해로 한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피해자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며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갚아야 할 빚이 있을 수도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피해와 생계 사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성폭력 피해자가 놓여 있는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직장 내 성폭력’이라 하면 기업이나 사무실을 떠올리지만, 이번 집담회에서는 일부러 연극인, 학교 선생님, 국회의원 비서관 등 일반 사업장과는 조금 다른 직장에 계신 분들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발표자는 해당 업계의 구조와 문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직 종사자를 섭외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공개적으로 내부 비판을 해야 하는 만큼 부담감도 컸을 텐데 흔쾌히 제안을 받아준 발표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직접 지원했던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의 활동가를 섭외하여, 작년 연말에 선고된 대법원 판례의 내용과 의의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성폭력 피해만으로 끝나지 않고,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고용·인사상 불이익조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뿐 아니라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조치도 사실상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위축시킬 수 있다고 판시하며 ‘사용자책임’을 폭넓게 인정했습니다. 현행법상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장 및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사용자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발표자들의 발표가 끝난 후에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플로어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해당 업계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한 참여자도 있었고, 발표자와 유사한 업종에서 일한다며 고민을 나눠준 참여자도 있었습니다.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참여자가 첨언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질의응답이 이어지면서 성폭력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노동 현실에 함께 분노하기도 했지만,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선례를 남기거나 업계 내부에 페미니스트 연대를 만들고 페미니즘 담론을 주류화하는 등 대안과 해결책을 상상해보며 힘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가해자의 관계와 권력 차이뿐 아니라 일에 대한 꿈과 열정, 조력자와 동료에게 미칠 불이익, 업계 내 평판, 업계 외부 사람들의 몰이해, 심지어는 가해자의 생계/작품/재능/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모두 고려해서 피해 사실에 대한 문제제기 여부를 결정합니다. 누구보다 힘들게 고민하고 말하기를 결정했을 피해자에게 의심보다는 지지를 보내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