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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에서 지지로,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 연구포럼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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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활동했습니다 ②

의심에서 지지로,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 연구포럼을 마치며

지난 4월 19일, 서교창비빌딩에서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포럼을 진행하였습니다.

성폭력 역고소 문제 알림이_파이

지난해, 부설연구소 울림은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 지원을 위한 안내서」를 발간하였습니다. 상담소에서는 최근 몇 년, 유명연예인들의 연이은 무고 등 역고소 사건들을 지원하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절감하였고, 성폭력 피해뿐 아니라 역고소로 어려움을 겪을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며 안내서를 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함께 했던 연구진들은 그 자료들을 토대로 역고소의 실태를 파헤치는 연구를 추가로 진행하여 이번 열린포럼을 열었습니다. 당시 1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주셨고, 예정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열띤 토론과 함께 서로 힘을 주는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역고소 피해가 그만큼 많다는 사실과 우리들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열린포럼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 현장
열린포럼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로 기소되는 사안의 핵심에는 ‘성폭력 통념’과 성폭력에 대한 법적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형법 제297조에서 강간의 판단 기준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로 되어 있는 만큼, 대부분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며, 폭행, 협박이 없는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법적 공백이 생깁니다. 그 공백 사이에는 한국사회에 강고한 ‘꽃뱀 신화’, ‘강간 신화’와 같은 것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텔에 갔다거나, 금전적 보상을 요구했다거나, ‘항거를 곤란하게 할 만큼의 폭행, 협박’이 증명되지 않는 경우에는 성폭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해자가 무혐의로 풀려나면서 검사로부터 무고 인지를 받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폭력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면, 그것은 증거가 충분하지는 못하거나, 추가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의미임에도 한국에서는 무혐의가 곧 무고로 인식되면서 가해자에 의한 무고 고소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공개한 피해자들은 형법 제307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폭력을 고소하거나 공개한 피해자들이 오히려 무고나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되면서 이중, 삼중의 피해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5월 28일, 대검찰청에서는 성폭력 수사시 재판이 끝날 때까지 피해자를 무고로 기소하지 못하도록 수사매뉴얼을 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당일, 이러한 수사매뉴얼이 ‘불법’이라며, ‘대검찰청의 불법적인 성폭력 수사매뉴얼 중단을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 운동이 시작되었고 여기에 서명한 국민들이 2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 생애동안 셀 수 없을 만큼의 불법적 피해를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하고 있는 여성/피해자들의 피해보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진짜 꽃뱀’의 존재는 왜 그리 두려운 것일지 분석이 필요한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직접 지원했던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의 활동가를 섭외하여, 작년 연말에 선고된 대법원 판례의 내용과 의의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성폭력 피해만으로 끝나지 않고,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고용·인사상 불이익조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뿐 아니라 조력자에 대한 불이익조치도 사실상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위축시킬 수 있다고 판시하며 ‘사용자책임’을 폭넓게 인정했습니다. 현행법상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장 및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사용자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발표자들의 발표가 끝난 후에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플로어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해당 업계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한 참여자도 있었고, 발표자와 유사한 업종에서 일한다며 고민을 나눠준 참여자도 있었습니다.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참여자가 첨언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질의응답이 이어지면서 성폭력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노동 현실에 함께 분노하기도 했지만,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선례를 남기거나 업계 내부에 페미니스트 연대를 만들고 페미니즘 담론을 주류화하는 등 대안과 해결책을 상상해보며 힘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가해자의 관계와 권력 차이뿐 아니라 일에 대한 꿈과 열정, 조력자와 동료에게 미칠 불이익, 업계 내 평판, 업계 외부 사람들의 몰이해, 심지어는 가해자의 생계/작품/재능/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모두 고려해서 피해 사실에 대한 문제제기 여부를 결정합니다. 누구보다 힘들게 고민하고 말하기를 결정했을 피해자에게 의심보다는 지지를 보내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본 연구포럼을 진행하면서 성폭력/성폭력 역고소 피해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그/녀들에게 얼마나 큰 힘과 지혜가 있는지, 피해자들은 약하고 고통스럽기만 한 존재가 아님을 매번 새롭게 느낍니다. 피해자들은 매 공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적극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검사와 재판부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현재 법조항에 없는 폭력들은 연구자료를 뒤져 자료를 제출하였고, 때로는 본인의 변호사와 논쟁하고 설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의 언어를 재구성하고 객관화해가면서 임파워되고 그리고 그 힘은 또 다른 피해자들과의 연대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신한테 돌을 던지는 사람이 열이라면 당신한테 연대하고 싶어하는 사람 100이니까 그 열에 대부분 갇혀있거든요. 저도 그랬고 초반에 그랬고. 근데 인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100이 있으니깐, 그런 여성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연대를 해나가고 우리 잘 싸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위의 피해자의 말처럼,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보다, 연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대응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포기하거나 체념하는 것도, 모두 ‘살아남은’ 피해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이며, 꼭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도 된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성폭력도, 성폭력 역고소도 그것을 구조적으로 지탱하고 지지하는 남성중심 문화, 법, 제도에 의해 유지됩니다. 미투운동이 피해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통해 울려퍼질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성찰적 감수성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을 해석해낼 수 있도록, 의심이 아니라 지지가 될 수 있도록 연구소에서는 더욱 연구활동에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각 발표 내용과 플로어 토론에서 오간 내용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www.sisters.or.kr)를 통해 PDF로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