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심판을 앞두고
‘사회정의’를 외치는 이유
“낙태죄를 폐지하라” feat._ 앎
지난 5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위헌소원에 대한 첫 공개변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은 공개변론에 앞서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는 위헌이다> 낙태죄 위헌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주관하였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 백여 명이 한목소리로 ‘낙태죄는 위헌이다’, ‘낙태죄를 폐지하라’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에도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판한 바 있습니다. 당시 공석인 한 자리를 제외하고 총 8명의 재판관 중 합헌 의견 4명 대 위헌 의견 4명으로 판단이 팽팽하게 맞섰으나, 위헌 결정에 필요한 6명 이상의 찬성을 모으지 못해 아쉽게 합헌 결정이 선고되었습니다. 위 판결에서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의 근거로 ‘여성의 결정권이라는 사익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중하다고 볼 수 없다’는 잘못된 대립 구도를 판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낙태죄는 ‘여성의 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의 문제로 단순하게 이해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에게 실제로 ‘결정권’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은 배우자 또는 파트너의 의사, 임신·출산·양육에 따르는 사회경제적 불이익, 양육에 필요한 비용과 돌봄노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임신중지를 결정합니다.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 여성의 경력단절 사유 중 50% 이상이 ‘임신·출산·양육’이라는 성차별적 노동현실, 실질적인 보육 지원 제도 및 아동 복지의 부재 등을 고려한다면 ‘여성의 결정권’이라는 용어는 여성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사회에 면죄부를 주고 있지 않은가 고민하게 됩니다.
‘여성의 결정권’을 근거로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마치 성폭력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전제하에 ‘왜 저항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성의 옷차림, 행실, 침묵 등을 동의로 간주하며 명시적 의사를 묻지 않는 사회문화에서, 심지어 여성의 ‘안 돼’를 ‘돼’라고 받아들이는 가해자중심적인 인식이 아직도 널리 퍼져있는 현실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실존하는 것이라기보다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할 때 임신한 여성의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되고 이로 인한 피해는 손쉽게 정당화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에는 양수가 터져 감염된 여성에게 임신중지 주수 제한을 이유로 수술을 해주지 않거나, 임신 중인 여성이 태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아동학대로 기소하는 등의 사례가 소개됩니다. 생명존중 논리는 언제나 여성의 권리를 후순위로 밀어내고 때로는 여성을 규제하는 데 적극적으로 이용됩니다. ‘여성의 결정권’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미 태어나 있는 ‘여성’의 권리를 부차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 전락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요구된 최소한의 권리였습니다.
낙태죄는 평등권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침해받지 않을 권리는 물론이고, 새로운 가족 형성과 같이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마땅히 가져야 합니다. 안전하고 적합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성별 등을 이유로 차별적인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 행렬에서는 ‘여성은 인큐베이터가 아니다’, ‘나는 자궁이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구호가 끊이지 않습니다. 여성을 인구통제의 도구로 취급하는 법·정책에 반발하고, 여성도 고유한 삶과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외침입니다.
모낙폐는 온/오프라인을 통해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7월 7일에는 낙태죄 위헌 촉구 퍼레이드 <여기서 끝내자>를 열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판결을 바로잡는 낙태죄 위헌 결정을 선고하도록 함께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