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CEDAW 제69차 세션 한국 제8차 본심의 대응단 참가기
스위스 제네바 특파원_이미경
지난 2월 16일부터 일주일 동안 상담소 활동가 국제연대 기회를 이용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의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참가하였습니다. UN이 한국정부의 성평등 정책을 심의하는데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위원들로 구성된 NGO참가단에 함께하게 된 것이지요. 설날에 이렇듯 후루룩 떠날 수 있음도 아주 설레고 특별한 경험이었답니다.
UN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은 9개의 유엔 주요 협약 중 하나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이에요. 한국은 1984년 이 협약을 비준하여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본 심의에는 심의 대상국인 한국의 NGO활동가들이 직접 회의에 참가해 위원들과의 간담회 및 심의과정 모니터링, 수시 로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2월 19일, 월요일 아침에는 UN본부에 들어가기 위한 깐깐한 보안검색대를 거쳐 출입증을 발급받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어요. 오전에는 개회식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심의대상국 NGO들이 각 10분씩 각국의 상황 소개와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권고를 발표했어요. 한국 참가단은 세 번째 순서로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치고 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지길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2015년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한일합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보는 NGO의 입장을 묻는 질문만 받았어요. 이날의 공식일정이 끝난 후 참가단은 수요일 런치브리핑 준비에 들어갔어요.
2월 21일, 한국의 의제만을 가지고 위원들과 온전히 만나는 첫 번째 자리인 런치브리핑이 시작되었어요. 한국 여성의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다음 날 진행될 한국정부 심의에서 위원들이 정부를 향해 질의할 내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런치 브리핑의 내용은 크게 6가지로 주제로 진행되었는데요, 성평등 법제와 추진체계, 여성의 일과 건강에 대한 권리, 젠더기반 폭력, 취약계층 여성문제, 성평등 교육,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구성된 주제를 발표하였습니다. 성평등을 향한 우리의 도전과 열정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하루였어요.
2월 22일 목요일, 드디어 우리 정부가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여성가족부 장관과 담당자들, 법무부, 노동부, 교육부, 경찰청, 인사처 등 유관부처의 공무원들도 이틀 전에 도착해 심의받을 준비를 했다고 해요. 우리 NGO 참가단은 전날 런치브리핑에서 위원들이 질문한 내용을 보완해서 회의 시작 전에 전달하고자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각 분야별 준비를 했어요. 아침 8시경 숙소를 나와 UN 회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과연 어느 위원이 오늘 심의에서 한국 정부에 질의해 줄지 긴장감과 기대감이 함께 있었어요.
본회의장에 도착해 어제 간담회에서 질문했던 위원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었어요. 다들 바쁜 와중에도 우리의 쪽지 질문지를 받아들고 설명을 들어주었지요. 드디어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의 모두발언 이후,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는데요, 첫 질문이 한국 권고안 작성의 책임자인 83세의 필리핀 마날로 위원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왜 미루느냐”는 지적이어서 반가웠습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분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한국에서 첨예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차별금지법을 짚어주다니요! 뭔가 잘될 것 같은 예감과 함께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하지만 법무부 담당자는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중이라는 형식적인 답변을 했어요. 그러자 스위스 슐츠 위원이 차별금지법은 점진적 이행이 아닌 여성차별철페협약 비준 후 즉각적인 이행을 해야 한다고 쐐기를 박는 발언을 해서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위원들의 이어지는 질문들은 아주 날카롭게 우리 정부의 정책적 문제들을 짚어주셨어요. 우리는 각자 컴퓨터에서 SNS로 서로 연결하여 소감을 나누기도 하고 돌아가면서 속기를 했어요. 여성차별철폐협약의 조항 순서대로 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협약 5조 여성에 대한 폭력과 관련해서는 사이버성폭력의 규제와 대처 및 예방방안, 성폭력 무고죄/명예훼손죄에 대응노력, 수사과정에서의 피해자 고정관념 및 과거 성 이력 증거채택 금지, 통계수집, 강간범죄의 구성요건(폭행과 협박이 아니라 동의여부), 가정폭력방지법의 가정유지에 우선을 둔 목적조항의 문제, 가정폭력처벌법의 사실혼관계의 배우자의 적용여부, 부부강간의 범죄화, 취약계층 특히 탈북여성의 성폭력 피해 관련 정책 등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하루종일 이어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위원들이 정부보고서와 NGO보고서를 꼼꼼하게 읽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상황을 알고자 노력한 성의가 돋보였어요. 이번 저희 NGO 참가단의 로비도 그 노력 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공부하는 위원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에 한국 정부의 답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망스러웠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여성가족부만 장관을 비롯한 국장과 실무진들이 오고, 법무부나 노동부, 인사처, 경찰청 등은 사무관들이 참여했는데, 거의 예상질문에 대해 미리 준비한 내용을 국어책 읽듯이 답변하는 수준이었어요. 어떤 부처 답변자는 의장과 위원들로부터 답변중단 요구와 함께 “그렇게 읽을 거면 자료를 우리에게 달라, 시간이 없다. 구체적인 답변을 하라”는 지적과 함께 호통을 듣기도 했어요. 적어도 책임있는 답변을 할 수 있는 담당자들이 와서 성실하게 각 부처의 성평등 정책에 대한 이행 과정을 이야기하고, 미진한 부분은 겸허히 지적을 받고 수정, 보완해가는 성숙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참 아쉬웠습니다.
지난 3월 9일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한국정부에 최종견해를 발표했어요. 특히 젠더폭력 관련해서 형법 297조의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 여부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라는 것을 시작으로 7가지의 권고를 내렸지요(아래 표 참조). 이제 우리는 정부가 UN의 권고를 잘 이행해가도록 모니터링 및 제언하는 역할을 이어가겠습니다.
2018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젠더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분야’ 권고
2018. 3. 9.
번역_ 류민희, 오경진, 임선희, 장보람, 전민경 / 종합 및 감수_ 김기연, 오경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