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일 수 있는 곳, Meka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겁쟁이_임김혜리
세미나 단 한 번을 남겨두고 Meka 3기의 활동 후기를 쓰는 지금, 아쉬운 마음과 보람차고 뿌듯한 마음이 교차합니다.
Meka 나눔터기자단 3기는 6명의 자원활동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Meka에 들어오게 된 계기에도 6개의 이야기가 있지요. 하지만 지면 관계상 그 중 제 이야기를 간단히 들려드릴까 합니다.
부모님께선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너는 귀중한 아이고 장차 멋진 사람이 될거야.” “네가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다 이뤄낼 수 있다”고 계속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들에 손 뻗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사회와 마주한 순간부터 저는 제가 제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제가 대학에 입학한 첫 해인 2014년, 남자 동기들은 그들만의 단체 카톡방에서 여자 동기들의 ‘외모 순위’를 매겼습니다. ‘상위입상’한 동기들에게는 축하한다고 말을 건네고 ‘순위’에 꼽히지 못한 동기들에겐 은혜를 베푸는 듯 위로를 건넸습니다. 또 저는 2016년 1년간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는데요, 사회적으로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서있다고 평가받는 일본이지만, 성평등 영역에 한해서 저는 이견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제가 겪어온 성차별보다 더 교묘하고 간사한 성차별도 존재한다는 것을 1년 동안 여실히 실감했죠. 그 1년이 제게 미친 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일본에서 받은 상처들로 휘청이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지금은 크게 휘청거리는 대신 때때로 부들부들 떠는 정도입니다. 제 ‘휘청휘청’이 ‘때때로 부들부들’이 될 수 있었던 건 Meka의 덕이 큽니다. Meka 활동을 통해 제 상처에 대해 맘을 열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 덕분에 상처가 단단한 흉터가 되어가는 중이랍니다.
사실 저는 매우 ‘축복받은’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본래 제가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에서는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맘껏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제 곁엔 제 이야기를 공감하고 지지하고 연대해주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나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축복’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도 저는 더 욕심을 내봤습니다. 학교 담장 밖의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한편으론 제 상처를 두고 더 많은 이들에게 위로받고 싶은 응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한국성폭력상담소 나눔터기자단 Meka 3기에 합류하게 되었답니다.
이렇듯 제 경우엔, Meka에 합류할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기자단 후기를 작성하기 위해 다른 분들에게 한마디씩 청하며 처음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Meka에 참여하는 과정이 모두에게 쉽기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한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운동에) 함부로 숟가락을 얹어도 될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핸드폰을 들었다 내려놓기를 여러 번, 긴 고민 끝에 (후원회원 가입을 먼저 한 다음) 용기를 내어 Meka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과정이 “대안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며, “정체성은 홀로 생각해서 구축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구축되는 것이기에 Meka 세미나를 통해 정체성을 구축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3월 9일 금요일의 첫 모임을 시작으로, 현재 7월의 마지막 모임을 앞두기까지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여러 활동을 해왔습니다. 3월 22일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에 다 함께 참여했고, 4월부터 6월까지 꾸준히 세미나를 이어왔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더 자주 모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뻔한 소감일지도 모르겠으나, 마지막 세미나를 남겨두고 있는 지금 모든 Meka 3기 구성원들이 입을 모아 “왜 더 자주 모이지 못했는지” 탄식하고 있답니다. 저 또한 이 봄-여름 Meka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어떤 시간이 되었을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모두의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었고, 다른 이의 경험을 듣는 것을 통해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성주의의 담론에 참여하면서 제가 혼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소수이지만 진심으로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함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Meka 활동은 저를 둘러싼 테두리가 확대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좁은 원을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 속, 그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저 자신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한 적도 있고, 이 대열 속에 끼어 있어도 괜찮을지 고민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Meka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불필요한 의심과 의문이 사라졌고, 이 점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사회는 분명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주 느린 거북이 걸음으로나마 차별을 하나씩 지워갈 수 있는 것은 이전까지 본인의 몫이 아닌 모욕을 받을지언정 자신의 응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수많은 이들의 기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용감한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점점 크게 들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Meka 활동을 통해 이 흐름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참 따뜻한 공간이었습니다. 그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나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제 용기가 되어주어 너무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