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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바꾸는 섹슈얼리티 집담회 : 아빠 성은 떼어냈지만
질문을 바꾸는 섹슈얼리티 집담회

아빠 성은 떼어냈지만

2018년 10월 23일,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진행된 [질문을 바꾸는 섹슈얼리티 집담회] <페미니스트 5인의 가족 이야기: 아빠 성은 떼어냈지만>이 진행되었습니다. 다양한 정체성과 배경을 가진 페미니스트 다섯 명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을 둘러싼 규범을 다시 바라보고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 마련된 이 자리에 함께했던 자원활동가 단의 소감을 들어보시겠어요?

'여성과 소수자가 나답게 살기 위한, 섹슈얼리티 집담회'에 페미니스트 5명이 모여, 각자의 가족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참석했다. 단지 그들의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을 것 같아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람들은 자기 가족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상을 만들지만, 다른 가족을 판단할 때에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정상가족의 잣대로 세상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집담회를 듣고 난 후 이 말이 생각났다. 나 역시 나의 가족을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해온, 오직 한 가지의 시각만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섯 페미니스트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였다.

극한직업 효오녀, 불꽃페미액션의 시원님 발언 중
"극한직업 효오녀 -" 불꽃페미액션의 시원님 발언 중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 준 5인 중 한 분은 퀴어페미니스트 '동희'님이다. 스스로를 '돌보고 돌봄받느라 정신없는 페미니스트' 라고 소개한 동희님은 '돌봄'의 의미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가족의 대표적인 기능은 '돌봄'이고, '여성의 돌봄 노동'이라는 용례처럼 누군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만 여겨지기도 한다. 가족중심적인 사회에서 진정한 돌봄은 가족관계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동희님은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가족이 경제적인, 정서적인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는 곳이라면, 오히려 불편과 억압과 폭력의 장소라면, '가족'은 소수자와 약자에게 최선의 공간인 것인지 되물었다. 정상가족에서 벗어났을 때 돌봄은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일 수 있고, 때로는 '내가 나다울 수 있도록' 존재 자체를 지지할 수도 있다. 동희님은 성소수자 운동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경제적·정서적·육체적 돌봄, 친밀함을 나누고 있고, 서로의 생활을 지지하고 조력하고 고민하고 같이 설계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가족의 사회적 의미로만 보았을 때 '가족'에 가까운 것은 이들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가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동희님의 이야기를 듣고, 가족도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을,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요즘 가족에 대한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가치관이 다른 아빠와의 갈등이다. 가끔 성차별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할 때, 아빠를 지적하기도 하고 설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싸움과 대화의 단절 뿐이었고 가끔 내 말을 무시하는 아빠가 밉곤 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아빠인데, 매번 다투기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또 아빠와의 논쟁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게 나의 고민이다. 그래서 집담회 전, 페미니스트 다섯 분들의 소개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급진적 페미니스트 시원님에게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살짝 기대되었다. 시원님도 가족과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역시나 힘들 때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가족은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계속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 내가 아빠를 미워하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바로 소중한 사람, 가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을 변화시키기 위한 싸움은 나를 너무 지치게 한다.

발표를 마친 페미니스트 5인과 사회자 신아, 활동보조인 초원
발표를 마친 페미니스트 5인(희원, 지선, 동희, 감이, 시원)과 사회자 신아, 활동보조인 초원

이에 대해 시원님은 다른 강의에서 들었던 말을 해주었다. '교육은 국가가 맡아 해야 하는데, 개인이 이를 감당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변화의 선두에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마치 모든 것을 자신들이 바꿔나가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올바른 가치관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대한 몫은 우리만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만약 이 과정이 힘들어서 지친다 해도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시원님의 말은 마치 '괜찮아, 잘 하고 있는 거야' 라며 나를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위로와 연대의 감정은 감이님의 말로 마무리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잘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서로 부족한 것, 시행착오들을 공유하며 힘을 얻는 것이 연대이고, 그것이 곧 이 집담회의 목적이다."

완벽한 출발점은 없다. 고민을 공유하고 위로와 힘을 얻고 연대를 해 나가는 것이 바로 좋은 출발이며 앞으로 계속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번 집담회는 일상에 지쳤던 페미니스트들에게 앞으로 계속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페미니스트 5인들과 참여자들의 동의와 반론, 존중과 배려가 섞인 2시간 동안의 대화들은 마치 여러 색을 가진 선들이 얽히고 섞여 단단한 매듭을 만드는 것처럼, 집담회는 굉장히 탄탄하고 건강한 매듭과 같았다. 부득이하게 나의 경험과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쓰다 보니 모든 분의 대화를 다 적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을 떳떳하게 밝히기에는 조심스러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런 집담회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페미니스트 다섯분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