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들어라 세상아 나는 말한다" 라는 슬로건으로 우리 사회에 생존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알려내기 시작한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이하 말하기대회)는 우리 사회에 성폭력생존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피해와 치유라는 말로 단순하게 정리될 수 없는 생존자의 삶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알려내는 확성기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첫 번째 말하기대회 이후 열 네 번의 말하기를 거치며 말로, 그림으로, 영상으로, 음악으로 그 형태를 달리하며 다양한 변화를 모색해왔습니다.
말하기대회가 시작된 지 15년. 2018년 <생존자의 자리> 말하기참여자들은 매 사전워크숍마다 자신의 경험을 곱씹어, 언어로, 몸짓으로, 마음으로 가다듬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캐시는 원고를 다섯 번 고쳐쓰며 멘탈이 바닥을 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에스더는 여전히 고되게 진행 중인 재판 과정에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리나는 흔들림 없이 단호한 태도로, 지지자들을 신뢰하며 안전감을 느끼면서 한 생애에 걸쳐 매번 다른 형태의 경험들을 내어놓았고, 그중에서 자신의 정체성들을 바로 세우는 과정을 말해주었습니다. '언젠가는 말하여 정리해야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피해 경험을 수차례 반복해서 말하면서 더이상 묵은 체증이 가슴을 누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명선은 투박한 선에서 느껴지는 섬세함으로 채워진 강인한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참가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녀들에게 뿐 아니라 이 만남과 과정을 가능하게 했던 역대 말하기대회의 말하기/듣기참가자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저에게 말하기대회는 상담소와의 인연의 시작이었고, 한때는 전부이기도 했습니다. 말하기대회의 기획단으로 자원활동을 하면서 여성운동을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이후의 제 삶에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성폭력생존자의 경험을 듣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선물같은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 말하기의 과정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무게감만큼이나 큰 책임감을 가지게 했습니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해도 비난받지 않는 사회가 올까?'라고 반문했던 지난 날에, 말하기대회의 공간은 해답같은 곳이었고, 그 공간을 이 사회로 확장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이자 반성폭력 활동가인 저의 역할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대회가 없는 상담소를 상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말하기대회를 통해 얻었던 용기와 연대의 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 저의 숙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생존자로서 그 누구의 비난과 판단에서도 자유로운 상태로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경험은 귀합니다. 그러나 그 귀한 시간과 공간을 어떤 이들과만 제한적으로 공유하는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을 마감하고 2019년을 시작하고 있는 지금, 어쩌면 더 큰 말하기대회의 무대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2018년 3월, 미투시민행동에서 기획하고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2018분동안의 이어 말하기>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더 많은 이들이 거리와 열린 공간에서 말하기를 하고 있는 지금. 한국성폭력상담소도 이제 새로운 공간과 세팅으로 반성폭력운동의 지평을 더 넓혀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현하는 분들을 만날 때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매번 처음 겪는 일인 것처럼 활동가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생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상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바로 세워야 하는 정의와 성평등을 만들어가는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기에 무대에 서는 생존자들은 많은 고민을 거듭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생존자의 피해 치유나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으로서의 말하기를 위해 말하기대회 전 짧게는 4회기, 길게는 17회기에 달하는 사전워크숍을 준비하지만, 어쩔 수 없는 실질적 목표가 '무대'라는 공간에 한정될 때 말하기참여자들은 그 '무대'를 거대한 '벽'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회 변화를 위해 자신의 피해경험을 도구화했다고 오해하는 말하기참여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피해를 전시하고, 지지와 응원을 강요하는 모양새가 되지 않기 위해 섬세하게 준비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지 않을 때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려움은 상담소의 활동가로서, 상담소를 찾는 피해생존자들을 "보호 및 지원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반성폭력운동을 하는 주체"로 만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도움이 필요한 내담자에게 말하기대회의 여러 지향점 중에서 도무지 함께 이룰 수 없는 두 극단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더이상 움츠리고 숨지 않는 당당한 말하기"와 "그 어떤 편견과 비난에서도 자유로운 안전한 말하기" 이 두 지점의 간극은 좁히기 어렵습니다.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나선 생존자들에게 쏟아지는 의심과 비난의 화살은 말하기대회를 시작하던 2003년과 비교했을 때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기 위해 안전한 공간을 만들면, 정작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가닿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상담소 이안젤라홀에는 2003년부터 시작된 말하기대회의 역대 포스터들이 전시된 "말하기의 벽(the Wall of the Speak-out)"이 있습니다. 오늘 2018년 <생존자의 자리> 포스터 액자를 걸었습니다. 전기드릴을 이용해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고 못을 박아 새로운 액자를 걸자 다음 말하기대회 포스터가 들어갈 빈 자리가 더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말하기대회는 어떤 모습일까? 다시 상상해보는 순간이었습니다.
2019년에는 말하기대회를 한 해 쉬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말하기대회의 역사와 의미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지난 15년 동안의 말하기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가 "생존자의 존재와 목소리 드러내기"였다면, 이제는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고민해볼 수 있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생존자들의 새로운 말걸기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