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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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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후원

선민 |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

지난 4월 '가해자의 감경 목적의 후원' 관련 인터뷰를 했다.1 5월엔 관련 기고문도 하나 썼다.2 나 말고도 여러 명의 활동가들이 이와 관련한 인터뷰를 했으며 회원 담당자는 카드뉴스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성폭력 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 기부가 감경요인으로 작용하는 점에 문제 의식을 가진 여러 상담소와 함께 <그것은 반성이 아니다>라는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하지만 '불편한 후원'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회원분들과 나누고자 한다.

'감경 목적의 후원'으로 처음 인터뷰한 뒤 내 주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인터뷰를 전달했을 때의 반응은 "이거 사실이냐", "정말 이런 일이 있느냐", "세상 참 별별 인간들이 다 있네" 였다. 그렇다. 감경 목적의 후원이란 일반 대중들에겐 세상 첨 들어보는 별별 일인 것이다.

그런 희안하고도 별별일인 감경 목적의 후원을 걸러내는 작업을 상담소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상담소 후원담당 신입 활동가 닻별은 입사 후 제일 어려운 업무가 전화 업무라고 털어놓았던 적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입활동가로서 다양한 전화 업무를 받아 내는 것 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후원자의 후원이 나쁜 목적을 가진 것이냐 아니냐를 매번 확인해야 하니 그 어려움을 해보지 않은 이는 알기 어렵다. 후원 관련 프로세스가 있다고 하여 모든 희안한 후원을 걸러내는 건 불가능하다.

소위 '꼼수 기부·후원'인 감경 목적의 후원은 자신이 저지른 성폭력 가해를 면피하려는 일방적인 행태이다. 이런 행태는 왜 이리도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걸까? 나는 '꼼수 기부·후원'을 하는 가해자 개인들도 나쁘지만, 그걸 가능하게 조장하는 법조인과 재판부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5년 성폭력 관련 재판 판결문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기부금을 냈다는 사실이 감형의 사유로 적시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이 사실을 알았을 때 후원 업무 담당이었던 나는 몹시 당황했었다. 내가 발급한 기부금영수증이 오용된 것으로 처음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상담소가 발급한 적도 없는 후원 내용이 판결문에 감형의 사유로 적시되었던 것이다.

"ㅅㅎㅅ"이라는 가해자는 2014년 10월경 일방적으로 10만 원씩 자동이체를 신청하였고 5개월간 50만 원을 이체하고는 본인이 알아서 후원 해지 처리를 했다. 당시 담당자인 나는 상담소에 좀 이상한 후원금이 들어오다가 끊겼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와 단 한 차례도 소통한 적이 없으며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한 적도 없었다. 연말 기부금영수증 발급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받으려고 "ㅅㅎㅅ"의 이름으로 입금되는 10만 원 입금자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기억만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렇기에 가해자가 본인이 상담소에 이체한 내용만을 재판부에 제출했고, 기관이 발급한 공인된 기부금영수증도 아닌 가해자 스스로 이체한 내역만을 가지고 재판부가 감형의 사유로 참작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초에 한 활동가는 대놓고 '난 가해자이며 기부하여 감형받으려 하니 기부금영수증을 즉시 발급해 줄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 뿐인가, 법원으로 가는 교대역 11번 출구 지하 기둥에는 단정하고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화려하게 웃는 변호사가 '아동 성추행, 강간범죄, 기타 성범죄 등의 사건에서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감형을 도와드리겠다'고 홍보하는 광고판이 붙어있다가 한 시민이 문제제기하여 철거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인터넷 검색만 하면 그런 광고 카피 뿐만 아니라 실제 '성공 사례' 판결문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해자들의 감형 팁, 감형 정보 자료는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이제 가해자들은 우리 같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뿐 아니라 온갖 사회복지 기관에 후원을 하고는 그 내역을 가져다 재판에 감형의 사유로 낸다고 한다.

나는 정말 궁금하다. 2014년의 판결을 내린 판사도, 그리고 가해자 감형을 도와주겠다고 광고를 하는 변호사들도 후원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살면서 후원이란 것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까? 후원을 무슨 공탁금쯤으로 여기는 것일까? 나는 그저 상식적인 사회였으면 한다. 후원약정을 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만 응대할 수 있도록,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후원 활동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1 스브스뉴스, "여성단체에 돈 주면 감형 받을 수 있어.." 기부 못 해 안달 난 대한민국 성범죄자들. (검색일 2019년 7월 1일)

2 오마이뉴스, "성폭력 재판 받고 계신가요?" 후원자에게 묻는 이유. (검색일 2019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