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미만의 '동의'> 현장 스케치
의제강간 연령 상향에 부쳐
주현 | 여성주의 연구자, 자원활동가
지난 6월 4일 오후 2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이슈대응 집담회 <16세 미만의 동의 : 가해자 처벌과 역량보장 사이에서>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집담회는 4월 29일 형법상 의제강간죄 기준 연령을 상향하는 법안이 통과된 뒤 이에 대해 토론하는 첫 자리였습니다. 의제강간죄는 일정 나이 미만의 아동·청소년과 성관계를 하는 자를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죄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조항입니다. 5월 19일 공포 후 즉시 시행된 개정 형법 제305조는 ① 13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나이불문하고 처벌하는 기존 형법에, ②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는 19세 이상인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더해 의제강간죄 기준 연령을 높였습니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되었고 약 300여 분이 동시접속으로 함께 했습니다.
전원 마스크를 쓴 채 진행했다.
그동안 의제강간 연령 상향에 대해 여성계와 시민사회단체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N번방 사건'처럼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방지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과 일괄적인 연령 상향은 청소년을 미성숙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성적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오갔습니다. 이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단순히 의제강간 연령 상향 찬성 또는 반대라는 이분법을 넘어 16세 미만의 '동의'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청소년 성폭력을 근절하는 동시에 청소년의 성적 권리와 역량을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장을 마련했습니다.
집담회는 성문화운동팀 앎 활동가의 사회로 진행됐고,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님, 탁틴내일의 권현정 님,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양지혜 님,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의 민들레 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유나 님이 발표자로 참여했습니다.
먼저 첫 발표자로 나선 SHARE의 나영 님은 '무엇이 '동의'를 보장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나영 님은 현행법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보다 폭행·협박과 같은 가해자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성적 동의에 있어 "***는 동의할 수 있다/없다"를 따지는 것이 동의 역량의 기준을 개인의 상태에 두고 있다면, 이제는 누군가의 동의 조건을 가로막는 것들은 무엇인지 동의 역량에 영향에 미치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청소년의 성적 동의의 경우도 단순한 나이가 기준이 되기보다 선거권, 주거권,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 정도와 같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탁틴내일의 권현정 님은 ''동의' 여부를 판단할 때 나이는 어떻게 고려돼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의제강간 상향의 의미는 단순히 청소년이 성적 역량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기보다 '동의만 구하면 청소년과 어떤 성적 행동을 해도 문제가 없다'라는 사고에 제동을 거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청소년-비청소년 관계에서 특정한 나이 차이는 동의의 조건인 대등함을 지니기 어렵다는 점을 짚으며 의제강간 상향이 그루밍 성폭력이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예방하고 처벌의 공백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더불어 향후 법 적용과 시행에서 가해자에게 연령 확인 책임을 지우고, 폭행·협박에 의한 성폭력은 의제강간·추행에 더해 가중처벌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위티의 양지혜 님은 '청소년의 관점으로 말하는 '동의''라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양지혜 님은 성에 무지하고 순결한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한편 스스로의 욕망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는 청소년의 이중적 위치에 대해 짚어주었습니다. 이에 비청소년과 청소년의 연애에 대해 비정상적으로만 보기보다 왜 비청소년-청소년 관계가 폭력적일 수 있는지, 청소년은 무엇을 욕망하고 어떻게 위계를 넘어 동의할 수 있는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동의는 성숙도에 비례하는 능력이 아니라 개인이 처한 사회문화적 환경의 연장선상에서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더불어 의제강간 연령 상향으로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숨기거나 부모가 의제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의 민들레 님은 '누가 어떻게 '동의'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장애인의 경우 성적 실천이 불가능하거나 성적 욕망을 조절할 수 없다고 낙인찍힌 존재로 여겨지며, 성적 동의가 필요한 존재로서 존중되고 수용되기 더 어렵다는 점을 짚어주었습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성 관련 정보·교육이 부재하거나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과 관계 맺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쉽게 폭력에 노출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성폭력은 권력이 교차적으로 작동하면서 발생하기에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문제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룸의 유나 님은 '동의/비동의, 자발/비자발 담론을 넘어'라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유나 님은 동의와 자발성, 선택의 논의가 성매매 현장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을 어떻게 가장 열악한 위치에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성매매는 고수익 홍보를 통해 성폭력으로 여성을 비인격화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에 대한 처벌을 상기시켜 여성을 배제하고 고립시키는 산업임을 강조했습니다. 여성이 언제든지 성매매를 그만둘 수 없고 구체적인 동의 과정에 대한 각본이 없는 성매매 현장에서, 자발 또는 비자발이라는 이분화된 담론은 성매매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넘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최근의 조건만남 앱은 여성의 동의·자발성을 앞세워 성매매 알선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사전에 받은 질문과 온라인 채팅으로 올려주신 질문을 취합하여 질의응답이 진행됐습니다. 먼저 피해자의 동의 구분이 어려운 비강압적 착취에 대해 발표자분들께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습니다. SHARE의 나영 님을 대신해 토론에 참여한 나영정 님은 청각 장애인의 경우와 같이 통상적인 방식으로 성적 동의 확인이 어려운 경우 그의 동의를 구할 특별한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탁틴내일의 권현정 님은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지 중심으로 사건을 정리하고 상담을 지원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위티의 양지혜 님은 선택의 전제 조건과 다양한 선택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의 민들레 님은 장애인이 피해자로만 호명되는 상황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특정 관계가 온전히 폭력 또는 즐거움이라는 것은 환상일 수 있다며 자발과 비자발이라는 일차원적인 이분법을 경계했습니다. 이룸의 유나 님은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충분히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관계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다음으로 동의할 또는 동의를 구할 역량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도 이어졌습니다. 발표자분들은 일상의 경험과 공동체에서 동의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질 때 성적 동의도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공유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발표자분들은 이번 집담회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함께 생각해볼 수 있어서 뜻깊었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이외에도 비동의강간죄 도입, 수사 재판 과정의 입증 문제, 이미 의제강간 연령이 상향된 상황에서 법 활용의 문제 등에 관한 고민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