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대응 캠페인 <#Call21st> 후기
나는 오늘 '성평등'에 투표합니다
테오즈 | 셰도우핀즈 활동가, 널채움 구성원
악법(惡法)도 법(法)이었다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297조는 '악법(惡法)'으로 수많은 성범죄 가해자들을 '사건 당시 폭행/협박이 없었다'라는 이유로 풀어주고 피해자들을 '피해자답지 않았다, 저항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사법 시스템 밖으로 밀어내는 근거를 제공해왔습니다. 209개의 여성인권단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형법을 개정하여 강간죄 판단 기준을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바꾸고자 활동하고 있습니다. #Call21st 프로젝트는 연대회의가 힘써온 일에 기술적인 도움을 주고자 프로그래밍/그래픽 디자인의 방법을 모두 동원해 만든 캠페인이었습니다.
비정기 페미니즘 프로젝트 그룹 셰도우핀즈와 시빅해킹 네트워크 널채움은 연대회의와 함께 약 432시간, 18일간의 집중적인 협업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체적으로는 약 5개월 동안 논의과정을 거쳤습니다. 협업의 첫 단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하는 매우 부실한 후보자들 연락처 리스트의 공백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메꾸는 것이었습니다. 디자인과 웹사이트 구축 면에서는 사용자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동시에 성취감을 느끼게끔 하는 방안을 고민했고, 홍보 면에서는 #call21st 프로젝트 주최자들뿐 아니라 이를 지지하는 일반 참여자들이 직접 개인 SNS로 참여 확산 독려를 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상이한 일을 해오던 사람들의 협업이 가지는 리스크, 작업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의 발생 등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으나, 3월 28일부터 4월 14일까지 프로젝트 주최자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내/외부적인 피드백을 프로젝트에 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1,430명의 후보에게 167,398번의 질문이 보내졌고, 206명이 응답했습니다(찬성 204명, 반대 2명). 찬성 의사를 표현한 후보 중 45명이 당선되었습니다.
거꾸로 카운트다운
1998년에 '호주제폐지시민모임'이 발족한 이후, 실제로 2005년에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에 처음 발의된 이후로 20년 넘게 국회를 계류하고 있습니다. 강간죄 개정에는 대체 얼만큼의 시간이 지체될 것인지 벌써부터 암담합니다. 각종 강간 사건 재판 방청을 들어간 시민이라면 누구나 지금도 피고인/가해자 측 변호사와 솜방망이 판결 내기 직전의 판사 입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멘트,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를 듣습니다. 예외적으로 행위 자체에 폭행과 협박이 있다는 식으로 기습추행을 판단하는 대법원 판례, 종합적인 판단을 해서 피해자의 사건 전후 행동을 전형화하지 않는 유연한 판관들의 사례가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은 형법 제297조가 고수하는 최협의설(最狹義) 때문에 자신의 강간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지금의 법, 형법 제297조가 여성들에게 왜 '악법'일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한다면, 입법에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들은 강간죄 개정까지의 지체시간을 줄여, 여성의 사법적 지위 회복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는 모두 잠재적 강간범이에요! (..) 엄청난 숫자의 강간범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남성 전체가 본질적으로, 그리고 치명적일만큼 커다란 결함을 안고 태어났음을 부당하게 암시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 남자를 악마 취급하고, 헐뜯고, 차별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타락해 어처구니없을 만큼 부당한 재판 절차에 밀어 넣으며, 여자가 단지 그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남자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이용된다."*
페미니즘에 알 수 없는 미신적 반감을 품은 남성들, 성범죄 피해를 겪은 여성의 인생을 구제하려는 법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폄하하는 남성들은, 강간죄 개정에 대해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공포를 느낄 것입니다. 자신과 친구가 해오던 어떤 일을 못 하게 됐으니까요. 강간죄 개정은 2차 피해의 개념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 최초로 법제화될 때의 반발과 비슷한 사회적 논란과 반발을 뚫어야 할지 모릅니다. 제21대 국회가 활동하는 5년 동안 발의될 법안과 그 법안의 통과 여부를 저는 끝까지 지켜보며 힘을 싣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21대 국회 개원에 맞춰 45명 의원에게 발송한 당선 축하 메시지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1대 국회 시작일로부터 강간죄개정까지 며칠이나 걸릴지 함께 거꾸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합시다. #Call21st 프로젝트에 동의했던 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함께 지켜봅시다.
* 안티 페미니스트 웹사이트 앵그리 해리(www.angryharry.com)의 글 부분 인용. 출처: 조디 래피얼 지음/최다인 옮김, "강간은 강간이다", 글항아리, 2016.11.11., 53p
